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비행 1주년 기념 강연 정리 - 보도사진과 혁명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과 같이 생각비행 1주년을 기념하여 열렸던 오동명 선생님 강연회 내용을 올려드립니다. 이날 강연은 〈보도사진과 혁명〉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는데요, 사진에 대한 오동명 선생님 자신의 경험을 비롯하여 사진과 연관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카메라를 든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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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 선생님

대학 강연을 그만둔 지 벌써 2년이 되었네요. 그러다 보니 약간은 떨립니다. 제가 유명인이나 대단한 사람들 앞에선 떨지 않습니다만, 젊은 사람들이나 진지한 사람들 앞에선 긴장하는 편이거든요. 오늘 참석한 여러분이 젊고 진지한 분들 같아서 긴장되네요. (웃음)

제가 생각비행과 인연을 맺은 건 《사랑의 승자》를 기획하면서부터입니다. 사실 그 이전에 개인적인 인연이 있긴 했습니다만, 생각비행의 첫 책으로 출간된 책이니《사랑의 승자》부터라고만 말씀드리죠. 어쨌든 생각비행 분들, 매우 진지한 분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강연 주제도 매우 진지한 내용을 주셨어요. 〈보도사진과 혁명〉.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보도사진이라는 분야와 혁명을 붙인 이유는 아마도 제가 신문사 기자 출신이라는 딱지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시는 분은 《중앙일보》 이야기를 꼭 하시거든요. 벌써 12년이나 흘렀는데 말이죠. 전 그저 《중앙일보》에서 일어난 일이 창피해서 나온 것뿐인데 많은 분이 아직까지 이야기해주십니다. 고맙고도 부끄러운 일이죠. 이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제가 카메라를 처음 만진 때는 대학교에 들어가서였습니다.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집안의 반대에 부딪쳐 경제학을 전공하게 됐거든요. 그런데 경제학은 제게 잘 맞지 않았나 봅니다. 공부하기 싫은 차에 마침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잡은 카메라가 직업으로 이어졌죠. 사람들이 돈 많이 주는 좋은 직장이라고 이야기하는 제일기획, 《국민일보》 《중앙일보》를 거쳤습니다. 공부도 잘 못했던 제가 그런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경기가 좋았기 때문이었겠죠. (웃음)

사진으로 자기계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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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게르와 니에프스(출처: 위키피디아)

요즘은 카메라 다들 하나씩 갖고 계시죠? 제가 기자생활 할 때만 해도 카메라는 그리 흔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다게르(Louis Daguerre)니에프스(Joseph Nicephore)가 공동연구로 시작했다가, 1839년에 다게르가 독자적으로 처음 만들었을 때만 해도 카메라는 매우 크고 무거운 물건이었습니다. 그랬던 게 롤필름이 나오면서 한층 가벼워져 휴대하기 간편해졌죠. 조금씩 대중화하던 카메라는 최근 10년간 디지털화를 거치는 사이 완전히 대중의 일상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이제 누구나 카메라 한 대씩은 가지고 있는 사회가 되었으니까요.

이렇게 너도나도 가지고 있는 카메라로 이른바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면 어떨까요? 최근에 제가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라는 사람의 책을 한 권 봤는데요, ‘자기계발’이야말로 미래의 혁명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 말대로 사람들이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도구는 아주 다양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진’을 통한 자기계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죠.

여러분 혹시 다들 취미 하나씩 갖고 있는지요? 영국의 유명한 석학인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취미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뭔가 하고자 하는 게 있고, 그 일에 집중하면 주위에 휩쓸리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이는 곧 자유로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음악가인 브람스(Johannes Brahms)의 좌우명은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였습니다. 여기서 고독이란 뭔가에 집착하고, 외부와의 단절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고독은 우리로 하여금 뭔가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렇게 어떤 일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요?

자, 그렇다면 사진을 취미 삼아 집중해보는 건 어떨까요? 저야말로 사진으로 자기계발을 했던 사람입니다. 앞서 대학교 시절에 카메라를 처음 접했다고 말씀드렸죠? 원래 저는 매우 소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사진기를 잡게 된 이유도 그런 성격을 바꿔보려는 일환이기도 했죠. 사진을 찍기 위해선 적극적이어야 하니까요. 좋은 사진을 얻으려면 피사체를 향해 좀 더 다가가야 하고,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하거든요. 그러니 사진은 좋은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소통의 도구로 카메라 활용하기

요즘 같은 불통의 사회에서 어떻게 보면 사진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선 피사체와의 끊임없는 대화와 관찰이 필요한데요, 그러다 보면 사람이 적극적으로 변하게 됨과 동시에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평소보다 침착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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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다게르 타입 카메라와 라이카의 M7(출처: 위키피디아)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소통의 도구로 훌륭하게 사용할 수 있는 카메라를 흔히들 잘못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카메라의 발전, 특히 카메라의 디지털화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셔터 누르기를 남발하고, 사진을 찍기까지 생각하는 시간이 짧아졌습니다. 불과 10년 전 필름을 사용할 때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습니다. 필름 값이 아까워서라도 사람들은 피사체를 진지하게 관찰하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필름 값이 들지 않는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하면서 사람들은 무조건 찍기 바쁩니다. 더구나 포토숍 같은 수정·보정 도구의 등장은 사진을 더더욱 성의 없이 찍는 문제를 낳았습니다. 대충 찍은 사진이라도 포토숍을 이용해 보정을 거치면 전혀 다른 사진이 되니 사람들은 한 컷 한 컷 찍는 데 의미를 두지 못하는 것이죠.

프로슈머(Prosum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소비자는 생산자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생산자라는 생각으로 사진을 촬영한다면, 셔터 누르기를 남발하고 성의 없게 촬영해선 안 되겠죠. 요즘은 사진 기자만이 아니라 일반인이 찍은 사진도 얼마든지 보도사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는 편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대구 지하철 사건 때 신문에 보도된 사진을 보셨겠지요? 그 사진은 무겁고 사용하기 어려운 DSLR로 촬영한 게 아닙니다. 기자가 촬영한 사진은 더더욱 아니지요. 현장에 있던 어느 학생이 휴대전화기로 촬영한 사진이었습니다. 연평도 포격사건도 기억하시겠지요? 연평도 포격사건을 다룬 뉴스에서 처음 보도된 사진 또한 일반인이 콤팩트 카메라로 촬영한 겁니다. 이처럼 이제는 언론에서 일방적으로 주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현장에 있다면 언론에 제공할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언론을 경계할 수도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훌륭한 보도사진을 찍으려면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는 문제겠지요. 대구 지하철 참사, 연평도 사태를 담은 사진을 봐서 다들 아시겠지만, 일단은 현장에 있어야 합니다. 기자들이 보도사신을 찍을 수 있는 이유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현장을 찾아가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도 현장에 있다면 당연히 자신만의 고유한 사진을 담을 수 있습니다. 현장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생활하는 영역도 훌륭한 현장이 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볼까요? 사람들은 청소하는 분들의 생활을 잘 모릅니다. 대부분 사람이 잠들어 있는 새벽에 일어나 일하시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청소하시는 분이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갖고 다니면서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담는다면 그것도 훌륭한 보도사진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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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LR이든 콤팩트 카메라든 그 종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출처: 캐논 컨슈머 이미징).


다음으로 사진을 잘 찍으려면 대화와 관찰이 필요합니다. 피사체가 사람이라면 대화를 나누고 그 사람에 대해 많이 알수록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습니다. 피사체가 사물이라면 어떨까요? 끊임없이 관찰해야겠죠. 금낭화를 예를 들어보죠. 사람들은 금낭화의 대롱을 많이 찍습니다. 여러분도 그 이외의 사진을 본 적이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금낭화를 잘 관찰한 사람이라면 씨앗을 찍었을 겁니다. 별모양의 금낭화 씨앗은 아주 예쁘거든요.

또 하나, 여러분은 피사체와 관련된 정보를 두루 습득해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대학에서 강의할 땐 초반에 미술책을 자주 보게 했습니다. 구도, 빛과 같이 미술의 기본적인 요소는 사진에서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미술에 대한 기본지식을 습득한 이후 본격적인 사진수업에 들어갔죠.

마지막으로 보도사진가를 지망하는 분이라면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둬야 합니다. 신문을 계속 읽으면서 사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사회과학 서적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보도사진가는 뷰파인더를 통해 본 사회를 담기 이전에 제가 앞서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누가 시켜서 찍는 사람은 보도사진가가 아닙니다. 여러 지식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시선을 담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진정한 보도사진가입니다.

자유롭고 고독하게 사진 찍기

아, 사진을 배우실 때 주의할 점을 빠뜨렸네요. 사진을 처음 찍는 분들이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따라하기’ 같은 책을 구입하는 겁니다. 제일 좋은 사진책은 말이죠, 카메라 제품설명서입니다. 사실 다른 카메라에 대해 알 필요는 없잖아요. 자기가 소유한 카메라에 어떤 기능이 있고, 그 기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만 파악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겁니다.

남들 따라 동호회에 들어가지 마세요. 사진을 빨리 배우겠다고 동호회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그런 분들은 대부분 사진기부터 바꿉니다. 주위 사람들이 갖춘 장비에 현혹되기 때문이지요. 서투른 사람이 연장 핑계를 대는 법입니다. 저도 경험해본 바라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냥 사람이 좋고 사진은 겸해서 배우려는 분이시라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제대로 배우려는 분이시라면 삼가기 바랍니다. 차라리 사진 설명서를 제대로 보고 교양과 시각을 형성하는 데 좋은 책을 사보시는 편이 사진 실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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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사진과 혁명이라는 거창한 주제로 꽤 오래 이야기했습니다만, 혁명이야기는 안 하고 다른 이야기만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웃음) 사실 저는 혁명이라고 해서 크고 대단한 담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자기계발을 통해 성장하고 그것이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겠죠.

여러분 중에 혹시 오선지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아시는 분이 있나요? 아무도 모르시죠. 저도 얼마 전에 알았답니다. 몇백 년 전에 수도사들이 음계와 함께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아쉽게도 오선지를 만든 수도사들의 이름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유명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이름 없는 사람들 덕분에 점점 변했고, 바로 이런 변화가 하나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혁명의 과정이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이름’을 남기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유명한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라는 사람의 묘비명을 아시는 분 있나요?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하는군요. 현대인들은 여러 이유로 망설이는 일이 잦습니다. 그럴 때 망설이지 말고 뛰쳐나오시기 바랍니다. 브람스의 말처럼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살아보는 것도 좋겠죠. 그때 여러분의 도구가 사진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사진으로 고독한 자기계발을 해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기 계신 분 모두가 자유로워지셔서 그 힘이 한데 모여 혁명을 이루는 것, 그것이야말로 올바른 사회로 가는 길이 아닐까요?

참석해주시고 오랜 시간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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