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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물/도서비행

<개천에서 용 찾기> 다큐멘터리에서 발견한 희망

by 생각비행 2011. 4. 26.
지난 금요일, MBC에서 <개천에서 용 찾기>라는 제목으로 짧은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우리 부모님 세대는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고 억척스럽게 자식들을 공부시켰습니다. 그 시절 가난하게 살기 싫다던 청춘들이 공부 혹은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났다'라며 본보기로 삼고, 그들처럼 성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20세기를 지나 어느새 21세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보릿고개를 걱정하던 한국은 OECD 회원국이 되었고, 얼마 전에는 G20 의장국이 될 정도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가난이란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너무 변해버린 걸까요?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을 실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져버린 '무한경쟁'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을 다시금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전엔 개천에서 용 났다는데...

1950년대 이전에 한국은 어수선한 해방정국을 맞이합니다. 사회는 좌와 우로 나뉘어 대립했으며, 깊게 팬 이념 갈등으로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마저 경험합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전국은 초토화되었습니다. 기간시설이 모두 파괴되었으며 전쟁고아와 과부가 넘쳐났습니다.

한국전쟁으로 큰 시련을 겪은 한국은 1960~1970년대를 거치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정책으로 외화를 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급성장에 따른 폐해도 뒤따랐습니다. 노동자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풍토가 조성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은 폭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며 공포를 조장했습니다.

부모의 희생, 1960~70년대 어려운 시절, 가난,개천에서 용난다

어려운 시절, 한국 사회에서 부모의 희생으로 용이 나오는 일은 적지 않았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를 거쳤지만 학업에 힘을 쏟아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과 사업에 뛰어들어 자수성가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74년 사법시험을 통과하여 변호사가 되었다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된 고 노무현 대통령도 그중에 한 사람이죠.

사법고시생의 합격수기, 명문대 입학수기, 개천에서 용난다, 서울대 수석합격

1980년대 학업 신화. 여러움 속에서 공부에 매진함으로 영광을 누린 사람들의 미담이 뉴스에 곧잘 소개되곤 했다.


이후 1980년대에도 신화는 이어집니다. 학생들은 사법고시생의 합격수기, 명문대 입학수기(특히 서울대)를 읽고 희망을 키웠습니다. 그 때문인지 사법고시 합격자 발표일이나 대학입시 합격자 발표일이면 뉴스에선 '개천에서 용이 된' 사람들을 찾아 보도하곤 했습니다. 과외를 받지 않고 교과서로만 공부해서 서울대에 수석 합격했다는 신화가 해마다 이어졌지요.

신화의 파괴, 개천에선 사라진 용 전설

시간은 흘러 21세기가 되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G20 의장국으로 행사를 치를 정도로 한국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잘사는 나라'가 된 것이죠. 세계는 한류에 열광하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한국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많은 산업 연수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언제부턴가 경쟁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잘 포착한 방송사는 너도나도 경쟁 구도의 프로그램을 양산하며 인기를 구가합니다.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프로젝트 런어웨이>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을 즐깁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까닭은 과거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신화가 사회 속에서 그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비주류 경제학자인 장하준 교수는 선진국들의 성장 신화 속에 숨겨진 은밀한 역사를 분석하고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을 저술합니다. 선진국들이 현재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에 강요하는 정책과 제도가 과거 자신들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채택했던 정책이나 제도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 따라서 후진국들에 대한 그들의 '설교'가 얼마나 위선적인 경우가 잦은지를 보여줍니다. 

국가 간의 상황만 그런 게 아닙니다. 한국 사회에서 먼저 상류 사회로 올라간 이들은 뒤따르는 사람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습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신화가 사라진 이유에는 동일한 출발점이 사라져버린 사회적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나기 힘든 사회, 불평등한 사회구조

개천에서 용 나는 신화가 사라졌다. 출발선이 달라진 사회구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과외를 받지 않고 자력으로 명문대에 합격하는 '학력 신화'가 깨진 원인은, 소위 스카이(SKY)라고 부르는 대학 입학생들의 대부분이 부모의 재력을 바탕으로 공부한 명문 고등학교 출신들이라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같은 출발선에서 공부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선행 교육을 받고 출발하는 부잣집 아이와 과외는 고사하고 밥걱정을 해야 하는 학생 사이에 경제적 간격이 너무나 커져 버렸습니다. 
 
동일한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바람직한 경쟁은 발전을 이끌 수 있지만, 엄청난 차이를 시작점으로 하는 불평등한 경쟁은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하며 희망 없는 사회를 만들어 버립니다. 이는 곧 발전과는 거리가 먼, 사회적 정체와 양극화를 촉발합니다.

개천에서 다시 용이 나게 하려면

예전처럼 빈번하진 않지만 아주 드물게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사회적 경쟁은 더 심해지고 출발점마저 완벽히 달라진 사회에서 여전히 '용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라서 그런 일을 해낸 걸까요? 찬찬히 살펴보면 그들이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 찾기> 다큐멘터리는 돈이 없어서 친구 집을 전전하며 학교를 다녀야 했던 어떤 학생의 상황을 전합니다. 그 학생은 선생님의 도움으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주거가 안정되자 학생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서울의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에서 우린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출발선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애초에 출발선에서 뒤처졌던 학생들이 그나마 다른 학생들과 같은 출발선상으로 옮겨올 수 있었던 것이죠.

주변의 도움, 사회적기업, 도움을 받아 용이 된 학생들

주변에서 도움을 받아 보통 학생들과 같은 출발선상에서 노력하여 '용'이 된 학생들.


생각비행은 그동안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동력으로 '사회적기업'에 주목해왔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해 드렸던 '대안공간'이나 《사회적기업 창업 교과서》에서 소개한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적기업 프로젝트인 '토키와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싶습니다. 상업성에 연연하지 않고, 신인작가에게 갤러리와 작업공간을 무상으로 빌려주어 기성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안공간. 신인 만화작가들을 위해 작업 및 주거 공간을 빌려주고, 그들의 활동을 코치해주고 출판계와 다리를 놓아주는 토키와장 프로젝트. 이 두 사례는 사회적으로 약자이고 뒤처진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정상적인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발판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시골의사' 박경철 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회적 기회를 공정하게 만들어야 교육이 바뀐다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현재 한국의 교육은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하지 않은 채, 경쟁만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쟁구도 속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은 사회에 나와 또다시 경쟁하고, '공정한 기회'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배려 없이, 경쟁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 하는 사회에선 비극이 끊이지 않는 법입니다. 얼마 전에 일어난 카이스트 연쇄 자살 사태는 과도한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비극적인 결말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다시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모두의 출발점을 똑같게 해주면 됩니다. 예전처럼 모두 가난해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똑같이 나눠주자는 얘기도 아닙니다. 있는 사람이 먼저 십시일반하는 마음으로 약자를 돕고 배려하는 문화를 형성하자는 의도입니다. 정부가 먼저 그런 역할을 주도하고, 민간에선 사회적기업이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사회에 경쟁이 사라지긴 어렵더라도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하는 무지막지한 경쟁이 아니라 각자가 갖춘 능력을 공평한 잣대로 잴 수 있도록 사회적 바탕을 재조절하자는 얘기입니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주위를 돌아보며 함께 가는 길을 모색하자는 뜻입니다.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신화의 모델을 만드는 일은 결국 우리의 몫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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