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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신냉전 세계의 향방은?

by 생각비행 2022. 9. 19.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 9월 8일 96세의 일기로 서거했습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19일 저녁에 장례식이 치러질 예정입니다. 영국 역사상  최장수 여왕으로 재위 기간이 무려 70년입니다. 현재 영국 국민의 절대다수는 엘리자베스 여왕 이외의 국왕은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겁니다. 이처럼 대영제국 이후의 영국을 상징하는 인물이 서거했습니다.

 

출처 - YTN

 

엘리자베스 여왕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세계 정치사에 남긴 족적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1952년 25살의 젊은 나이로 여왕의 재위에 올랐을 때 당시 총리가 그 유명한 윈스턴 처칠입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의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빅토리아 여왕 당시의 대영제국과는 달리 국력이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제국이 해체되고 식민지 대부분이 독립해 나가기 시작했으니까요. 이때 영연방 56개국을 한데 모으기 위해 발로 뛴 사람이 바로 엘리자베스 여왕이었습니다. 국력이 쇠하기 시작한 나라의 왕이 지지를 받기는 쉽지 않은데 그러한 고초를 앞장서서 겪으려 했기 때문인지 엘리자베스 여왕은 재위 기간 내내 다른 왕들에 비해 고른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후 영국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어찌 됐든 국가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뉴시스

 

물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지만 받은 것은 아닙니다. 여왕으로서 대내외의 신뢰는 높았지만 왕실 가족과 연관된 각종 스캔들로 큰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번에 찰스3세로 즉위한 아들의 왕세자 시절의 불륜, 이혼 그 이후 며느리인 다이애나비의 비극적인 죽음까지 왕실 가족을 둘러싼 혼돈에서 책임을 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그래서일까요? 젊은층에서는 왕실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영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큰 어른이기도 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뒤를 찰스 3세가 제대로 이을 수 있을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스캔들로 찰스 3세 개인의 인기도가 훨씬 떨어진다는 문제점도 있고요. 아무튼 지금까지는 유지됐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왕위 교체가 이뤄지며 입헌군주제는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출처 - 로이터

 

파열음은 여왕 서거 이후 과정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찰스 3세는 어머니가 유지한 영연방 유지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대 왕국을 돌아다니며 영국이 연합왕국임을 확인했으니까요. 특히 프린스 오브 웨일스였던 찰스는 지난 16일 웨일스 의회에서 웨일스어와 영어로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웨일스어는 영어와 다른 별개의 언어에 가깝다고 하죠.

 

출처 - MBC

 

하지만 찰스 3세는 화난 민중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난방비를 대느라 힘든데 세금으로 이렇게 당신의 퍼레이드를 해주고 있다"는 항의가 빗발치며 소란이 일었습니다. 한편 찰스 3세는 즉위하자마자 수십 년 왕세자 시절을 함께한 직원 100여 명을 해고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왕세자에서 국왕으로 역할이 바뀌어 어쩔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수십 년을 함께 일한 사람들을 단체로 해고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죠.

 

출처 - SBS

 

왕실과 군주제에 대한 비난은 비단 찰스 3세만 듣는 소리는 아닙니다. 영국과 가장 크게 충돌했던 아일랜드에서는 여왕 서거 소식으로 축제가 벌어졌으니까요. "리지가 관짝에 들어갔다"는 비아냥이 넘치고 축제 때나 있을 법한 차량 단체 경적이 거리에 울려 퍼졌습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관계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야나이하라 다다오라는 일본 식민 정책 학자는 "조선은 우리의 아일랜드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36년간 일제의 식민지였으나 아일랜드는 800년이란 세월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2011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아일랜드 대통령과 서로의 나라를 방문하며 정치적으로 상당한 화해의 진전을 보였다고 하지만 아일랜드 국민감정이 그리 좋지는 않은 듯합니다.

 

출처 - 뉴시스

 

여왕 서거 이후 3일 만에 영연방 소속이었던 카리브해 섬나라 앤티가바부다는 3년 안에 공화국 전환을 국민투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지금은 찰스 3세를 새 국왕으로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하겠지만 조만간 공화국으로 전환하고 군주제를 폐지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겁니다. 같은 카리브해 영연방이었던 바베이도스가 지난해 공화국으로 전환했고 자메이카 역시 올해 바베이도스 다음으로 공화국이 될 국가는 자메이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시도는 생각비행에서 이미 다룬 바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우리에게 남긴 것은? : https://ideas0419.com/503

출처 - 서울신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장에 일반 시민 75만 명 이상, 그리고 세계 주요국 정상과 중요 인물 2000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연방의 수장, 미국 대통령, 유렵 왕가 구성원 들을 비롯해 우리나라 대통령 등 주요국 대부분이 부고장을 받았습니다. 반면 일부 국가 지도자의 국장 참석을 막기 위해 일부러 부고장을 보내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 흘라잉 미얀마군 총사령관 등이 포함됐다고 하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원흉인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대한 항의와 미얀마 쿠데타에 대한 항의 메시지로 보면 될 듯합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장례식에 관해 별다른 언급이 없는 걸로 보아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각국 정상의 면면을 보면 신냉전 상황의 최전선을 보는 듯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서구 제국주의의 유산이자 구냉전에서부터 이어진 서방 사회 중심의 세계 질서를 상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 푸틴과 시진핑은 이 서방 국가를 무너뜨리겠다는 목표를 공유하는 관계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가들은 이번 장례식이 단순한 예식을 넘어 신냉전 세계 질서의 초석이 되는 외교의 장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결국 엘리자베스 2세는 자신의 죽음으로도 세계 정치사에 뜻깊은 족적을 남기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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