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양제
중국 역사를 보면 '폭군'으로 평가받는 왕이 많습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해 왕조를 세운 진시황제도 그렇고, 고구려에 쳐들어온 수나라 2대 황제인 양제도 그렇습니다. '양제(煬帝)'라는 시호에서 '양(煬)'은 '녹다' '불사르다'라는 뜻으로, 중국 역대 왕에게 붙은 시호 가운데 좋지 않은 순위를 꼽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랍니다.
수 양제가 '폭군'이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대표적이죠. 중국을 잇는 대운하 공사는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났습니다. 수 양제는 운하를 건설하면서 그 옆에 대로를 만들어 나무를 심고, 운하가 지나가는 중간에 40여 개의 행궁을 지었습니다. 이 사업에 1억 50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력이 동원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민심은 크게 동요했습니다. 세 차례에 걸친 고구려 원정이 실패로 끝나자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이 일어났고, 결국 수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수 양제가 일으킨 대규모 토목공사의 결과물인 대운하는 중국 남쪽의 장강과 북쪽의 황허 강을 연결함으로써 남북 융합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규모 사업에 따른 민심의 동요에 귀 기울이지 않고 공사를 감행했으며, 대운하를 자신의 유희 공간으로 사용하는 잘못을 저질렀죠. 그 결과 폭군으로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국민의 뜻을 거스른 4대강 사업과 MB정부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한 MB정부는 국민 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4대강 사업을 벌였습니다. 임기 내 치적사업으로 삼으려는 탓에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도 하지 않고 무리한 공기로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게다가 여름 장마를 피해 보 설치를 완료하고자 밤낮으로 작업을 서둘렀죠. 결국 안타깝게도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구미와 광주 지역에 단수 사태를 빚어 수많은 시민이 불편을 겪었습니다. 4대강 본류에 섣부르게 손을 댄 탓에 지류마저 정비해야 한다고 하니 공사 규모는 처음 예상과 달리 점점 커져 엄청난 국고가 동원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애초에 4대강 사업은 시작하기 전부터 수많은 사람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자연을 훼손할 때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를 무시한 채 MB정부는 막무가내식 삽질로 공사를 밀어붙였습니다. 어떤 공사라도 진행 중에 여러 차례 경고의 징후가 나타나면 일단 작업을 중지하고 과연 그것이 잘하는 일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런데도 MB정부는 대자연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한 채 공사를 강행함으로써 인재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4대강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노동자가 죽으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노동자 탓으로 돌아갑니다.
지금까지 4대강 공사현장에서 숨진 사망자는 낙동강 17명(16건)과 한강 3명(3건), 금강 1명(1건) 등 21명(20건)에 이릅니다. 올해에만 벌써 13명이나 되는 아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이 뒤따를지 걱정입니다. 국민의 혈세로 진행하는 사업이 국민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통탄할 일을 자행하는 MB정부의 만행을 막아야 합니다. 분명히 MB정부와 한나라당은 수 양제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세빛둥둥섬(플로팅 아일랜드)을 둘러싼 의혹
세빛둥둥섬은 2006년 한 시민의 제안을 받아들여 서울시가 기획한 인공섬입니다. 서울시는 수익형 민자사업(BTO)으로 계획을 잡고 3개의 섬-비스타(Vista), 비바(Viva), 테라(Terra)-을 만드는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2009년에 시작한 공사는 2010년 6월 비스타를 완공함으로써 끝났습니다. 제1섬인 비스타에는 공연장과 달빛산책로가 있습니다. 공연과 문화의 섬인 셈이죠. 제2섬인 비바는 문화체험 시설이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기능을 담당합니다. 제3섬인 테라에는 수상레저 시설이 있습니다. 서울시는 2010년 6월 남아공 월드컵 응원지로 세빛둥둥섬을 지정하여 소개했고, 2011년 5월 21일 전망공간을 개방했습니다.
세빛둥둥섬은 662억 원 규모의 예산으로 계획되었으나 ‘미디어아트’ 섬을 계획에 추가하고 구조체 형식을 보다 안전하게 바꾸는 등 안정성을 고려한다고 하여, 실제로는 964억 원이 투입되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된 만큼 서울시는 "공연, 컨벤션, 전시를 중심으로 레저, 축제 등 다양한 기능이 어우러진 레저시설로 조성될 '플로팅 아일랜드'는 안전과 한발 앞선 기술, 다채로운 콘텐츠 확보를 통해 올 상반기 시민이 기대해도 좋은 문화공간으로 탄생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여, 시민이 자주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조성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세빛둥둥섬이 완성되어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자, 애초에 발표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최근 세빛둥둥섬과 관련하여 서울시가 사업시행자가 빌린 돈을 갚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하는 등 각종 특혜를 줬다는 사실이 뉴스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CBS에 따르면 플로팅 아일랜드 조성 및 운영과 관련하여 서울시와 민자회사 사이에 뒷거래가 있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서울시는 사업시행자가 건설을 위해 돈을 빌리고 갚는 데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는 내용입니다. 사업시행자가 돈을 빌리고 갚는 일까지 도와줘야 할 만큼 '플로섬'이 부실한 회사인지 궁금하고, 부실한 회사였다면 왜 그런 사업자를 서울시가 선정했는지도 의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습니다.
새빛둥둥섬 사업을 하면서 플로섬은 전체 사업비의 82.8퍼센트를 대출금으로 이미 끌어썼음이 드러났습니다. '플로팅 아일랜드 조성 및 운영 사업협약서'에 나와 있는 재원 조달계획을 보면 총 사업비 964억 원 가운데 플로섬의 자기자본은 165억 원이고, 나머지 799억 원은 금융기관차입금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플로섬이 세빛둥둥섬을 운영하는 25년 동안 이자로 지출할 금액은 1196억 6300만 원으로, 총 예상 지출 금액인 4271억 400만 원의 28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이러니 '특혜둥둥섬'이라 한들 틀린 말은 아닐 듯합니다. 의혹은 또 있습니다.
애초 계획은 수익형 민자사업이었으나 그 정체를 들여다보니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게 없군요. 결국 시민의 돈으로 짓고, 서울 시민의 혈세로 메워야 할 돈이 한두 푼이 아닙니다. 플로섬은 준공 예정일인 2010년 3월 31일까지 공사를 마치지 못해 이행지체 보상금 71억 원 상당을 물어내야 하지만, 서울시는 '불가항력적인 경우'에 해당한다며 이조차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플로섬의 전체 지분 가운데 57퍼센트를 효성그룹이 가지고 있다는 데서 뭔가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플로섬은 MB 사돈가인 효성그룹 소유의 계열사입니다. 서울시가 플로섬에 금융차입, 행정처분 등에서 각종 특혜를 줬다는 내용이 단순 추측이 아님이 드러나는군요. 과연 세빛둥둥섬은 누구를 위한 섬일까요? 시민을 위해 만든 섬일까요, 아니면 4대강처럼 삽질로 배를 불리는 사람들을 위한 섬일까요? 삼척동자도 웃을 일입니다.
서울 시민이 입장 못 하는 세빛둥둥섬의 이상한 모피쇼
세빛둥둥섬은 6월 21일 개장했습니다. 개장 기념행사로 잡은 첫 번째 행사는 어이없게도 이탈리아 유명 브랜드 '펜디(FENDI)'의 패션쇼였습니다. '모피제품'을 패션쇼에 포함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동물보호협회와 동물사랑실천협회가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전국철거민연합회도 성명서를 내고 “모피는 토끼 밍크, 너구리, 친칠라 등 수십 마리의 동물들이 산채로 껍질이 벗겨져 붉은 속살을 내보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죽고 있기에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조차 없는 동물들을 생각하며 삶의 터전에서 대책 없이 쫓겨나는 철거민들이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분명하게 오세훈 서울시장의 생명경시행정에 경종을 울리려 한다”며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오세훈 시장은 “펜디와 계약한 후에 모피가 문제가 되어서 모피를 빼달라고 했지만 펜디 쪽에서 ‘무리다’라고 얘기해 계획했던 대로 하기로 결론 났다”며 “펜디가 모피로 출발했는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모피쇼를 허락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죠.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예전에 환경운동연합의 '모피옷 안 입기 홍보위원'으로 활동했다는 걸 혹시 알고 계셨나요?
세빛둥둥섬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개방시간이 단축되었다.
이러한 서울시의 강행방침에 6월 2일, 동물보호단체는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대응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세빛둥둥섬 운영 민간업체인 '플로섬'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섬을 개방한 뒤, 나머지 시간에는 입장을 통제하기로 했습니다. 펜디 측은 국내외 저명인사와 일부 기자에게 1500여 장의 초청장을 발송했는데요, 《한겨레》의 허재현 기자는 '초대받지 못해 취재 불가'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하는군요.
6월 2일 당일, 세빛둥둥섬 앞에서 주최사인 펜디와 이를 허가한 서울시를 상대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5월에는 한국을 동물학대국으로 표현한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었지요. 한국을 패션 강국으로 알리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행사가 결국은 국격을 떨어트리고 국민에게 망신만 준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 반발이 일었습니다. 민주당은 이날 성명을 내고 “공공의 공간이어야 할 한강이 소수 특권 상류층만을 위한 놀이터로 전락하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천만 서울 시민들은 개탄을 금치 못한다”며 “서울시가 연이어서 호화 명품 모피쇼 개최를 사실상 조장한 것은 천만 시민을 우롱하고 두 번 죽이는 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민주당은 또 “오세훈 시장이 자랑하는 ‘한강르네상스’는 소수 특권 부자들만을 위한 ‘특권르네상스’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오세훈 시장은 ‘부자들의 노랫소리 높은 곳에 백성들의 원망하는 소리 또한 높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며 결국엔 천만 서울 시민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펜디의 패션쇼에 초대받아 세빛둥둥섬의 시설을 즐긴 사람은 150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세빛둥둥섬은 분명 국민의 돈으로 만든 국민을 위한 시설입니다. 그럼에도 세빛둥둥섬은 개장하자마자 소수의 VVIP를 위한 '유희'의 공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수 양제가 운하를 건설하면서 지역마다 세운 40개의 누각처럼 1퍼센트의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지요. 이번 패션쇼는 서울시와 시민 사이에 소통이 안 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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