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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의 승리, 무엇을 의미하나

by 생각비행 2014. 9. 24.

최근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나 쌤앤파커스 출판사 성추행 사건 등에서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식의 이상한 사법부의 판결을 비판하는 논조의 기사를 자주 쓰게 되었는데요, 오늘은 기쁜 판결 내용을 중심으로 소식을 전하려 합니다. 

 

언론을 통해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전원이 정규직으로 채용될 길이 열렸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줄 압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8일, 현대자동차에서 2년 이상 하청 노동자로 근무한 994명이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등 청구 소송에 대해 사실상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이들이 현대자동차의 정식 노동자로서 받아야 했을 임금 차액 중 일부인 230억 원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현대자동차는 개정된 파견근로자보호법에 따라 이들 전원을 직접 고용할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수없이 그들을 실어 나르던 희망버스에도 참으로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게 되었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어떤 형태의 사내하청이든 불법파견


현재 파견법은 노동자의 권리 침해를 막기 위해 파견 기간과 업종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기간은 2년, 가능업종도 26개로 제한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파견법이 금지하는 제조업 직접공정에 불법파견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2012년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노동자 최병승 씨가 대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 최종 확정판결을 받기까지 현대자동차는 불법파견과 관련한 수차례의 법적, 행정적 판단이 개인 또는 일부 공정에 관한 것이라며 번번이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1000여 명에 달하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제기한 대규모 소송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이번 판결의 의의는 자동차 철판 작업부터 완성차 선적 업무까지 공정을 따지지 않고 정규직이며, 자동차뿐 아니라 제조업 공장에선 어떤 형태의 사내하청을 써도 불법파견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노동계가 10년여 동안 제기해온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법적 판단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합니다.



출처 - 세계일보


이 판결이 나기까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가혹한 세월을 견뎌야 했습니다. 2010년 울산과 아산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위해 공장을 점거하고 투쟁했습니다.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고서 60퍼센트밖에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인격 모독과 같은 부당한 대우에 시달려왔기 때문입니다. 현대자동차 사측은 용역을 동원해 폭력으로 이들을 탄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3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분신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지난해 7월에는 기나긴 투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절망감을 느낀 나머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박정식 노조 사무장이 "꿈과 희망이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하지만 현대자동차 사측은 2010년 대법원의 판결마저 애써 축소하며 정규직 고용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2014년까지 이들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뭉개고 있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검찰의 봐주기가 있었습니다. 2004년 노동부는 현대자동차의 모든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 모두를 무혐의 처분해버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번 판결이 나오기까지 10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지속적인 불법파견에 따른 현대자동차 경영진 처벌을 촉구해왔으나 검찰은 매번 범죄의 고의성을 입증할 수 없다며 기소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든든한 배경 덕분에 현대자동차는 노동부의 판정이나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버틸 수 있었던 겁니다.


출처 - SBS


서울중앙지법의 지난 18일 판결로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이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한두 명이 아닌 1000여 명에 해당하는 사내하청 노종자들의 불법파견이 법적으로 입증되었으니까요. 이제 이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함은 물론 여태까지 미적거린 검찰은 현대자동차 경영진에 대한 강제수사에 들어가 그에 따른 기소를 해야 합니다.


이번 판결로 뒤이어 벌어질 유사 소송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삼성전자서비스, 기아자동차, 현대하이스코, 한국지엠 등 20개 사업장에서 3000여 명에 달하는 하청업체 직원이 정규직 근로자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정규직 지위가 인정된다면 비정규직 처우 개선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현대자동차, 땅투기를 멈추고 사람을 보라



출처 - 머니투데이


뜻깊은 판결이 나던 날, 현대자동차그룹은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무려 10조 5500억 원에 낙찰받았습니다. 부지 감정가는 3조 3000여 억원이었고, 차점자인 삼성이 약 5조 원에 입찰했다고 하니 현대자동차그룹은 사실상 정상가의 세 배가 넘는 돈을 주고 땅의 주인디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입찰로 서울시에 내야하는 취득세만 8000억 원에 이릅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30여 개 그룹사가 입주할 통합사옥 건립을 위해 사들인 땅이어서 100년의 미래를 내다본 결정이라고 애써 자찬했지만, 이런 땅투기에 눈이 먼 과욕은 주주들에게도 밉보인 것 같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삼성동 한전 부지를 말도 안 되는 가격인 10조에 낙찰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진 순간, 현대자동차그룹의 주식이 폭락하기 시작해 이날 하루 동안에만 시가총액 8조 5000억 원이 증발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현대자동차그룹이 정말로 100년을 내다보는 비전이 있다면 땅투기에 열을 올릴 게 아니라 이번 판결을 조속히 이행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노동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무릇 사업이란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동안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소송전으로 대응하면서 노사합의를 통해 특별채용하는 방식으로 사내하청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현대차는 소모적인 소송을 하며 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일이 무의미하며 사회적인 비판을 면하지 못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노동자를 위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일신하는 것만이 100년 기업으로 성장하는 길임을 직시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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