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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세월오월> 전시 유보, 박근혜 무엇을 얻었나?

by 생각비행 2014. 8. 13.

검열의 역사는 뿌리 깊습니다. 과거 왕권과 종교의 권위에 도전하는 책을 금서로 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음란과 폭력을 통제한다는 미명하에 이뤄지는 검열에 이르기까지 검열은 지배자의 통치 수단으로 이용된 측면이 다분합니다.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이런 검열이 일상화되면 피통치자는 검열의 '끝판왕'이라고 할 자기 검열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속칭 '알아서 기게 되는' 거죠. 이런 상황은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검열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비화합니다. 생각비행은 검열의 헤게모니를 쥐고 표현의 자유를 억합하려는 국가와 정부의 문제를 줄곧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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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2014년 현재 광주에서 예술가의 작품을 검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출처 – 광주 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박근혜 비판을 금지하다


민주화의 상징 도시 광주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는 올해로 20돌을 맞은 현대설치미술전시회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생긴 비엔날레로 국제적 위상도 매우 높습니다. 올해 9월 5일부터 열릴 예정이던 이 행사에 17개 나라, 49명의 작가가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광주비엔날레가 올해 그간 쌓아온 위상을 일거에 허물어버리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비엔날레 창설 20돌을 맞아 광주 5.18 정신을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로 특별전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비엔날레 측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특정 예술 작품의 수정을 지시하고, 그 수정본조차 전시를 거부한 일이 사건의 발단입니다. 문제 작품은 민중미술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입니다.


출처 - 뉴시스


광주비엔날레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을 거부한 이유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할 박근혜 대통령을 작품에서 허수아비로 표현했기 때문인데요, <세월오월>은 세월호 참사로 불거진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이 등장하게 된 원인을 되짚어 올라가 결국 518 광주에 닿는 작품입니다.

 

작품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김기춘 비서실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문창극 총리 후보자,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수많은 정치인이 등장합니다. 광주 비엔날레 측은 박정희로 보이는 군사독재 정권과 김기춘에 의해 조종되는 허수아비로 묘사된 박근혜 대통령 부분을 수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홍 작가는 고민 끝에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형상화한 내용을 닭으로 수정합니다.
 

출처 - 한국일보


그러나 광주비엔날레 측은 홍 작가의 작품 전시를 유보했고, 보수단체들은 홍 화백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에 이릅니다. 홍 화백은 "세월호를 들어 올려서 아이들을 탈출시켜 우리 품 안에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림의 주제도 못되고 부제일 뿐이다.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침몰 사고가 아니라 학살사고이고 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에 있다고 생각해 그림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림 수정으로 작품이 담고 있는 원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작가의 작업에 간섭하지 않겠다며 취소 결정을 뒤집고 비엔날레 재단이 결정할 일이라고 한발 물러서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하지만 비엔날레 재단은 결국 <세월오월> 작품의 전시 유보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세월오월>은 특별전 장소인 광주시립미술관에 걸리지도 못한 채 특별전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특별전을 총괄해온 책임 큐레이터는 <세월오월> 전시 유보가 자신이 불참한 가운데 강행된 결정이라며 개막식에 앞서 사퇴를 표명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항변하면서 말입니다. 애초 계획된 특별전 개막식은 5분 만에 파행으로 끝났고, 20년 전통의 광주비엔날레는 5.18 정신을 세계에 알리기는커녕 그 정신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세계 작가들의 공동 대응, <세월오월>의 전시를 허하라!


지난 8일 특별전 개막식장 바깥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세월오월> 작품의 게릴라 전시가 기획되었습니다. 홍성담 작가를 포함한 다른 작가들이 <세월오월> 작품의 수정된 그림을 4배 크기로 확대한 프린팅을 가지고 외부에 전시하는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려 했으나 사복경찰 50여 명이 동원되어 이를 막는 소란이 일었습니다. 이후 홍 작가의 거주지를 사복경찰이 감시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사태가 점점 커지자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들이 공동 대응에 나섰습니다.
 

출처 - 광주일보


이윤엽, 홍성민, 정영창 작가는 지난 11일 오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달콤한 이슬 1980년 그 후’에 출품했던 자신들의 작품을 자진 철거했습니다. 작가들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검열에 항의하면서 이 작품을 전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출처 - 광주일보


광주비엔날레 보이코트 움직임에 국제적인 반향이 일고 있습니다. 일본 오키나와 미술계가 출품작의 철회 의사를 밝히며 홍 작가의 <세월오월> 작품 전시를 요청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오키나와 미술계는, 예술은 정치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생명과 존엄의 문제로 제안하는 행위이므로 예술 작품은 정치의 힘으로 막을 수 없으며, 그렇지 못하다면 비엔날레의 이념이 무너진 것이니 참여할 의미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독일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을 오키나와 미술계가 대여해주었기 때문에 오키나와 미술계가 전시를 철회할 경우 광주비엔날레는 국제적인 망신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번 사태는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 측이 박근혜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벌어진 촌극에 가깝습니다. <세월오월> 작품 중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풍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광주민주항쟁으로부터 이어진 민주정신이 세월호 참사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다는 승화와 치유가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입니다. 

 

설사 홍 작가의 작품 주제가 직접적인 박근혜 비판이라 할지라도 정치권이나 행정력이 예술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일반적인 장소가 아니라 예술적 표현의 극한을 맛볼 수 있어야 할 예술전시회장에서 이번과 같은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권력의 검열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 드러나는 지표가 아닌가 합니다. 눈치를 보고 몸을 사려야만 무사할 수 있다는 자기 검열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다른 곳도 아닌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가 독재자의 딸을 무서워하며 알아서 기다니 참혹한 심정입니다.

 

 

박근혜 정부, "자유 없는 민주주의"를 꿈꾸는가?


 

출처 - 한겨레


작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월간 《현대문학》이 원로소설가 이제하와 정찬, 서정인의 소설 연재를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중단시킨 것이죠. 그러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신을 부정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문학에 이어 이번에는 미술 다음에는 어떤 예술이 권력 앞에 굴복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될까요? 독재자의 그늘에서 비롯된 박근혜 정권의 어둠이 우리 사회에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술계의 연대와 시민의 관심과 비판의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종북몰이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자유 없는 민주주의"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2013년 12월 16일 국회 세미나실에서 열린 '표현의 자유와 언론탄압 2차 사례발표'에 참석한 유종성 교수(미국 UC샌디에고)는,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요소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한다고 해도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 없는 민주제"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 부정 당선 의혹, 국정원과 국방부가 연류된 부정 선거와 댓글 조작 의혹, 이를 수사하던 검찰의 수장을 혼외아들 문제로 찍어낸 의혹, 국가정보원의 유오성 간첩조작사건 등을 바라보면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선박 침몰 사고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퇴행과 깊은 연관 관계가 있으며, 총제적인 구조 실패가 독재 국가에서나 나타날 법한 정권의 경직성 때문이라는 비판적 분석이 힘을 얻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제(8월 12일) 《경향신문》에 홍성담 작가를 인텨뷰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내 그림 '수장고'라는 감옥에 가두지 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인터뷰 내용을 발췌해 전달하는 것으로 이번 기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왜 이런 작품을 구상했나.

“올 1월부터 ‘광주 정신과 관련한 전시회를 하는 데 걸개그림을 그려 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수차례 거절해 왔다. 그런 와중에 세월호가 침몰했다. 내 작업실이 안산에 있는데 단원고 2학년생 2명을 아르바이트로 써 왔다. 이 중 한 명도 숨졌다. 사고 이후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며 나흘을 보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자본주의와 부패한 관료, 국민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국가 시스템이 세월호 사건을 만들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세월호와 5·18은 국가 폭력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작품을 결정했다.”

 

-박 대통령 풍자 장면은 꼭 필요했나.

“세월호 침몰로 304명이 죽거나 실종됐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못 했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박 대통령에게서 유신의 그림자를 봤다. 대통령은 유신의 어두운 그림자들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사건이 발생한 정치적 원인은 반드시 밝혀서 증언하고 기록해야 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시각적으로 기록할 임무와 의무가 민중미술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광주시는 ‘시의 예산이 지원됐는데 정치적 내용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광주시에서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전체 제작비는 1억원 정도 들었다. 작품은 기획 단계부터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광주 정신은 저항 정신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들에게 저항하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광주 정신을 알리겠다는 전시회에서 이런 정도의 권력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도 못 한다면 광주 정신은 집어치워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전시가 불가능하다면 작품은 작가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시는 미술관 수장고에 넣어 둔 채 감옥살이를 시키고 있다. 세상에 빛을 못 보게 하려는 술수다. 광주시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너무 부끄럽다. 윤장현 시장이 책임지고 담대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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