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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봉화 광산 매몰 사고, 무엇을 남겼나?

by 생각비행 2022. 11. 23.

10.29 참사로 모든 국민이 참담함을 느끼고 있을 때 한줄기 희망을 선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봉화 광산 매몰 사고로 고립됐던 광부 2명이 무려 221시간을 버틴 끝에 살아서 돌아온 것이죠.

 

출처 - 서울신문

 

봉화 광산 붕괴 사고는 지난 10월 26일 저녁 광산이 무너지며 광부 2명이 매몰된 건을 말합니다. 아연 채굴 광산인 이곳에 토사 900여 톤이 떨어지며 지하 190m에서 작업 중이던 광부들이 매몰됐습니다. 총 7명의 작업자 중 2명은 이상 징후를 느끼고 빠져나왔고 3명은 광산업체가 자체적으로 구조했습니다. 그런데 2명은 구하지 못하고 사고 발생 후 14시간이나 지난 시점에 119에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출처 - KBS

 

10월 27일부터 소방당국은 130여 명의 인력과 30여 대의 장비를 동원해 구조 작업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두 차례에 걸친 천공기 시추작업이 실패하며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1차 때는 해당 구간에 강도가 놓은 대형 암석이 자리하고 있어 시간이 지연됐습니다. 1차 시도 시 지하 185m까지 내려갔지만 노동자들과 닿지 못하고 실패했습니다.

 

출처 - MBC

 

연이어 시도한 2차 천공기 시추작업도 실패로 끝났습니다. 구조 작업에 사용된 도면이 20년 전 것이어서 실제 측량과 차이가 생겨 다른 좌표에서 시추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광산 및 시추 전문가가 많은 강원도를 비롯해 군의 시추대대까지 지원을 나와 새로운 구멍을 뚫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지하 295m지점에서 매몰된 지 열흘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에 성공했습니다. 매몰됐던 광부 2명은 직접 걸어서 나올 정도로 건강상 큰 문제가 없었고 부상도 없었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매몰된 광부들이 갇힌 곳은 20여 평 정도 되는 넓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작업반장으로 잔뼈가 굵은 박정하 씨였지만 다른 한 사람은 광산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신참이었습니다. 신참이 공포에 질리자 박정하 씨는 그를 다독이며 여러 갱도를 다니며 탈출로를 물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두 막혀 있는 상태라 매몰된 곳에서 구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봤습니다. 다행히 그곳은 환기가 되는 곳이었고 작업용 용접기도 비치돼 있었습니다. 그들은 젖은 나무를 말려 모닥불을 피우며 체온을 유지했습니다. 작업 당시 가지고 간 물 10리터와 커피믹스 30봉을 밥 대신 먹으며 버텼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마저 떨어져 결국엔 떨어지는 지하수를 마시며 버텼습니다. 오랜 현장 경험이 있는 작업 반장의 굳은 의지에 여러 행운 요소가 겹쳐지며 두 사람은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구조 직후 매몰 광부 두 명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2인실에서 같이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정맥주사로 응급치료를 하고 수액치료를 병행한 뒤 12시간 만에 일반 내과로 옮길 정도로 건강상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죠. 삶을 향한 의지가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

 

출처 - YTN

 

봉화 광산 매몰 사고를 이렇게 훈훈한 이야기로만 알고 계신 분이 많으실 줄 압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구조 이후의 일일지도 모릅니다. 구조된 두 명 중 작업반장인 박정하 씨는 경력이 30연 년에 달할 정도의 베테랑 광부였는데요, 그는 붕괴 당시 상황에 대해 "작업 중 '우르르 쾅쾅' 소리가 나더니 2시간 동안 토사가 흘러내렸고, 이 바람에 입구가 막혔습니다. 그 토사는 업체에서 사고 지점 10m 떨어진 구멍(갱도)에 버린 광산 폐기물, 이른바 '광미(鑛尾)'와 물이 섞인 거예요."라고 회고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그는 경찰 조사를 받고 돌아온 동료 광부들의 얘기를 들으면 화가 많이 난다며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달라며 여러 언론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그는 특히 업체 측이 광산 찌꺼기인 광미를 처리한 방식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광미를 사고가 난 갱도 바로 옆에 위치한 다른 폐갱도에 버리는데 광미를 붓고 그게 굳어서 더 부을 수 없으면 물을 부어 내려가게 한 뒤 다시 광미를 붓기를 반복했다고 하죠. 이렇게 하면 광미가 폐갱도로 흘러내려가겠지만, 갱도가 지하에서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어느 쪽에서 넘칠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된다고 합니다. 이번 붕괴 사고도 바로 옆에서 광미를 부어대다가 작업 중이던 갱도로 쏟아진 것으로 추측한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지난해 내부고발자가 광미 불법 매립을 국민신문고에 신고한 일도 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고 하죠. 

 

출처 - MBC

 

광미는 광미장에 야적하는 게 원칙이지만 폐갱도에 매립하는 것도 불법은 아니라고 합니다. 광산업체 측은 사고 원인의 토사가 광미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광미를 불법 처리한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전장치가 부족해 광미가 다른 갱도로 따라 흘렀다면 문제일 수 있습니다. 수사팀은 이번 사건에서 광미 처리 폐갱도에 주목하고 이곳에서 광미와 토사가 흘러넘쳐 매몰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며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봉화 광산 붕괴 사고 역시 이태원 압사 참사와 다르지 않은 인재였습니다.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안전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를 무시한 회사와 정부 부처의 안이함이 화근이었으니까요.

 

출처 - MBC

 

봉화 광산 사고가 이번이 처음으로 알고 계신 분이 많을 테지만, 구조에 성공한 봉화 매몰 사고는 2차 사고였습니다. 두 달 전인 지난 8월 29일 오전 같은 봉화 광산에서 쌓아놓은 광석이 무너지며 지하 40~50m 갱도에서 일하던 광부 10명 중 2명이 추락해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한 명은 경상을 입은 채 겨우 탈출했지만 다른 한 명은 6시간 만에 사망한 채 발견됐습니다. 똑같이 두 명이 매몰됐는데 1차 사고 당시에는 인명 피해가 있었던 셈입니다. SPC 공장 끼임 사고와 닮은꼴 아닌가요?

 

출처 - MBC

 

지난 11월 9일 이 광산의 원청과 하청 업체에 압수수색이 진행되었지만 처벌을 받게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매몰 광부들이 살아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현재 중대재해법에 따르면 사망자가 발생했거나 전치 6개월 이상의 중상자가 2명 이상이어야 하는데 이번 매몰 사고는 피해자가 큰 부상 없이 구조되었으니까요. 산업안전보건법과 광산안전법으로 처벌될 여지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로 보면 업체 쪽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이처럼 노동자의 안전은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뒷전인 상황입니다.

 

출처 – 뉴스1

 

그래서일까요? 30여 년을 광산에서 일한 박정하 씨는 이제 광산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당시 상황이 트라우마이기도 하고 무엇 하나 바뀌는 게 없는 업계를 보며 조금 다른 접근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는 강원도 정선군 광산근로자 복지 관련 단체에서 10여 년 일한 바 있다며 몸이 회복된 다음에는 광산 노동자를 위해 활동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광부가 아니라 광부의 권익 향상, 안전 문제 개선 등의 문제에 집중해보겠다고 합니다. 그는 인터뷰마다 지도감독기관은 광부들이 지하막장에서 안전하게 일해도 된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점검해달라며, 광산은 3D 업종이다 보니 기술자를 구하기 어려우니 광부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청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출처 - 옥소폴리틱스

 

우리는 봉화 광산 붕괴 사고에서 어떤 교훈을 남겨야 할까요? 기적적 생환이라는 미담 이면에 존재하는 기업의 자본 논리, 감독기관의 안전불감증이 큰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태원 압사 참사, SPC 끼임 사고 등으로 일찍 삶을 마감한 이들의 희생을 무가치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광산 노동자를 위한 일을 시작하실 박정하 씨의 앞날에 무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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