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발사된 우리나라의 첫 달 탐사선인 '다누리'가 발사 135일 만인 지난 12월 17일 달 궤도 진입을 위한 1차 기동에 성공했습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다누리가 지난 17일 새벽 2시 45분 달 궤도 진입을 시작해 1차 기동을 계획대로 정상 수행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다누리가 달 중력에 포획돼 달 궤도를 도는 진정한 달 궤도선이 된 것입니다.
출처 - MBC
이번 1차 진입기동은 총알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로 우주 공간을 항해하던 다누리를 총알의 속도로 이동하는 달의 중력권에 정확하게 밀어 넣는 고난도 작업이었다고 합니다. 1차 진입기동 실패로 궤도가 벗어나거나 적정 속도로 감속하지 못했다면 다누리는 달에서 튕겨나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1차 진입기동에 성공함으로써 다누리는 현재 달을 타원형 궤도로 돌고 있습니다. 달에 가장 가깝게는 109km, 가장 멀게는 8920km의 타원을 그리며 12.3시간에 한 번씩 달 주변을 돌고 있었습니다.
출처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 데일리안
다누리는 지난 21일 2차 기동에 성공했습니다. 항우연은 다누리의 1, 2차 기동 결과를 분석한 결과 궤도 오차가 적다고 판단해 23일로 예정됐던 3차 기동을 생략했습니다. 진입기동을 생략하면 다누리의 저장연료를 아낄 수 있기 때문에 탐사 임무 기간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생기게 됩니다. 다누리는 앞으로 26일, 28일에 걸쳐 두 차례의 추가 진입기동을 진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단계를 밟아 달 상공 100km에서 도는 궤도에 안착하면 최종적인 성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는 29일이면 최종 성공 여부를 발표할 수 있다고 하죠. 항우연은 가장 어려운 1차 진입기동에 성공했고, 2차 기동을 완료하고 3차 기동을 생략할 정도로 결과가 양호하기 때문에 큰 변수가 없다면 다누리 프로젝트의 성공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러시아, 미국, 중국, 유럽, 일본, 인도에 이어 세계 일곱 번째 달 탐사국 대열에 이름을 올리게 되죠. 다누리가 최종 성공할 경우 내년 1월부터 1년 동안 하루 12회씩 달 상공을 돌며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달 표면을 정밀 촬영해 2032년에 발사될 예정인 달 착륙선의 착륙 후보지를 물색하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이 밖에도 달 자기장을 측정해 달 생성 원인을 연구할 자료를 축적하고, 달 표면의 자원 지도 작성을 위한 데이터도 수집합니다. 우주 인터넷 기술을 시험하는 작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이토록 순조롭게 달 궤도에 안착한 다누리와 달리 지구에서는 정작 다누리를 쏘아올린 항우연은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입니다.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성공의 주역인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이 항우연 조직 개편에 항의하는 뜻으로 본부장직을 사퇴했기 때문인데요. 지난 12일 고 본부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제출한 사퇴서를 통해 "12일 단행된 항우연의 조직개편으로 발사체개발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조직이 사실상 해체됐다"며 "이대로는 누리호 3차 발사와 산업체로의 기술이전 등 산적한 국가적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됐다"라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발사체사업본부 내 부장 5명도 조직개편에 반발하며 사퇴서를 제출했고, 줄이어 옥호남 나로우주센터장까지 보직 사퇴서를 제출해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나로우주센터장은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누리호 3차 발사 등의 현장 지휘 책임을 맡고 있는 보직입니다.
출처 - 중앙일보
고 본부장은 이번 조직개편으로 머리만 있고 수족이 모두 잘린 상태가 되었다며 "250여 명이 근무하는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는 이번 조직개편으로 본주장 1명과 사무국 행정요원 5명만 남게 됐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술개발을 총괄하는 5명의 부장 전원도 이대로는 업무수행이 불가능하다며 사퇴했고 해체된 16개 팀 팀장의 업무도 박탈됐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누리호 3차 발사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민간기업으로 기술 이전을 앞둔 중요한 시점에 항우연원장이 사실상 일방적 통보로 조직개편과 인사를 단행해 성공적인 실적을 낸 조직의 연구개발을 수행할 수 없도록 만드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에 대해 항우연 이상률 원장은 누리호 개발사업을 완수함에 따라 연구, 조직 효율성 제고를 위해 조직 개편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라는 단일사업 전담 조직을 발사체 분야 종합연구소로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내년 1월 1일 자로 발사체연구소를 신설하고 이곳에 각 연구부를 두고 기존 본부와 팀들을 흡수 통합한다는 겁니다. 본부 체제와는 달리 팀 단위가 모두 사라졌는데 인사권이 없는 임무 리더가 팀장 역할을 대신하게 됩니다. 사업의 크기가 커졌으니 고도의 효율성과 통합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개편하겠다는 주장입니다.
출처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하지만 항우연 내부 구성원들 중에는 다르게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선 과기부에서 정한 지침까지 어겨가며 조직 개편을 강행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죠. 사퇴의 뜻을 밝힌 고 본부장 외 여러 인사도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과기부에서는 내년 6월까지 한국형발사체 연구개발조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 운영관리지침'을 정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조직 개편은 이를 정면으로 무시한 처사입니다.
출처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항우연의 다른 부서와 달리 독립사업단 형태로 운영되던 발사체 개발 사업본부만은 이후에도 팀제를 유지해왔습니다. 우주발사체 발사라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조직 특성상 팀제가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자 팀제를 발사체개발사업본부에서 폐지하겠다니 내부에서 반발하는 것입니다. 발사체개발사업본부는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연구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열공정, 전지전자 등 하드웨어별로 팀을 꾸려 운영했고, 이런 팀제를 기반으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내년 6월까지 정해진 기한과 과기부 가이드라인까지 어겨가며 굳이 바꾸려는 건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렵겠지요.
출처 - 스페이스X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는 첫 한국형발사체인 나로호가 1, 2차 발사에 실패하자 과기부가 발사체개발 조직을 기존 항우연에서 떼어내 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방식으로 만든 조직이었습니다. 그간 발사체개발사업본부가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지만, 모체인 항우연의 기존 조직과 사실상 떨어지면서 조직 운영이나 인사 관련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전임이던 임철호 항우연 원장이 회식 자리에서 직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 사건도 본질적으로는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발사체본부와 인사권을 행사하려는 원장 간의 갈등이 깊어지며 폭발한 사건으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발사체 조직이 외부로 독립했다가 항우연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사실상 별도의 조직처럼 움직였습니다. 탁민제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정부가 나로호 실패를 이유로 발사체 사업단을 만들고 이후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항우연 조직으로 들어온 이후에도 별개 조직처럼 따로 움직이는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면서 "이번 갈등의 불씨인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항우연이 소란스러운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지난 12월 21일 처음으로 국가우주위원회를 열었습니다. 2045년 우주경제 강국 실현을 목표로 제4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안을 내놨습니다. 2032년에 달 착륙을 하고 2045년에 화성 착륙 성공을 목표로 무인탐사를 위한 독자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또 2040년대 무인수송 능력을 갖추고 2045년까지 유인수송 능력을 확보해 뉴스페이스 시대에 진입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나아가 우주항공청 설립이나 국가우주위원회 수장을 현재 국무총리에서 대통령으로 격상하는 방안 등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출처 - 한국경제
항우연의 내홍이 인사이동에 대한 단순 반발이 원인인지, 분골쇄신하여 한국형 발사체를 달로 보내는 데 성공한 사람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은 탓인지, 외부에서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항우연이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혁신 가이드라인에 따라 팀제를 폐지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입장은 석연치 않습니다. 대통령 취임 초기에 윤석열이 항우연에 커피차와 푸드트럭을 보냈을 때부터 이 정부는 잘되는 우주개발사업도 뒤흔들 것이라고 예측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 예측이 맞은 걸까요?
출처 - 중앙일보
다른 한편 항우연 내부의 특수한 조직 상황이 갈등 확대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항우연은 발사체, 위성, 항공 등 세 분야 조직으로 이뤄져 있고, 분여별로 나뉜 연구자들 때문에 파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겁니다. 특히 이번 조직 개편에 앞서 내부에서 소통과 설득 과정이 충분히 이뤄졌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발사체 개발 과정은 고도의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연구진이 수십 년간 동고동락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번 조직 개편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고 본부장의 사의에 이어 다섯 명의 부장 전원이 일괄 사퇴서를 낸 것도 이런 배경이 작동한 결과가 아닐까요? 큰 틀에서 이번 내홍을 항우연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이상률 현 원장과 조광래 전 원장의 세력 다툼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합니다. 다누리는 달 위에 평온히 떠 있건만 항우연은 바람 잘 날이 없는 상황이라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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