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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한국전력 사장의 민영화 선언, 이대로 괜찮은가?

by 생각비행 2024. 1. 16.

2024년 새해 벽두부터 윤석열 정부의 국민 털어먹기 행보는 거침이 없습니다. 지난 2일 한국전력의 김동철 사장은 신년사에서 "이탈리아 에넬사처럼 완전히 달라지겠다. 공기업 틀을 벗어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에넬사는 이탈리아 국가전력위원회의 약자로 1962년 설립된 공기업입니다. 하지만 1999년 이탈리아 정부가 전력 시장을 민영화하면서 이제는 사기업이 된 전력회사죠. 그러니까 김동철 사장의 신년사는 공기업인 한전을 이탈리아를 모델 삼아 완전 민영화하겠다는 사실상의 전기 민영화 선언인 셈입니다.

 

출처 - KBC광주방송

 

한국전력의 김 사장은 신년사에서 완전한 변화가 추가적으로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선례로 KT와 포스코를 들면서 "최근 10년 동안 매출액을 7배나 성장시킨 이탈리아 에넬처럼, 우리도 이제는 완전 달라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전의 적자가 심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죠.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맞물린 사회적 인프라를 담당하는 전기 '공기업'이 매출을 앞세우며 민영화를 선언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에 해당합니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한전이 민영화 모델로 삼겠다고 선언한 에넬이 어떻게 매출액을 7배나 성장시켰는지 살펴보면 우리의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요? 에넬은 2021년 1월부터 2022년 6월까지 1년 반 만에 전기 요금을 100% 이상 인상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 집계에 따르면 2015년 초까지만 해도 MWh당 40~50유로 안팎이던 전기료가 2022년 8월 630유로를 넘어섰습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의 전기료가 7년 만에 열두 배 이상 오른 셈입니다. 현대 사회를 살면서 사람이 쓰지 않을 수 없는 전기 요금을 이렇게 올리면 매출이 급등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요? 그런데 사회가 망가지든 사람들이 죽어나가든 상관없이 매출만 올리면 된다는 식의 말을 공기업 사장이 입에 담아도 괜찮은 걸까요?

 

출처 - 트위터

 

2023년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분석에 따르면, G7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8개국 가운데 이탈리아는 단연 가장 비싼 전기료를 기록했습니다. 일본 가정의 평균 한 달 전기 사용량인 260kwh를 기준으로 산출한 각국의 요금을 비교하면 이탈리아가 12만 9000원 수준으로 가장 비쌌습니다. 영국이 12만 8000원, 독일이 11만 7000원 수준이었고요. 일본이 그 뒤를 이어 8만 9000원이었는데요, 전기 민영화가 상당 수준 진행되어 2021년에 비해 요금이 31% 급등한 셈이었습니다. 특히 일본 내에서 전기 요금의 지역 간 격차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는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같은 전기량을 사용했을 때 3만 6000원 수준이었습니다. 자, 이런 지표를 보면 민영화가 진행된다면 우리는 적어도 전기요금이 네 배는 오를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의 구조적인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전기 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면 국민의 저항감을 줄이고 연착륙할 수 있도록 섬세한 정책을 쓰면서 정부가 상황을 통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출처 - MBC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전이 천문학적인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 전기 요금이 싸다는 원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던 문제입니다. 한국전력이 천문학적 적자를 내고 있는 와중에 민간 발전사들의 이익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합니다. 전쟁 등의 상황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에 비싼 가격에 전기를 사 오는 셈인데, 가정과 기업으로부터 받는 전기 요금은 정부의 통제로 인해 쉽게 올리지 못하니 한전의 적자 폭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한전에 전기를 판매하는 대기업 계열 민간 발전사의 이익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일어나고 있죠.

 

출처 - 투데이에너지

 

이런 상황의 이면에는 민간 발전사들이 운영하고 있는 직도입 LNG 발전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싼 값에 사 온 LNG를 이용해 생산한 전력을 한전에 비싼 가격에 팔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높아진 겁니다. SK그룹, GS그룹, 포스코그룹 계열사가 운영 중인 직도입 LNG 발전기 10기의 경우 2021년과 2022년을 비교했을 때 원가와 무관한 이익이 1조 4000억 원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합니다.

 

출처 - SBS

 

이 이상한 이익 구조를 이해하려면 현재 우리나라의 전력 거래 체계를 알아야 합니다. 전기는 발전사-전력거래소-한전으로 이어지는데, 한전이 가정과 기업에 전기를 판매하기 전에 전기를 사 오는 단계에 해당합니다. 전기는 저장이 어려워서 실시간으로 발전량과 전력 수요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전력 가격은 복잡한 방식으로 지급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계통한계가격(SMP)이라고 합니다. 원자력, 석탄, LNG, 유류 등의 연료에 따른 발전 원가를 따로 두고 발전사에 지급하는 개념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예를 들어 원전과 석탄은 원가가 가장 싸지만 전체 전력 수요 감당을 못 합니다. 때문에 2022년의 경우 87%의 SMP가 LNG 가격을 기준으로 결정됐다고 합니다. 원가가 훨씬 비싼 LNG 발전기로 SMP를 결정한 뒤에 전깃값을 지급하면 원전과 석탄은 원가에 비해 과도한 이익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런 과도한 이익을 돌려받을 수 있는 별도의 장치인 ‘정산조정계수’를 적용해 이익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전기의 수요와 공급을 맞추고 이에 따른 가격 정산도 연동한 것이죠.

 

출처 - 동아일보

 

그런데 문제는 LNG는 이 정산조정계수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발전사는 한국가스공사의 LNG가 아니라 직접 수입한 직도입 LNG를 썼습니다. 가스공사를 거치지 않은 LNG는 가스공사보다 단가가 싼데 이 단가를 감안한 별도의 이익 환수 장치가 없기 때문에 2022년처럼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 그만큼의 이익을 대기업 발전사들이 가져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이전부터 정부 역시 전력거래 구조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얘기해오고 있었습니다. 원가보다 비싼 가격에 전기를 대기업 발전사들로부터 사서 국민에게는 싼값에 팔아야 하니 한전이 손실을 떠안게 되면서 적자폭이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한전의 대책은 그 적자를 전기 요금을 올려서 상쇄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런 변화 없이 이익을 대기업 계열사들이 다 먹게 되겠죠.

 

출처 - MBC

 

올겨울 전북 남원에서 난방비를 아끼려던 노부부가 화재로 슴졌습니다. 석윳값과 가스값 등 오르지 않는 게 없다 보니 그나마 아직은 싼 전기로 난방을 하려다가 화재가 났던 겁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전기료를 올리면 엄동설한에 국민에게 얼어 죽으란 얘기밖에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돈에 눈이 먼 한전 사장의 신년사를 듣고 보니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출처 - 뉴스프리존

 

전기를 민영화해서 국민이 더 좋은 인프라를 누린다거나 더 저렴한 가격으로 전기를 쓸 수 있었던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되레 미칠 듯한 가격 상승, 기업 사정에 따른 공급불안정에 시달릴 뿐입니다. 전력 민영화만큼은 진영에 관계없이 막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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