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일 외에 별로 잘하는 게 없는 작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그 글에 제주의 아름답고 아픈 사진을 함께 담아 책으로 엮습니다.
2007년 봄에 시작된 제주도 강정 마을의 600명이 넘는 주민, 평화활동가들에 대한 연행, 구속, 투옥, 벌금 사태 뒤에는 불법 공사 상황이 있습니다. 주민 협의를 거치지 않은 강제 과정, 전쟁을 도발하는 안보 기지, 민군복합항이 입증되지 않은 설계도, 환경문제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공사, 인권 유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법 요인에 대해 제주도지사를 중심으로 제주 주요 언론은 입을 다물거나 시실을 왜곡해 왔습니다.
심지어, 2012년 9월에 장하나 국회의원이 찾아낸 해군 문건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한미해군사령관이 요구한 설계 기준에 의해 제주해군기지는 미군 핵 항모가 입항할 규모로 설계되고 있다."
2013년 봄, 제주도 강정의 싸움은 아직 '현재진행중'입니다.
생각비행은 월요일 저녁 《그대, 강정》 북콘서트 현장에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가톨릭청년회관 5층 니콜라오홀은 이미 꽉 차 있었습니다. 최근 해군이 공사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다들 조금씩 강정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던 마음도 한순간에 날아가버렸습니다. 강정앓이가 아직도 이렇게 많이 있구나 하고 서로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강정마을에 건설 중인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활동으로 연대하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그대, 강정》 북콘서트 공연 모습과 섞어서 후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와락 꼬마 난타팀이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아이들 공연 모습을 찍지 못했는데요, 와락프로젝트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이 있어 소개합니다.
(출처: 와락프로젝트 트위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료모임인 '와락'의 꼬마들로 구성된 난타팀은 볼 때마다 실력이 느는 것 같습니다. 와락 지하에 마련된 연습실에서 진행된 난타 수업에 꾸준히 참여했기 때문이겠지요. 앞으로 이 아이들이 그려낼 세상이 기대됩니다.다음으로 배우 곽유평 씨가 유채림 작가님의 글 <태산아, 참극이다>를 낭독해주었습니다.
곽유평 씨에 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만 목소리의 강약, 고저, 장단만으로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내공이 깊은 배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태산아, 참극이다>를 쓴 유채림 작가님은 두리반 투쟁으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2011년 6월 24일 저녁에 "두리반에서 부르는 제주도 푸른밤"이라는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두리반에 연대하는 분들이 강정마을을 돕기 위해 마련한 콘서트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자신의 아픔보다 마을공동체가 깨어지고 아름다운 자연이 훼손되는 강정의 상황을 걱정하시던 유채림 작가님을 기억합니다. 콘서트에 참가했던 분들이 두리반의 평화와 강정마을의 평화를 염원하며 한마음으로 소리 높여 '너영나영'을 부르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두리반에 평화가 찾아왔듯이, 강정마을에도 속히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음악인 봄눈별 씨의 연주를 배경으로 배우 송은미 씨가 시인 김근 선생님의 글 <지구의 평화를 담은 땅, 여기는 구럼비입니다>를 낭독해주었습니다. 강정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글과 잔잔한 연주 덕분에 상한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자연과 생명이 이미 조화를 이룬 이곳에서 인간은 인간대로 그 조화로움에 기대 여태 살아왔을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한낱 인간이, 그것도 그 공동체에 속해 보지도 않은 인간들이, 자본과 권력이라는 거대한 괴물을 앞세워 구럼비 해안에 권리 주장을 하는 것을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연산호라면 또 모를까, 붉은발말똥게라면 또 모를까.
다음은 평화활동가 최성희 선생님과 정혜윤 피디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최성희 선생님은 강정마을 국제팀에서 평화활동가로 연대하고 계십니다. 《그대, 강정》 북콘서트 현장에서 1년 전 구럼비 발파 현장으로 달려온 평범한 시민 한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예술의 힘으로 전쟁 위기를 막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셨습니다.
생각비행은 최성희 선생님과 오랜 인연이 있습니다. 직접적인 관계는 강정마을 영자신문을 리뉴얼하는 작업에 참여하면서 2010년 11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약 6개월간 디자인과 제작을 맡아 연대하면서 이뤄졌습니다. 최성희 선생님은 그 당시 해군기지 공사로 바람 잘날 없는 강정마을에서 여러 국제팀원과 소통하며 한 달에 한 번 영자신문을 발간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계셨습니다. 강정의 소식을 세계로 알리기 위해 이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강정마을 국제팀과 연대하며 만든 영자신문
영자신문의 발행부수는 많지 않았지만 피디에프(PDF)로 만든 영자신문은 전 세계 곳곳으로 배달되었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밖에 도와드리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열정 덕분에 참 많은 것을 배우는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2012년 6월 13일 조계사 강정평화캠프에서 최성희 선생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매주 수요일에 진행되던 '생명평화촛불 시노래 강연회'에 평화를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방문하신 겁니다.최성희 선생님은 강정마을에서 평화 활동을 하던 엔지 젤터(Angie Zelter) 선생님 이야기를 서두에서 들려주셨는데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엔지 젤터가 강정마을에서 활동할 당시 세 번 체포되었는데, 자신의 이름을 '강정마을을 지키는 세계시민'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엔지 젤터는 항상 지구 깃발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구를 찍은 사진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무력의 남용과 끝없는 전쟁이 누구도 보호해주지 못하며, 진정한 문제는 기후변화, 물과 식량의 부족, 종다양성 감소, 생태계 파괴이며, 전지구적인 협력으로 근본적을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강조하던 평화활동가로서의 발자취를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날 최성희 선생님께서 제주 해군기지 반대 활동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대, 강정》 북콘서트에서는 이후 순서 때문에 최성희 선생님의 이야기를 길게 들을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이후 순서는 가수 이지상 씨의 노래 공연이었습니다.
<탄타오와 문정현>이라는 노래를 2012년 여름 강정평화대행진 전야제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그때의 감동이 《그대, 강정》 북콘서트 현장에서 고스란히 재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베트남 국민시인으로 불리는 탄타오는 1968년 3월 16일 미군이 자행한 밀라이 마을의 대규모 민간인 학살 소식을 듣고 구찌터널 안에서 틈틈이 <밀라이의 아이들>이라는 연작시를 썼다고 합니다.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 시가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서사시로 평가받고 있다고 하는군요."구럼비 학살이 강정의 학살이 밀라이의 학살과 무엇이 다른가" 하고 묻는 이지상 시인의 노랫말이 귀에 맴돕니다. 북콘서트에서 영상을 담지 못해 이지상 씨 블로그에 있는 노래 영상을 연결합니다.
(출처: 이지상 블로그)
이지상 시, 곡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 슬픔을 슬픔으로 엮는 시인 / 그런 일이 있었다네 밀라이에선 / 하늘과 달빛과 아이들이 뛰노는 들판 위로 / 하나의 총알이 한 아이의 심장에 / 또 하나의 대검이 여인의 가슴팍에 / 그렇게 흘린 피로 강물이 흐르고 / 꽃이 되고 시가 되고 평화가 되고 / 워 워워워~~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 슬픔을 슬픔으로 엮는 시인 / 그렇게 말한다네 베트남시인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고 / 구럼비 학살이 강정의 학살이 / 밀라이의 학살과 무엇이 다른가 / 하늘까지 닿는 죄악은 만대가 지나도 / 지워지지 않는다네 지울 수 없다네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네 / 워 워워워~~~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 슬픔의 중심만을 걷는 사제 / 그런 일이 있었다네 제주도에선 / 수만 년 사람과 파도와 바람이 놀던 바위 위로 / 육지경찰 몰려오고 굴착기 포크레인으로 / 사람들을 패대고 바위의 심장을 뚫고 / 군사기지 만들어서 평화를 팔아먹는다네 / 이런 놈의 나라는 나라도 아니라네 / 워 워워 워 워워 워~~~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 슬픔의 중심만을 걷는 사제 / 그렇게 말한다네 길 위의 신부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고 / 구럼비 발파가 대추리의 함성으로 / 강정의 외침이 용산의 비명으로 / 하늘까지 닿은 죄악은 만대가 지나도 / 지워지지 않는다네 지울 수 없다네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네 / 워 워워 워 워~~~~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다음 순서는 성미산 공동체 학생들의 공연이었습니다. 구럼비와 맹꽁이를 인격화하여 그들의 입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숨죽여 귀를 기울이게 하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마임이스트 이정훈 씨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온 몸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중덕바다와 구럼비 그리고 뭇 생명체들을 형상화한 듯했습니다. 마임 공연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그런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으로 《그대, 강정》 글 쓴 작가 두 분과 사진작가 두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하여 강정마을과 연대하시는 분들을 향한 작가들의 마음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오랜 시간 강정마을의 사람들과 대자연의 풍경을 찍어온 두 분 사진작가의 이야기도 정겨웠습니다. 애정과 관심 그리고 열정이 없이는 그런 작업을 이어갈 수 없는 법이지요.
마지막으로 두리반대책위원 유채림, 조약골, 윤성일, 정경섭, 김성섭으로 구성된 밴드 '섭섭해서 그런지'의 공연 모습까지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야마가타 트윅스타'의 공연은 담지 못했습니다.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진 북콘서트 자리를 마지막까지 지키는 분이 많이 계셨습니다. 정리 정돈을 돕는 분도 계셨고, 오랜만에 만나 담소를 나누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책 출간부터 북콘서트 성사와 참여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게 연대의 힘입니다. 《그대, 강정》 추천의 글을 보니 임보라 목사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써놓으셨네요.
"구럼비를 포함한 강정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닌 강정앓이들의 공통분모이다. 그렇기에 43명의 작가들이 쓴 강정을 향한 연애편지는 우리가 이어 가야 할 투쟁의 기록이어서 절절히 가슴에 박힌다. 끝나지 않은 투쟁, 우리가 끝끝내 이어 가야 할 투쟁, 그 투쟁은 온몸을 담아내는 사랑의 바닥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이 연애편지가 그렇다."
그렇습니다. "그대, 강정"은 우리 모두가 함께 불러야 할 이름입니다. 평화의 섬 제주 구럼비에서 다시 평화를 노래할 그날을 기다리며 그대 이름을 부릅니다. "강정아, 너는 비록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