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인멸도 비정상의 정상화인가?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삶을 그려낸 영화 <명량>이 1500만 관객을 넘어 한국 영화 흥행 역사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생각비행은 일전에 이순신 장군께 진짜로 본받아야 할 리더십은 극한의 난전 속에서도 지휘관이 최전선에서 솔선수범하며 최대한 병사들이 살아서 돌아올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참 군인의 면모를 뒤따라야 할 군이 온갖 비리와 봐주기, 사건·사고로 추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터진 윤 일병 살인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국민은 군을 향한 신뢰를 거뒀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어디다 팔아먹었는지조차 모를 인면수심의 군을 과연 어떻게,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인 남성에게 군역의 의무를 부과한 대한민국은 장병의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군은 병사들의 무사귀환을 책임지기는커녕 군 복무 중 사망한 장병과 유가족을 또 한 번 죽이는 법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출처 - 이데일리



군 의문사 시신 화장 법안 추진, 증거 인멸 위한 초석인가?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기치로 내걸어 사람들의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국방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정부 보고 자료로 '장기 미인수 영현처리 육군 추진 계획'이라는 것을 마련했습니다. 이 때문에 국방부가 장기 미인수 시신에 대해 강제 화장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복무 중이던 군인이 사망하면 군은 수사를 통해 이유를 밝히고 유가족에게 알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 유가족이 그 수사 결과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밝히면 군 의문사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현재 군은 수사 결과와 다른 이유로 숨졌다는 입증 책임을 수사당국이 아닌 유족이 지게 하고 있습니다. 군 조직은 문제 발생 시 부대가 해체되거나 고인과 같이 복무한 병사나 간부가 뿔뿔이 흩어지거나 하는 문제가 있고,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내부고발의 피해를 두려워해 사전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무엇보다 군 내 수사는 국가 안보를 빌미로 매우 폐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보 접근에도 제한이 많습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지금까지 진실이 규명되지 못하고 수사가 종결되지도 않은 채 의문사 상태로 군 안치소에 상당한 유골이 모셔져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유골은 43년, 시신 상태로 냉동고에 15년간 계신 분도 있습니다. 그 긴 시간을 유가족은 지옥 같은 삶을 살았겠죠.



군의 폐쇄성을 해체할 대안이 필요한 때


성인 남성 대부분이 군역을 마친 이 나라에서 최근 군대 내 문제로 드러나는 수사 결과를 그대로 믿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군의 추잡한 면모가 세상에 고스란히 드러난 윤 일병 살인사건의 경우도 국방부가 처음 발표한 공식 수사 결과에 따르면 회식 중 취식으로 인한 기도 폐쇄가 그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윤 일병은 구타와 가혹행위 때문에 사망한 사실이 밝혀졌죠.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치사사건의 경우처럼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군사독재 시절의 경찰 발표와 오늘날 군의 발표가 대체 어떻게 다른 건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 한겨레


대한민국의 군대 내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군은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는커녕 증거 인멸을 법제화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법령 개정 3년 이상 인수 거부 시 화장.' 이 내용만 보면 무연고 시신을 화장하겠다는 내용 같지만, 지금처럼 군 의문사 문제가 비일비재한 상황에서는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유족의 의지에 반해 시신을 화장함으로써 증거를 인멸하겠다는 논리에 불과합니다. 

 

지금도 군은 사건이 터져 수사가 진행되면 유족을 회유하고 협박해 시신을 속히 화장하게 합니다. 고인을 화장하면 순직 처리하여 국가유공자로 지정해주겠다는 꼬드김에 넘어가 유골만 남은 유족의 억울함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바로 그런 유골이 43년째 남아 있다는 겁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의 폭로로 여론이 나빠지자 다급해진 국방부는 처음엔 유가족의 동의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시행 전 관련 방법을 유가족에게 고지하고 6개월 전에 유가족에게 통보하는 식으로 처리하겠다며 발을 뺐습니다. 고지와 통보는 모두 일방적인 행위일 뿐입니다. 유가족에게 기약 없는 통보 편지만 달랑 보내놓고 국방부가 마음대로 시신을 화장해버릴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국방부의 발표 내용 어디에도 명시적으로 유가족의 허가와 동의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더구나 기가 막힌 건 이런 인면수심의 법안을 국회가 아닌 국방부 훈령 개정을 통해 처리하려고 준비 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법안이라 국회에서는 통과되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국방부 안에서 몰래 해치우려고 했겠지요. 이 법안의 의원 입법을 추진하는 것으로 명시된 백군기 의원은 국방부에서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적은 있지만 법안 발의를 추진한 적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덧붙여 유족 동의 없이 이런 법안이 추진되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결국 국방부의 해명이 궁색해졌습니다. 정부가 민감한 법률 개정을 추진할 때 흔히 쓰던 꼼수가 제대로 먹히지 않았나 봅니다. 

 

이번 사건은 군의 폐쇄성을 국가 안보라며 방치했을 때 인간성이 과연 얼마나 좀 먹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출처 - 이데일리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이 사실로 드러나고, 22사단 고성 GOP 총기 난사 사건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 군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후 군인 신분의 자살자가 갑자기 늘어나더니 급기야 윤 일병 살인사건으로 군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여기에 김광진 의원이 국방부가 군 의문사 사병의 시신을 강제 화장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자 국방부는 아연실색해서 군 의문사 입증 책임을 일부 정부가 지겠다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시적으로 여론을 잠재우려는 심보인지 아니면 물러설 곳이 없는 군의 상황과 그간 끊임없이 진실을 규명하라고 요구해왔던 의문사 유족들의 노력이 맞물려 결실을 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 너무 늦게 나왔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현재 군 의문사 사건으로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시신은 18구, 유골은 133구라고 합니다. 이분들이 편안히 영면하실 날은 언제쯤 올까요? 대한민국 군대에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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