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보도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누가 진실을 은폐하는가?

by 생각비행 2024. 1. 30.

2023년 여름 경북 예천에서 발생한 폭우 피해 복구를 위해 해병대 제1사단 신속기동부대가 투입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실종자를 수색하던 도중 채 일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습니다. 해병대는 상륙용고무보트를 투입해 수색에 나섰는데요, 채 일병은 14시간 만에 사망한 채로 발견됐습니다. 대학에 입학해 1학년을 마친 그는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었습니다. 7주 간의 기본군사 훈련을 거쳐 통신병으로 실무 배치를 받은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죠. 열 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겨우 태어난 늦둥이 외동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아까운 생명이 떠난 것만 해도 괴로운 일인데, 일병에서 상병으로 추서된 그의 죽음을 단순 '사고'로 볼 수 없게 하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며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했습니다.

 

출처 - MBC

 

작년 7월 19일 오전, 실종자 수색에 투입된 해병대원들은 내성천 일대에서 도보로 이동하면서 대열을 갖춰 인간띠를 형성하여 실종자를 찾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지반이 내려앉으면서 채 상병과 다른 대원 두 명이 급류에 휩쓸렸습니다. 다른 두 사람은 가까스로 헤엄쳐 빠져나왔으나 채 상병은 급류에 휘말렸습니다. 당시 채 상병을 비롯한 해병대원들은 구명조끼나 밧줄도 없이 일렬로 물속을 걸어다니며 실종자를 수색했다고 하죠. 앞서 내성천에 투입된 상륙돌격장갑차가 빠른 물살 때문에 철수한 상황에서 말입니다.

 

출처 - KBS

 

채 상병이 소속된 부대 대대장과 같이 작전에 참여한 대대장이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을 보면 당시 현장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였는지, 구조 작업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현장에 도착해서야 실종자 수색작전이라는 상황을 인지했고,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윗선의 지시로 위험한 실종자 수색에 나서야 했습니다. 현장에서는 "수변일대 수색이 겁납니다. 물이 아직 깊습니다", "완전 늦지대처럼이라 하루 1km도 힘들겠다", "잠수복 상의까지 오는거 있어야 합니다", "7여단장님과 통화완료 도로정찰 위주 실시하되 필요(가능)구간 수변정찰 실시"라는 대화가 오고 갔다고 하죠.

 

출처 - JTBC

 

최용선 해병대사령부 공보과장은 "구명조끼는 하천변 수색 참가자들에게 지급이 안 됐다.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면서도 해병대 안전 매뉴얼이나 수색 당시 상황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습니다. 내성천은 모래 강으로 바닥이 고르지 않은데다 집중호우로 유속이 빨라져 안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현장 소방당국이 사고 이틀 전부터 인간띠 작전을 하지 말라고 요청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확인해 보겠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출처 - 시사인

 

채 상병 사망 사고 조사를 지휘한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실질적 안전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색 작전을 실시하였으며, 사단장 지적 사항 등으로 예하 지휘관이 부담을 느껴 허리 아래 입수를 지시(전파)하게 되어" 사고가 일어났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수사단은 제1사단장 등 사건 관계자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관할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었습니다. 7월 30일 박정훈 대령은 관련 내용을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결재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흘 뒤, 박 대령은 보직 해임되고 '집단항명수괴'로 군검찰에 의해 입건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 과정을 보면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최초 보고 내용을 결재했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철회하고 임성근 제1사단장의 혐의를 제외하라고 지시하고는 해외로 출장을 떠났습니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은 박정훈 대령이 국방부 장관 귀국 시까지 채 상병 관련 조사 기록을 경찰에 넘기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는데도 이를 따르지 않고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혐의, 그리고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보고받는 자리에서 혐의자에 사단장을 포함해야 하는지와 관련해 질문하지 않았지만 이를 사실처럼 언론에 밝혔다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결국 박정훈 대령은 상관인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보직 해임되고 항명과 상관에 대한 명예 훼손을 이유로 입건됩니다.

 

출처 - 한겨레

 

2023년 8월 28일 군 검찰은 박정훈 대령을 소환하여 조사했습니다. 여기서 박 대령은 채 상병 사건을 경찰에 이첩 보류시킨 배경에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있었다고 진술서를 통해 밝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격노해서 국방부 장관에게 연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으나 대통령실은 이를 전면 부인했죠.

 

출처 - KBS

 

그런데 최근 군인권센터에서 공개한 녹취 파일을 보면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외압이 실제로 있었다는 정황을 알 수 있습니다. 해병대 수사관과 경찰청 팀장의 통화는 군 검찰이 채상병 사건 자료를 회수해간 직후인 8월 2일 오후 8시경 이루어졌습니다.

 

출처 - JTBC

 

통화에서 해병대 수사관은 경찰청 팀장에게 "사건 인계서 공문까지 저희가 다 편철을 해서 인계를 드립니다 하고 왔는데, 사실 뭐 지금 구체적으로 저희가 들어보니까 인계받은 게 아니고 자료를 제공받은 정도로만 이런 식으로 경북청에서 일단 입장을 표명을 하셨던데 그 사유에 대해서 궁금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라고 경북경찰청이 해병대수사관으로부터 기록을 인계받은 것이 아니고 자료를 제공받았다고 애매하게 입장을 표명한 이유를 따져 묻습니다. 이에 경찰청 팀장은 "예, 수사관님. 저희들도 내부에 지금 검토 중에 있고요."라고 얼버무립니다. (통화가 이뤄진 시점은 밤 8시 15분 쯤으로, 관련 기록을 군 검찰이 회수해간 후였습니다.) 그러자 해병대 수사관은 "아까도 저희가 말씀을 드렸지만 이러한 외압적 부분에서 저희도 이렇게 하지만 '청에서 분명 외압이 들어올 거다'라고 저희가 말씀드린 건데, 저희는 조금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까워서…"라고 말합니다. 

 

출처 - MBC

 

두번째 통화는 8월 3일에 이뤄졌습니다. 해병대 전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이 군 형법상 집단항명수괴죄로 입건되고 국방부 검찰단이 해병대수사단을 압수수색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해 해병대 수사관이 경찰청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하는 상황입니다. 해병대 수사관은 "이거 너무한다 생각 안 하십니까? 저희가 범죄자 취급받으면서 지금 압수수색당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사실 규명을 위해서 책임자를 찾고 진실 밝히고, 이게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왜 경북청에서는 왜 아무것도 안 하십니까? 왜 그러십니까? 진실을 밝히는 게 잘못되었습니까?"라고 묻자, 이에 대해 경북경찰팀장은 "아니, 그거(수사) 잘못된 것 아닙니다. 수사관님."이라고 답합니다. 해병대 수사관이 "저희 수사단장님이 형사입건됐습니다. 휴대폰도 압수당하고 압수수색 다 들어오고 여기도 동시에 다 들어와 있는데, 무슨 근거로 그 사건기록이 그렇게 가야 되고, 왜 경북청에서는 이첩받았다고 정당하게 말을 못하시고,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무서울 줄은 몰랐습니다. 다음에 꼭, 사건이 꼭 거기로 가면 철저하게 수사를 좀 해주십시오 팀장님." 하고 항변합니다. 경북청 팀장은 무력감을 느꼈는지 통화하면서 감정이 격해져 흐느끼는 목소리로 "알겠습니다."라고 답변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국방부조사본부는 사건 당시 실종자 수색 현장에서 상부 지시에 당황한 것이 역력한 대대장 두 명에 대해서만 "마치 상급자의 승인을 받은 것처럼 임의로 허리 깊이 입수를 지시했다"며 채 상병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하고 경찰에 넘겼습니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순직한 해병대 채 상병의 지휘관)은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여러 번 지시했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군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이로 인해 임성근 사단장은 채 상병이 소속됐던 해병대 포병대대장의 법률대리인인 김경호 변호사에 의해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됩니다. 김경호 변호사는 "당시 강물의 상태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A중령과 B중령이 대대원에게 '강물에 들어가라'는 명령을 직접 내렸다는 주장은 모순 그 자체"라면서 "무릎 아래까지 들어가라는 지시는 그 윗선인 임 전 사단장의 지시임이 대화상으로 드러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참 희한한 상황 아닙니까? 임성근 사단장은 입수 지시를 한 적이 없고, 현장에 있던 대대장 두 사람은 상부의 지시에 당황했고, 물에 들어간 채 상병은 그로 인해 희생됐으니까요.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사건의 진상을 오롯이 밝혀도 유족의 한이 풀리지 않을 텐데, 수사 과정에서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황만 계속 드러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출처 - 서울신문

 

채 상병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때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드러난 정황을 보면 사건을 축소하고 덮기 위해 적극적인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국방부 검찰단(군 검찰)은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변사기록을 열람·복사하게 해달라는 박정훈 대령 측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박 대령 측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비롯한 채 상병 사망 사건 관계인들이 해병대 수사단의 초기 수사 결과를 놓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만큼 자료를 검토해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고요. 이렇게 보면 과연 누가 사건을 은폐하려 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까?  

출처 - 아시아경제

 

진실은 아직은 미궁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통화 녹취 내용, 정황 증거, 그리고 실체적 증거, 관련자의 증언이 쌓인다면 결국에는 진실이 드러나겠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는 법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