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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한국 영화 망치는 박근혜 정부와 영진위

by 생각비행 2015. 2. 7.

대한민국 대표 감독 봉준호, 맛깔 나는 대사로 유명한 <타짜> <도둑들>의 최동훈, "라면 먹고 갈래?"라는 대사로 유명한 <봄날이 간다>와 잔잔한 감동이 있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허진호, 박정희 암살의 그날을 생생히 그려낸 <그때 그사람들>과 <하녀>의 임상수, <가족의 탄생>과 <만추>를 감독한 김태용 등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이 감독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출신이라는 겁니다. KAFA는 1990년 후반 폭발한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산실 역할을 하며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KAFA의 졸업영화제가 갑자기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시대착오적인 박근혜 정부가 영화에 대해 사전 심의 부활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KAFA 페이스북


KAFA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2월 6일부터 열릴 예정이던 졸업 영화제를 전격 취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앞으로 한국영화계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 영화인들의 첫 발표의 장이 사라져버린 것이지요. 이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제도를 개정한 탓에 영화제 자체를 열 수 없게 된 것이 원인입니다.



영화 사전 심의 부활을 노리는 박근혜 정부


이제껏 영화제는 시대의 첨단을 달리는 주제와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사람들과 대면하는 자리였습니다. 영화 상영 등급 분류를 면제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영화 전문가도 아닌 박근혜 정부의 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취임하더니 느닷없이 이 면제 규정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영화제에 출품되는 모든 영화가 영진위의 9인 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상영될 수 있습니다.

 

이는 사실상 영화제에 선보일 영화가 정부의 검열을 받지 않으면 단 한편도 개봉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20여 년 전 위헌 결정을 받고 사라진 영화 사전 심의의 망령이 박근혜 정부에 의해 부활 조짐이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심의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영화제 하나만 해도 수백 편의 영화가 상영되는데 영진위의 위원 9명만으로 이 많은 영화를 일일이 심의할 수 있겠습니까? 

 

영화산업이 발전한 우리나라에는 영화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KAFA의 졸업영화제 같은 학교별, 학과별, 단체별 상영회까지 따지면 그야말로 엄청난 수의 영화가 상영되는데 이걸 다 심의하겠다고요?


출처 - 미디어스


작년에 <다이빙벨>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논란이 일자, 박근혜 정부는 파급력이 높고 대중이 많이 즐기는 문화인 영화를 통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나 봅니다. 올해 갓 취임한 김세훈 영진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입니다. 영화의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낙하산처럼 내려오더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영화업계의 발목을 잡는 미친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는 고용노동부가 노동자가 아닌 기업만을 위해 일하는 것과 똑같은 일입니다.



출처 – 이송희일 페이스북


인디포럼작가회의 의장인 이송희일 감독에 의하면 이 촌극은 오직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서 과잉 충성하는 영진위원장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희화화한 영화 <자가당착:시대정신과 현실참여>가 영등위에서 제한상영가를 받아 상영할 수 없게 되자 소송에 들어갔고 자가당착 측이 최근 승소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영화를 독립영화기획전 형태로 상영하려는 찰나에 김세훈 영진위원장은 등급분류면제추천 제도를 개정해버립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조롱하는 영화가 상영되는 걸 법으로 막지 못할 바에는 영화제 자체를 지속할 수 없게 해서라도 막겠다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속셈입니다. 대한민국이 북한입니까? 최고 권력자를 희화화했다고 제도를 바꿔가며 문화예술을 틀어막으려 하다니요.


이대로 가면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가 쏟아져나올 예정인 3월의 인디다큐페스티벌영화제도 존립을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비판적인 영화들은 영진위에 의해 모조리 걸러질 테고 우리는 영화제에서 '대한늬우스' 같은 영화만 볼 수 있게 될 테니까요.



독립영화까지 검열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야욕


동시에 영진위는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 방식도 바꾸기로 해 독립영화마저 사전 검열하려 합니다. 영진위는 올해부터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에서 영진위가 인정한 영화를 상영해야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합니다. 영진위가 26편의 영화를 선정하고 예술영화관들이 이를 정해진 요일에 상영해야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거죠. 식민지 시대와 독재시대에 만연했던 이른바 문화영화와 대체 뭐가 다른지 모르겠군요.


출처 - 머니투데이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국내 주요 영화제 집행위원장들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등 독립예술영화 단체들이 여론의 지지를 업고 항의하자, 영진위는 또 오해 타령을 하며 당장 5일 정기회의에 상정하지는 않겠다고 물러섰습니다. 하지만 백지화에 대한 얘기는 없이 유보만 하고 있으니 조만간 틈을 보아 재추진할 게 분명해보입니다.



베를린 영화제 등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계에 대한 우려 빗발쳐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을 상영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사퇴 권고를 해서 논란이 일었죠. 세월호 사건과 다이빙 벨을 둘러싼 사회적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이빙벨> 영화 자체에 대한 판단은 국가나 지자체가 아니라 관객의 몫으로 둬야 합니다. 대체 정부가 무슨 권리로 이를 박탈하려 한단 말입니까?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우뚝 선 부산국제영화제를 흔드는 정부의 격 떨어지는 획책에 세계 영화인들의 우려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국제영화제와 최근 막을 내린 로테르담국제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독립성을 지켜달라는 집행위원장 명의의 연대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영화제 프로그램의 독립성 보장이야말로 영화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죠. 문화를 통한 창조경제로 국격을 높이겠다고 했던 박근혜 정부의 얄팍한 수작으로 연일 국격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가 '문화융성' 아니었나요? 지난번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이 선택한 영화>라는 기사에서 '문화가 있는 날'을 맞이해 영화관을 찾은 박 대통령이 "문화산업은 창조경제의 핵심인 만큼 제작환경 개선에 노력하겠다"고 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은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한국 영화산업을 '초토화'시킬 수도 있는 끔찍한 일을 묵과하고 있습니다.


출처 - TV리포트


2009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이었던 이창동 감독, 2015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인 봉준호 감독 등 대한민국 영화계의 위상은 심사를 받던 입장에서 심사하는 입장으로 상승했습니다. 한국 영화인들의 노력과 관객의 사랑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한국영화를 망치는 국격 떨어지는 소리 좀 그만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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