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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물/도서비행

농촌마을 홍동의 규장각, 밝맑도서관

by 생각비행 2011. 7. 15.
풀무학교를 다녀온 내용을 바탕으로 2회에 걸쳐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이전 기사 1, 2) 오늘은 농촌마을에 인문학 공부 열풍을 몰고온 밝맑도서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에 자리 잡은 농촌에 곧 있으면 도서관이 개관됩니다. '홍동밝맑도서관'이 바로 그곳인데요, 시골이라고 생각하는 농촌 지역에 도서관이 생긴다는 건 정말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과연 이 도서관은 어떻게 생겨났고, 앞으로 어떻게 운영될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밝맑도서관의 시작

밝맑도서관이 생긴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홍동 지역에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풀무학교가 설립되어 많은 젊은 학생이 홍동에 뿌리를 내리는 사이 홍동마을은 유치원부터 대학교육까지 아우를 수 있는 특이한 시골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곳에선 국제농업회의가 열리고, 국내외 유명 환경 생태 전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또한 신재생 에너지 연구를 활발히 시도하고, 새로운 유기 농업기술을 소개하고 실천하는, 그야말로 '작지만 큰 마을'이 되었습니다.

밝맑도서관 입구에 붙은 입춘첩


밝고 활기찬 홍동지역이지만 청소년과 주민 모두에게 교육 시설과 문화 시설이 부족하다고 느낀 사람들은 도서관을 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이라고 하면, 베스트셀러 위주의 서가와 열람실, 그리고 연속간행물을 늘어놓은 공간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홍동 사람들은 도서관의 개념을 조금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이곳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서관은 지역 특성인 생태농업 정보의 저장고이자 주민의 평생교육 기관이고, 지역 안에서 만남의 장소미취학 어린이들이 책을 쉽게 접하는 곳일 뿐 아니라 지역 역사의 기록을 보존하는 정보센터로서 향토사의 규장각인 셈입니다. 홍동밝맑도서관은 이런 다양한 지역주민의 바람을 하나로 모아 지은 자치적인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밝맑도서관은 풀무학교 설립자 중 한 분이신 '밝맑 이찬갑 선생님'과 연관이 있습니다. 풀무학교에서는 해마다 이찬갑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해 문집을 내고 추모 예배도 드리지만, 그분을 기념하는 사업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이찬갑 선생님의 자제인 이기문 교수와 이기백 교수가 풀무학교에 장서 기증의사를 밝히고 상당한 양의 국어학 책과 인문학 책을 기증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이찬갑 선생님이 일제강점기에 사라질 위기에 놓인 한글을 지키려고 애써 모았던 책도 기증할 의사를 밝혀 밝맑도서관 설립 추진에 더 큰 힘이 실렸다고 하는군요.

도서관 개관 진행상황을 설명 중인 홍동 지역주민 최문철 씨

각처에서 기증한 도서가 한데 모여 분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풀무학교 개교 50주년을 맞이한 2008년에 기념사업추진회를 꾸려 크게 두 가지 기념사업을 벌였는데요, <풀무교육 50년사> 편집과 홍동밝맑도서관 건립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밝맑도서관의 현황과 전망

2008년에 추진위원회를 발족한 이후 밝맑도서관 신축사업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도서관을 지을 건축 부지를 학교에서 사들였고, 풀무교육 50주년 기념행사장에서 바자를 열어 모금활동을 벌였으며, 충남도청으로부터 〈사단법인 홍동 밝맑도서관〉인가 또한 받았습니다. 그리고 추진위원회는 몇 번의 회의를 거쳐서 아래와 같이 밝맑도서관을 운영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 지역의 정신적 바탕이 되는 기독교, 국학, 교육학 기념 아카이브
◎ 지역 역사자료와 지역 관련 정보 수집
◎ 어린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어주어 꿈과 의미, 창의력을 높이는 두밀리 어린이방 조성
◎ 지역 유기농업 발전을 위한 도서 수집 및 활용
◎ 농민 글쓰기, 전통농촌문화를 재창조하는 문화사업과 공연 공간 조성
◎ 각종 세미나와 강좌, 독서회, 토론 연구 발표로 평생학습장으로서의 역할
◎ 지역출판사와 연계해 도서, 잡지 간행
◎ 갤리거 곤충의 집(곤충관)과 휴게실, 선물가게 운영
◎ 작은 숙소와 식당, 전시 공간과 이동식 박물관 조성
◎  아카이브, 역사정보, 두밀리방, 농촌문화 등 분야별로 위원회 조직 자율운영
◎ 도서자료의 인터넷 열람
◎ 도서관 주변이 지역의 중심적 문화공간이 되게 함

마지막으로 언급한 "도서관 주변이 지역의 중심적 문화공간이 되게 한다"는 취지를 따라 밝맑도서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홍성여성농업인센터, 홍동보건소, 갓골어린이집, 풀무학교생협, 반짇고리공방, 뜸방, 재생비누공장, 느티나무헌책방, 그물코출판사, 갓골농업연구소, 갓골목공실 등이 한데 어울려 그야말로 도서관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의 문화를 창조해나가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밝맑도서관은 홍동 지역이 도서관 마을로 거듭나는 데 중앙도서관으로서 그 기능을 맡을 예정입니다. 아카이브 조성 계획을 보면 지역 전체에 전문도서관을 분산시켜 지역 전체를 도서관 마을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을 곳곳에 생길 작은 도서관은 컨테이너 조립식 건축물로 만들어 비용을 절감하되, 안팎을 창의적으로 꾸며 특색 있는 도서관으로 꾸밀 계획이랍니다.

밝맑도서관은 중앙도서관으로 마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정보를 수집함과 동시에 지역주민에게 각종 전시, 공연을 제공하고 영화를 상영하는 등 다양한 문화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맡게 됩니다. 수집한 지역 자료는 책과 잡지를 간행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며 도서관 내에서는 다양한 체험 강의와 평생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한 찾아가는 서비스도 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밝맑 움직이는 도서관' 차량을 운행하여 마을의 모든 사람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는군요.

<홍동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책과 관련된 모임들>

풀무고등학교 고전문학반

- 1963년 풀무학교 무교회 일요집회를 마친 뒤 홍순명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선생님과 홍성고, 풀무고 남학생들이 모여 고전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영문요한복음을 읽은 뒤 고전을 읽었는데, 단테의 <신곡>뿐 아니라 밀턴, 어거스틴, 세익스피어 등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모임은 3~4년 이어지다가 잠시 중단, 1990년대에 다시 시작되었다. 이때 단테의 작품이 문학, 철학, 사상 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단테의 <신곡>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머니 목요독서모임

- 1980년대 후반부터 풀무학교 여선생님들과 지역 여성들이 모여 성서잡지(현 성서신애)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모임으로 시작했다. 잡지를 읽는 동시에 무교회 신앙을 이해하기 위해 함석헌, 김교신 전집 등을 읽고 공부한다. 지난해에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읽었고, 올해는 《토지》를 읽기 시작해 10권을 향해 가고 있다.


풀무고등학교 공감

- 2007년 '문소망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이라는 이름으로, 학생 이름을 앞에 걸고 풀무학교 학생들이 모여 시작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같은 책을 읽고 모여 생각을 나눈다. 함께 책을 읽어나가고, 느낌을 나누며 친밀감을 쌓고, 책과 가까워지자는 생각으로 모임을 연다. 책을 함께 읽고 공감하자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 '공감'이다.


책 읽어주는 아마

- 2010년 봄부터 시작한 홍동 초등학교 학부모회 '책 읽어주는 아마'모임은 다른 사람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임이다. 학부모와 지역주민이 '아마(아빠+엄마)'로 활동하는데, 이들은 매주 1회 아침 8시 45분부터 20분간 그림책, 옛날 이야기책, 창작 동화책 등 다양한 어린이책을 1~6학년 아이들에게 매주 한두 권씩 들려주고 있다. 책읽기가 끝난 뒤 도서실에 모여 각자 소감을 나누며 다음 시간을 준비한다.

언뜻 보면 밝맑도서관은 농촌지역에 생기는 하나의 작은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도서관 하나 생기는 게 뭐 그리 대단하고 중요한 일이냐고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밝맑도서관이 의미 있는 점은 서울을 비롯한 큰 도시에 있는 도서관들보다 더 크고 멋진 꿈을 현실로 이뤄내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홍동의 역사에서 1958년 학교 개교가 제1의 물결이라면, 1975년 이후 유기농업이 지역에 퍼진 일이 제2의 물결이고, 풀무 개교 50주년을 맞아 2007년부터 논의되어 2010년 제대로 활동이 시작될 홍동밝맑도서관을 중심으로 지역이 총제적인 평생학습공동체로 들어서는 것이 제3의 물결이라고 생각합니다.

-<홍동밝맑도서관 바탕과 전망> 중에서, 홍동밝맑도서관 건립추진위원회 대표 홍순명

도서관의 전망을 내다본 글에서 드러나듯이 밝맑도서관은 마을 공동체의 역사를 함께 연구하고, 공동체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며, 인문학을 습득하는 농부를 양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주민 스스로 마을공통체의 삶을 깊이 성찰하고 풍요로운 공동체문화를 기르는 데 앞으로 밝맑도서관의 역할이 큰 힘이 되리라고 봅니다.
 
생각비행은 농촌이라는 흔히 생각하기에 문화적인 혜택을 덜 받는 곳이라고 여기는 곳에, 어느 지역보다 훌륭한 문화적인 혜택을 지역주민에게 전하는 도서관을 기획하고 주민의 힘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마을공동체가 도서관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더 생생히 보기 원하시는 분은 한번 방문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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