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큰 산맥이자 거침없는 입담으로 민감한 사회문제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던 마왕 신해철이 영면했습니다. 6년의 공백을 깨고 새로이 솔로와 밴드 활동을 재개하려는 찰나에 죽음을 맞아 팬들뿐 아니라 그의 음악을 들으며 1990년대를 보낸 30~40대의 충격도 컸습니다.
하지만 고인을 애도하는 시간도 잠시, 그의 죽음이 의료사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지인과 유가족의 요구로 경찰은 부검을 시행했고 1차 소견 발표로는 의료사고로 기우는 형국입니다. 신해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의료사고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내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에 휩싸인 분이 많으실 겁니다. 신해철처럼 유명한 연예인도 이렇게 허망하게 죽고 밝혀내기 어려운 것이 의료사고이니 말입니다.
오늘은 고 신해철의 죽음을 애도하며 사회적 관심이 촉발된 의료사고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출처 - MBC
의료사고에 대처하는 8가지 방법
다른 사고와 달리 의료사고는 일반인이 잘 알지 못하는 전문 분야를 다루는 법적 논쟁이기 때문에 접근부터가 어렵습니다. 심지어 환자로 입원한 의사조차 의료사고를 당했을 때 손 놓고 당했다는 경험담이 누리집 게시판에 심심치 않게 올라옵니다. 그러니 일반인이 전문가인 의료진과 병원 측의 실수나 잘못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때문에 법무부는 블로그를 통해 의료사고에 대처하는 8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출처 - 한겨레
첫째, 의료사고 전문취급기관과 상의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사고가 나도 법에 무지한 일반인이 자신의 대리인으로 변호사를 고용해 도움을 받는 것처럼,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에 정통한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으라는 얘깁니다. 우선 한국의료분쟁 조정중재원과 소비자보호원에 문의하면 좋습니다. 이 밖에도 의료사고 전문 법조인이 최근에는 꽤 활동하고 있는 편이니 이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한국소비자원: https://www.kca.go.kr
둘째, 병원을 옮길 때는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의사의 추천이 아닌 환자가 결정한 의사에게 재진료를 받는 편이 좋습니다. 의료사고를 낸 병원이 추천하는 곳으로 가게 된다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얘기도 있듯이 아무래도 환자에게 불리한 소견을 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료사고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불행 중 다행으로 환자가 살아 있는 경우 최대한 빨리 병원을 옮겨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의료사고를 낸 병원에서 어떤 처치를 했는지 추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 신해철의 경우, 의료사고가 의심되는 스카이병원에서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셋째, 유가족에겐 고통스러운 얘기가 되겠지만 사인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서는 부검을 꼭 해야 합니다. 고 신해철의 사인 역시 동료 가수들의 부검 요청을 유가족이 받아들여 진행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부검 결과 1차 소견 발표를 통해 의료사고 쪽에 무게가 실리게 되었습니다. 의료사고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경찰서에 신고하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전문 의료진이 부검을 합니다. 사인에 대한 종합감정서는 보름 후 관할 경찰서로 통보됩니다. 이 감정서가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넷째, 담당 의사에게 설명을 요구해야 합니다. 의료사고가 의심된다면 해당 의사를 만나 당시 진료 상황과 병원의 처치 내용에 대한 설명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셔야 합니다. 이때 냉정함을 유지하기 어렵다면 녹취하거나 메모할 수 있는 사람을 동반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의료진과 병원 측을 대할 때 흥분해서는 안 됩니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집기를 파손하면 소송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출처 - SBS
다섯째,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의 의무기록을 확보해야 합니다. 해당 병원에서 서면 증거를 확보하라는 얘깁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기록이 있습니다. 우선 의무기록지(간호기록지)를 챙겨야 합니다. 의료법 21조에 따라 환자나 그 대리인이 진료기록을 요청하면 병원에서 반드시 그 기록을 보여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거부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되어 있으니 당당하게 요구하시면 됩니다. 열람뿐 아니라 복사할 권리도 있으니 필요하다면 꼼꼼히 챙기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의 기록은 병원 CCTV 영상입니다. 고 신해철의 경우 의료사고가 의심되는 스카이병원에서 수술 당시 수술실의 CCTV 영상을 제출하지 않아 인멸하거나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료사고가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신속히 법원과 검찰에 도움을 요청해 병원의 CCTV 영상을 확보하셔야 합니다.
여섯째, 섣부른 합의는 삼가야 합니다. 병원 측의 의료과실이 명백하다면 병원이 합의를 종용하기도 합니다. 적정한 보상이 어느 정도 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사소송을 생략하고 병원의 요구에 따라 합의해버리면 실제로 보상받을 수 있는 액수보다 적게 받거나 이후 연관된 다른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일곱째, 사건경위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의료사고는 1분 1초 차이로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민감한 사안입니다. 따라서 사건 경위를 최대한 정확하고 상세히 파악하고 기록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의무기록이 병원 측 기록이라면 사고경위서는 환자와 보호자, 가족, 친구의 입장에서 보고 판단한 의료사고의 상황과 진행과정을 기록한 문서입니다. 의료사고 후 피해 상황을 기록할 정신적 여유가 있다면 환자가 직접 작성하는 편이 좋으나 그럴 상황이 아니라면 보호자나 가족, 친지, 동료 등 가장 가까이서 상황을 제대로 본 사람이 쓰는 편이 좋습니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병원 측이 진료기록을 조작하려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중요한 사실이 흔들리거나 변경되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꼼꼼하게 작성해두면 좋습니다.
여덟째, 의료사고 소멸시효에 주의해야 합니다. 의료사고는 발생했다는 걸 안 날로부터 3년 이내,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모든 소송이 마찬가지지만 소멸시효가 지나면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니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의료사고, 병원이 무과실 입증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이 한 해 1000건이 넘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환자 측의 완전 승소율은 1퍼센트도 채 되지 않습니다. 비전문가일 확률이 높은 피해자가 전문가인 의사를 상대로 의료적인 과실을 입증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적진 한가운데서 무기도 없이 싸워야 하는 판국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 때문에 의료사고 소송의 경우 앞으로는 병원이 스스로 무과실을 입증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피해자뿐 아니라 의료계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지난 2012년 문을 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입증 책임이 모두 환자에게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분쟁조정원들이 의료계의 입김을 의식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분쟁조정원이 열심히 뛰어 중재하더라도 분쟁조정중재원에게는 강제력이 없어 병원 측이 중재를 거부해버리면 속수무책입니다. 실제로 조정에 병원측이 참여를 거부하는 경우가 77.1퍼센트나 된다고 하니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이 개인적으로 시위하다가 감정적 대응으로 일을 그르치고 마는 상황이 왕왕 벌어집니다.
출처 - 한겨레
고 신해철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우리 사회 전반에 의료사고를 둘러싼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법과 제도가 가진 자가 아닌 약자를 위하는 방향으로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삶으로 1990년대 청년들에게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을 알려주었던 신해철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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