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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사이버 망명, 텔레그램 쓴다고 해결될까?

by 생각비행 2014. 9. 26.

최근 앱스토어 부동의 무료 앱 인기도 1위를 지키던 카카오톡이 최근 2위로 주저앉았습니다. 독일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이 1위로 올라섰기 때문인데요, 이는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스마트폰 메신저가 실시간 검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현실로 드러난 증거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어이없는 발언과 검찰의 과잉 충성 때문에 애먼 국내 IT산업이 타격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 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이 버럭 할 때마다 국민을 협박하는 검찰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개회하면서 일본 언론과도 마찰을 빚은 이른바 세월호 침몰 당시 사라진 7시간에 대한 소문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긴박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의 수장으로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의문을 겨냥한 발언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며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틀 만에(18일) 대검찰청이 미래부, 안행부, 방통위, 경찰청, 포털업체 등과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대응 방안'을 마련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함께 있었나?"

출처 - 산케이신문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에 사이버 명예훼손 관련 전담팀이 설치되고 검사 5명과 수사관이 배치되었습니다. 검찰은 포털과 모바일 메신저 사업자들을 대책회의에 모아 놓고 메신저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허위사실 유포사범은 벌금형이 아닌 재판 회부를 원칙으로 하고 최초 유포자뿐 아니라 확산시킨 사람까지 엄하게 벌하겠다면서 말이죠. 


이런 일련의 조처는 국내 모든 메신저에 대한 검열을 예고했고, 누리꾼들은 자신의 대화 내용이 언제 국가에 의해 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이 사이버 망명이었고 그중에 보안성이 뛰어나다는 텔레그램으로 갈아타는 것이었겠지요.

 


텔레그램은 만능인가?



출처 - 텔레그램


텔레그램은 출시한 지 1년 갓 넘은 메신저입니다. 러시아 출신 드로브 형제가 만든 메신저로 독일 베를린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왓츠앱이 장애를 일으키자 500만 명이 텔레그램으로 갈아타며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텔레그램의 강점은 보안성입니다. 송수신자만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고 전달이 불가능한 철통보안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전화번호가 등록된 사용자와만 대화가 가능하고 상대가 메시지를 언제 읽었는지 확인 시간을 표시해줍니다. 전체 대화를 텍스트 파일로 저장하는 기능은 제공되지 않으며 개별 대화창마다 비밀 대화 옵션을 걸 수도 있습니다. 이 대화는 설정된 시간이 지나면 스마트폰 뿐 아니라 서버에서도 자동 삭제됩니다. 이처럼 보안성에 자신이 있었던 텔레그램은 미화 20만 달러를 상금으로 걸고 해킹 대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출처 - 블로터닷넷


텔레그램의 보안성에 주목한 건 우리나라 증권가였습니다. 증권가 메신저로 오가는 불법 거래는 국가의 검열 대상인데 지난 6월 금감원이 실적 정보 사전 유출 파문과 관련해 1년치 이상의 메신저 대화 내용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때문에 내용을 검열 당할 수 있는 국내 메신저를 버리고 증권가 사람들이 텔레그램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 모독 발언을 계기로 전 국민으로 확대된 것이죠.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텔레그램이 만능은 아닙니다. 우리 언론에 소개된 정보에 잘못된 내용이 있었습니다. 텔레그램 스스로 개최한 해킹대회에서 수상자가 없을 정도로 철통보안 메신저라고 알고 갈아 타신 분이 많으실 텐데요, 사실 텔레그램도 보안 취약점이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 IT 커뮤니티 이용자 한 명이 텔레그램에서 개최한 해킹 대회에서 보안 취약점을 발견해 상금 10만 달러를 받았기 때문이죠. 텔레그램은 상금을 준 이후 이 보안 취약점을 고쳤습니다. 그러니 한 번도 뚫린 적 없는 절대 방패라는 언론의 표현은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요.



출처 - 텔레그램


또 다른 문제는 텔레그램은 오픈 소스에 광고조차 싣지 않는 완전 무료를 선언한 비영리 메신저라는 점입니다. 창업자인 형제는 텔레그램으로 돈을 벌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사용자 테이터를 팔지 않고 광고도 없고 별도의 사용료도 받지도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잠깐만 더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현재 텔레그램의 운영비는 창업자 중 한 명인 파블 드로브가 만든 러시아 SNS, vk의 수익에서 나옵니다. 파블은 텔레그램의 운영을 이 수익에서 나오는 지원금이 끊길 때까지 서비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만약 자금이 떨어지면 그때는 사용자들에게 기부를 받겠다고 합니다. 굉장히 듣기 좋은 이야기지만 한편으론 이상론으로 보입니다. 러시아의 정치 사정이나 다른 이권에 의해 vk의 수익이 악화된다면 텔레그램은 어떻게 될까요? 과연 안정적인 자금 투입 없이 보안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텔레그램이라고 철통보안을 계속 유지하기란 힘들 겁니다.



출처 - 아시아투데이


사실 공권력에 의한 검열 강화 조처에 따라 국내 메신저가 아닌 외산 메신저가 주목받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국 검찰의 압수수색의 마수가 미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때문이죠. 안타깝게도 한국 기업인 카카오톡은 국내 검열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라인은 엄밀히 말해 개발을 일본 법인에서 했기 때문에 벗어날 여지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정부에서 법률을 개정하거나 비밀리에 카카오톡 중계서버에 감시 기능을 투입한다면 지정한 키워드에 대한 실시간 검열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외국 기업이라면 공권력 개입을 거부하고 철수하거나 해외로 서버를 이전할 수도 있겠지만, 국내 기업은 망하기로 작정하지 않은 이상 여러 모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겠죠.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시작된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대응 방안'이란 해묵은 '게임 셧다운제'나 '인터넷 실명제'처럼 국내 기업의 발목만 잡고 실효성은 없는, 외국 기업만 배불려 주는 꼴이 되기 십상입니다. 공권력으로 검열을 강화하겠다며 IT산업계에 흙탕물을 일으키는 이들이 다른 한편에선 창조경제를 위한 SW교육을 의무화하겠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페이스북 메신저나 구글 행아웃 같은 메신저를 써도 텔레그램과 별반 차이는 없을 겁니다. 문제의 핵심은 메신저를 갈아타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공권력의 검열을 저지할 구조 정비가 근본 해결책


에드워드 스노든을 아십니까? 그는 CIA와 NSA에서 일했던 미국의 컴퓨터 기술자입니다. 2013년 스노든은 《가디언》지를 통해 미국 내 통화감찰 기록과 PRISM 감시 프로그램 등 NSA의 다양한 기밀문서를 공개하면서 자신의 폭로가 대중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대중의 반대편에 있는 일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디지털 시대 권력의 음모를 폭로한 스노든은 미국 정부로서는 눈엣가시입니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사생활의 영역마저 무차별 사찰하는 권력을 고발한 혁명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최근에 XKeyScore라는 또 다른 프로그램을 폭로했습니다. 이는 PRISM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NSA가 수집한 사용자들의 이메일, 인터넷 활동 등을 실시간으로 점검하는 프로그램이다고 합니다.

 

바로 어제 에드워드 스노든이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s) 명예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스노든의 폭로 내용을 보도한 영국 《가디언》의 편집장 앨런 러스브리저도 공동 수상한다는군요.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노벨상의 대안을 목표로 내세운 바른생활상은 인류의 긴급한 문제에 실질적이고 선도적인 해법을 제시한 사람을 기린다는 취지로 1980년 스웨덴에서 제정되었다고 합니다. 바른생활재단은 24일(현지시각) "스노든이 기본적인 민주 절차와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 전례없는 규모의 국가 감시 실태를 폭로하는 용기와 능력을 보여줬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고 하네요.

 

하지만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 정부의 감시에서 자유롭지 못해 여러 나라에 망명을 신청했습니다. 다행히 임시망명을 허가한 러시아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에드워드 스노든의 삶을 보면 외산 메신저를 사용한다고 해서 미국 정부의 감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실 겁니다. 단지 한국 정치와 권력의 입맛대로 움직이지 않을 뿐이죠. 가장 완벽한 보안은 인터넷이 연결된 곳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지만, 전 세계가 연결된 세상에서 주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된 메신저를 끊고 살기란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소통이 주는 장점이 너무나도 크니까요.

 

결국 진짜 보안을 유지하고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국가라는 구조와 공권력의 작동방식을 재편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인이 윽박지르니 짖는 개처럼 굴 것이 아니라, 원칙이 바로 선 법률 제정과 국민을 우선으로 하는 법 집행이 뒤따라야 하겠죠. 이를 위해 사회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권력층을 향한 견제가 필요합니다. 보통 사람이 가진 가장 큰 견제 수단은 바로 투표권입니다. 언제까지 중국만도 못한 언론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에 가만있어야 합니까?



출처 - 오마이뉴스


국민의 여론이 비등하자 검찰은 일단 한 발 물러났습니다. 그냥 원론적인 얘기였을 뿐이라는 입장을 표명하면서요. 세월호 참사와 연관된 루머를 잠재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메신저를 실시간 검열하는 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진실을 밝히는 겁니다. 자꾸 감추니까 뭔가 더 있었던 것 같은 의심을 하게 되는 거죠. 대통령의 알 수 없는 7시간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이 참 별꼴을 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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