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거센 눈보라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보도를 해 큰 관심을 받았던 박대기 기자를 기억하십니까? 2013년 9월에는 박 기자가 트위터에 남긴 말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국내언론은 다 거짓말이니까 진실을 알려면 영어를 배워야 한다"던 어머니의 말씀이 그를 언론인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출처 - 트위터
헬조선, 개성공단 폐쇄,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필리버스터 등등 한국 사회의 이상 징후를 드러내는 사회적 현상에 관해 언론과 방송은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왜곡된 사실을 반복 재생산하는 일도 허다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마저 '선거구 획정 처리'를 위한 거대 양당의 야합으로 그 빛을 잃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생각비행은 수차례 한국의 상황을 외신을 통해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관련 기사: 박근혜를 비판한 세계 주요 외신 보도, 박근혜 대통령, 그 입 다물라!, 외신을 통해 살펴보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시간이 갈수록 국내 언론과 방송 환경이 피폐해지다보니 국내 상황을 외신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관해 관심이 더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필리버스터 정국을 외신이 어떻게 보도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뉴욕타임스》― 로켓은 북한이 쐈는데 왜 남한 국민을 터나?
모처럼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장을 선사한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정국을 미국 《뉴욕타임스》가 상세히 전했습니다. 은수미, 정청래 의원의 필리버스터 기록은 물론 집단 필리버스터로는 이미 세계 최장 기록을 세우고 있다는 내용까지 포함해서요. 아울러 《뉴욕타임스》는 한국 야당 의원들이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위협할 것으로 우려되는 정부의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으로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출처 - 뉴욕타임스
특히 독재자 박정희와 그간 민간인 불법 사찰 등 무수한 정치 개입을 일삼았던 국정원을 소개하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권력 남용을 제재할 대책도 없이 국정원에 더 많은 권한을 주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또한 정청래 의원의 필리버스터 중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북한인데 왜 국정원은 한국 국민의 휴대폰을 조사하려 하는가? 로켓을 발사한 것은 북한인데 왜 국정원은 한국 국민의 은행계좌를 추적하려고 하는가?"라는 발언을 직접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가디언》과 무디스 ― 개성공단 폐쇄는 한국경제 적신호 될 것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 폐쇄를 기습적으로 발표하고, 증거도 없이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흘러들어 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때문에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우리나라 124개 기업과 많은 협력업체가 도산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에 대해 영국 《가디언》은 한국은 개성공단을 폐쇄함으로써 김정은 손에 놀아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기습적인 남한 정부의 결정은 합의를 파기한 것이기 때문에 외교적인 문제가 될 수 있고, 손해 액수로 따져도 한국 경제가 입을 타격이 북한보다 훨씬 크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출처 - 가디언
국내 전문가 의견뿐 아니라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의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2월 13일 무디스는 개성공단의 폐쇄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조시켜 한국의 국가 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사고만 치고 뒷수습을 하지 않는 무능한 박근혜 정부는 무디스의 발표와는 정반대로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및 경제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무디스가 보고서 제목과 본문에 부정적(Negative)이라는 표현을 강조했음에도 말입니다.
무디스의 보고서를 직접 찾아보거나 해외 언론의 분석을 신경 쓰지 않고 정부 발표 받아쓰기에 바쁜 국내 언론 기사만 보신 분들은 별문제 없다고 착각하고 계시겠죠. 박대기 기자 어머니의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가디언》은 기사에서 "2016년은 이미 후에 한국의 역사책에서 기억되고 후회될 새로운 날짜들을 추가하는 우울한 겨울을 맞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UN과 국제앰네스티 ―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유 위축되었다
UN과 국제앰네스티 등 세계 주요 기관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표현, 집회의 자유가 크게 위축되었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마이나 키아이 유엔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지난 1월 20일부터 29일까지 용산참사, 밀양 송전탑, 강정마을, 세월호 유가족, 백남기 씨 가족 등 시민사회 각계 관계자를 두루 만나 한국의 집회, 결사의 자유 실태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를 1월 2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발표했습니다.
마이나 키아이 유엔 특별보고관은 "(2015년 민중총궐기의) 백남기 씨 사례에서 보듯 물대포는 심각한 신체 부상을 야기할 수 있다"며 "물대포와 차벽을 과도한 무력과 함께 사용할 경우 경찰과 시위대 간 긴장을 고조시킬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평화로운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점진적으로 뒷걸음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이견 제기를 억누르는 북한의 방식은 우리가 피해야 할 대표적 사례"라고 질타했습니다. 유엔 특별보고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방식이 북한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 겁니다.
출처 - 국제앰네스티
유엔만이 아닙니다. 국제앰네스티는 2015년 세계인권상황 연례보고서를 통해 한국에서 표현, 결사, 집회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인권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국가보안법,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 이주노동자 노조 등록 지연 등의 사례 수집, 분석한 결과라고 합니다. 앰네스티 또한 민중총궐기 당시 백남기 씨에게 물대포를 쏜 사례를 구체적으로 지적했습니다.
영국의 유력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기관인 EIU가 매년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에 의하면 2015년도 한국은 민주주의 수준 평가에서 이전까지 지키고 있던 '완전한 민주주의'에서 '미흡한 민주주의로 단계'로 하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거 과정' 점수의 폭락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명박 정권하에서 박근혜 대통령 후보, 국정원의 합작으로 이뤄진 대선 부정 개입 때문입니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 들어 민주주의는 물론 정치, 외교, 경제에 이르기까지 지속적 퇴행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 외신을 통해 꾸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 헬조선을 말하다
한국 사회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단어인 '헬조선'.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이른바 고학력 백수에 해당하는 대졸 이상 비경제활동인구가 지난해 기준 334만 6000명에 달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3.1절 기념식에서 "하루라도 빨리 노동 개혁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정부의 '노동 개악'은 대기업의 쉬운 해고를 위한 것임을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죠. 박근혜 정부 들어 중산층 붕괴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소득을 올리는 정책은 찾아볼 수가 없고, 전세와 월세는 폭등하고 있습니다.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도 나아지는 것이 없고, 사회안전망은 나날이 약해지는 형국이지요.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의 젊은 세대가 처한 현실을 다양하게 분석하는 기사에서 '헬조선 현상'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한국은 금수저와 흙수저로 계급이 나뉜 나라이고, 젊은층의 3분의 2가 비정규직인 흙수저들에겐 답도 미래도 없다고 말입니다. 이와 더불어 페이스북 그룹, 온라인 사이트 등에 헬조선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공유하고 실행하는 한국 세태를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한겨레
어떠십니까? 권력에 장악된 국내 주요 언론, 방송이 떠들어대는 것처럼 우리나라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덕분에 안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번 주말이면 경칩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한동안 겨울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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