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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노골적인 꼬리 자르기, 이태원 참사 특수본 결과 발표

by 생각비행 2023. 1. 16.

1029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후 74일 만인 지난 1월 13일 경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특수본은 이태원 참사가 폭 3m가량의 좁고 가파른 내리막 골목에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넘어지면서 발생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오후 10시 15분 첫 넘어짐이 발생한 이후 약 15초간 뒤편에서 따라오던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도되는 상황이 네 차례 이어졌고, 이 상황을 모르는 위쪽 인파가 계속 밀려 내려오는 상황이 10시 25분까지 10분간 지속되면서 10m에 걸쳐 수백 명이 겹겹이 쌓이고 끼이는 압사가 발생했다고 사건 개요를 설명했습니다. 이로 인해 158명이 사망하고 196명이 부상한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특수본은 이태원 참사로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6명을 구속하고 총 23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검찰에 넘겼습니다. 하지만 유가족은 물론 시민들의 분노를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 등 이른바 윗선은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했기 때문입니다. 구속 영장 신청을 검토하던 김광호 서울 경찰청장에 대해서도 불구속 상태로 송치하기로 했습니다. 특정 지역의 안전관리는 자치경찰 업무인데 윤희근은 국가경찰 담당이라는 이유로, 이상민, 오세훈 등은 다중운집 위험에 대한 구체적 주의의무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혐의가 없다는 겁니다.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이번에도 높은 분들은 아니었나 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사건 책임자 중 한 명인 용산구청장 등이 구속되기는 했지만, 당시 일선에서 손을 떨며 수습하던 소방관처럼 뭔가를 하던 사람들에게 죄를 돌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예방이나 사후 수습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이상민이나 오세훈 같은 '윗선'은 한 게 없으니 혐의도 없다는 이상한 결론을 내놓은 채 말입니다.

 

이태원 참사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입건한 주요 피의자

경찰: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13명 
소방: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이 아무개 현장지휘팀장 등 5명 
용산구청: 박희영 용산구청장, 유승재 용산부구청장 등 5명 
서울교통공사: 송은영 이태원역장, 이권수 동묘영업사업소장 등 2명 
행정안전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1명 
민간: 이 아무개 해밀톤호텔 대표 등 2명


특수본 수사 일지

2022년 
● 11월1일 특수본 출범 
● 11월2일 서울청·용산서·용산구청 등 압수수색 
● 11월6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6명 입건 
● 11월8일 경찰청장실·서울경찰청장실·용산경찰서장실 등 압수수색 
● 11월14일 소방노조, 이상민 행안부 장관 고발 
● 11월17일 행안부·서울시 등 압수수색 
● 12월1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경찰 관계자 구속영장 신청 
● 12월2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소환 조사 
● 12월5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구속영장 기각 
● 12월13일 ‘정보보고서 삭제 지시’ 혐의 박성민 서울경찰청 정보부장 등 송치 
● 12월20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경찰 관계자 구속영장 재신청,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구속영장 신청 
● 12월23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경찰 관계자 구속 
● 12월26일 박희영 용산구청장, 구청 관계자 등 구속 
● 12월28일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구속영장 신청, 검찰 반려 
● 12월30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경찰관계자 4명 검찰 송치

2023년
● 1월3일 박희영 용산구청장, 용산구청 간부 등 4명 검찰 송치
● 1월13일 이태원 참사 수사 결과 발표

출처 - 시사IN

 

부끄러울 정도로 노골적인 꼬리 자르기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특수본은 경찰 감싸기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국회 증언에서 소방대원이 참사 당시 경찰이 부족했다는 증언에 대해 열심히 반박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수사 결과 발표 과정에서 어이없는 사실이 하나 드러났습니다. 이태원 참사 당시 용산구청 당직 근무자들이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인근에서 윤석열을 비판하는 전단을 떼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출처 - KBS

 

참사 당일 용산경찰서 공공안녕정보외사과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다음 날 출근하니 윤석열을 비판하는 전단지와 손팻말 등을 제거해달라고 용산구청에 요청했습니다. 당직 직원은 거절했습니다. 저녁부터 이태원으로 밀려드는 인파와 차량 등으로 복잡하다는 민원이 쏟아져 들어와 이를 정비하기도 바쁜데 전단 제거할 시간이 어딨냐는 거였죠. 하지만 용산구청 비서실장이 재차 전단 제거를 요구한 탓에 결국 당직자 두 명은 이태원 인파와 차량 민원 처리대신 전단지 제거 작업에 투입됐습니다. 정작 해야 할 일은 못 하게 하고 윤석열 비위나 맞추려다 일을 키운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출처 - MBC

 

수사 결과 발표를 보고 시민과 유가족 들은 똑같이 분노했습니다. 이종철 10.29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장관, 시장, 지휘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 인정과 사과가 그리도 힘듭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분노한 유가족들은 지난 14일 시민추모제를 열고 특수본 수사 결과를 비판하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씨였지만 세 번째를 맞은 시민추모제에 수백 명의 시민이 참여했습니다. 이종철 대표는 특수본 수사 결과는 우려했던 것처럼 윗선에 대한 수사를 시도도 못하는 셀프 수사의 한계를 보여줬다며 꼬리 자르기식, 목표를 정한 적당한 수준의 수사로 마무리됐기에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한 지난 13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이태원 사태 등으로 작년 4분기 경제지표가 나쁘게 나왔다"고 망언을 한 것에 대해 정부에서 경제를 내팽개쳐 바닥을 찍어놓고 이태원에서 희생된 아이들에게 떠넘긴다며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경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가 나왔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밝혀진 게 없는 꼬리 자르기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한국은행 총재의 망언처럼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는 계속되고 있고요. 특수본의 한계가 명확해진 만큼 특검 등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관심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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