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1904년 한일의정서 강제체결

출처 - 아시아투데이


1904년 2월 23일은 한일의정서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날이었습니다. 러일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중립을 주장하는 대한제국을 점령하기 위해 일본은 대한제국 황성을 공격해 점령한 뒤 대한제국 외부대신 서리 이지용과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의 명의로 조약을 체결하게 합니다. 

 

이지용은 후에 을사늑약을 체결한 을사오적 중 한 명이죠. 그는 외교를 담당하는 자의 소임을 뒤로 한 채 하야시 곤스케로부터 한일의정서 체결의 대가로 1만 엔을 받고 나라를 팔아버렸습니다. 총 6개 조항인 한일의정서는 한마디로 앞으로 일본 말만 잘 들으라는 강요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았고, 1910년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은 주권마저 빼앗겨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를 묵과하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대한의 독립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니까요.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이어진 독립운동과 변화하는 국제정세가 맞물려 우리나라는 1950년에 광복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친일 잔재 청산에는 실패하고 말았죠.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1965년 박정희 정권은 민심을 무시한 채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합니다. 한일기본조약으로 한일의정서를 포함해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무효임이 확인되었으나, 경제 협력 협정과 문화재 협정으로 일본군 위안부 배상 문제와 일본이 약탈한 문화재 반환에 어려움을 자초했습니다. 이는 박정희 정권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제성장을 위한 차관을 약속받고 일본이 저지른 이전 과오를 고스란히 용인해버린 셈이죠

 

출처 - SBS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위안부 합의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인 윤병세와 일본 외무상인 기시다 후미오는 위안부 문제 당사자들을 비롯해 국민의 반대와 비난을 무시하고 졸속으로 합의 사항을 발표했습니다. 사실 국가 간의 합의라고도 할 수도 없는 기자 회견문에 불과했죠.

 

국민 정서에 반하는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한 아버지 박정희, 한국사 국정교과서로 이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려던 딸 박근혜. 대를 잇는 친일의 피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얼마나 진흙탕으로 내몰았는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박정희의 죽음으로 알 수 있듯이 국민을 배신하는 지도자의 말로는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합의는 100년 전에도, 100년 후에도 무효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불가역적 진실임을 탄핵 심판대에 오른 박근혜가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도서를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현재 러일전쟁~태평양전쟁까지의 기간을 다룬 책이 3권으로 나와 있습니다. 시리즈 도서는 이후로도 계속 출간됩니다. 송인서적 부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희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니 주변 분들께도 권해주세요.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힘입어 역사의 진실과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는 책을 꾸준히 펴내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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