대종상 대리 수상만큼 어이없는 청룡봉사상 사라져야

지난 22일 희대의 '갑툭튀' 대리 수상이 있었습니다. 제55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벌어진 일이었죠. TV조선에서 방영된 시상식에서 〈남한산성〉으로 음악상을 수상하게 된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대리 수상인으로 한 중년 여성이 올라왔습니다. 생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어서 처음에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지인이거나 영화사 사람 정도인가 싶었는데, 그는 트로트 가수로서 사카모토 류이치가 누구인 줄도 잘 모르면서 대리 수상자로 올라온 분이었습니다. 조명상도 대리 수상이 이뤄졌는데요, 이 상 또한 누군지 알 수 없는 남성이 대리 수상을 했습니다. 시상식 현장에는 이 상들의 대리 수상을 위해 〈남한산성〉 제작을 맡았던 싸이런픽처스의 김지연 대표가 와 있었는데 왜 연고가 없는 트로트 가수와 정체불명의 남성이 대리 수상을 했던 걸까요?


출처 - TV조선


이는 대종상 측의 무능한 행사 운영 때문이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미국 스케쥴로 올 수 없어 제작사 측에 연락했으나 닿지 않아 한국영화음악협회에 대리 수상자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영화나 음악가와 아무 관련 없는 한사랑이라는 트로트 가수가 대리 수상을 하게 된 연유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연락이 안 되었다면 〈남한산성〉의 제작자가 시상식 현장에 있었을 리가 없죠.

 

한사랑이라는 가수 입장에서도 부탁을 받아 대리 수상을 해줬는데 욕을 먹는 입장이 되어버렸으니 황당했겠죠. 조명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행방불명된 줄 알았던 조명상도 알고 보니 영화제 측이 대리 수상을 해달라는 조명협회에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대종상 영화제 측의 무능한 행사 운영과 소통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법합니다. 이런 사정이 알려지자 인터넷상에서 대종상에 대한 비난이 넘쳤습니다.


출처 – 대종상 영화제


지난 2015년에 대리 수상 관련으로 보이콧까지 일어나 망신살이 뻗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또 대리 수상이 문제로 불거졌습니다. 관제 영화제의 대표격인 대종상은 예전부터 마치 민방위나 예비군처럼 충무로 고인물들의 호구지책이라는 오명을 받으며 폐지론이 만만찮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번 해프닝으로 이런 영화제를 존속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한편 영화제는 아니지만 이상한 시상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번 해프닝을 방송한 TV조선의 본사인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청룡봉사상입니다. 올해로 52주년을 맞은 청룡봉사상은 1967년부터 《조선일보》와 경찰이 공동주최해 경찰과 시민을 대상으로 수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상을 수상한 경찰의 경우 1계급 특진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출처 – 청와대 청원 게시판


경찰의 선행이나 훌륭한 임무 수행이 언론의 조명을 받고 사람들의 상찬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특정한 언론사가 주는 상이 경찰의 진급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문제가 있습니다. 마치 언론사가 특진할 경찰을 선정할 권한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지난 7월 28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청룡봉사상을 폐지해달라는 청원을 올린 사람의 말처럼 "조선일보가 홍보하고, 조선일보가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조선일보가 대상자를 추천받고, 조선일보가 심사위원을 선정하며, 조선일보가 프레스센터에서 시상하는 상이 조선일보가 주는 상이지 왜 경찰청이 주는 상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입니다. 대종상 대리 수상만큼이나 어이없고 이상한 상이 아닐까요? 이 상이 계속 존재할 경우 경찰과 언론사가 유착 관계를 형성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특히 그 언론사가 고 장자연 리스트 등 형사사건에 직접적인 피의자일 수 있는 오너가 운영하는 곳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실제로 이 상의 수상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1972년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조작한 유정방이 수상자였고, 1979년 청룡봉사상 수상자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고문기술자인 이근안이 있었습니다. 1981년 수상자에는 부림사건 고문 가담자 송성부도 있었죠. 이근안의 혐의가 밝혀진 후에도 《조선일보》는 수상을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2003년 청룡봉사상을 받은 경찰은 불법오락실 업주 비호세력이라는 사실이 폭로되어 망신을 당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을 검거한 경찰관들이 수상했는데 그들이 검거한 이들 중 구속된 인원은 절반도 안 됐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 실적 쌓기에 급급했던 경찰들에게 충성의 시혜품으로 하사하는 상이었기 때문이겠죠.


출처 - 미디어스


청룡봉사상이 주최되지 않은 적이 두 번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41회와 42회 수상자는 선정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방침에 따라 경찰청이 공동주최를 철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 상은 부활했습니다. 이쯤 되면 청룡봉사상은 군부독재와 극우 정권에 부역한 사람들이 권력자들을 위해 대리 수상하는 어처구니 없는 시상식이 아닌가 싶네요. 더는 이런 시상식이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라도 경찰은 공동주최를 철회하고 특진은 경찰 내부의 제도에 의해 확정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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