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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세계 최대 규모 고인돌 복원한다며 갈아엎은 김해시

by 생각비행 2022. 8. 17.

고대 가락국 탄생의 비밀을 담고 있을 터인 세계 최대 규모 고인돌을 포클레인이 갈아엎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김해시가 복원을 한다더니 문화재를 무단 훼손한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고고학 전문가의 입회가 없는 상태로 포클레인 세 대로 모조리 헤집어놓아 원형을 뭉개버렸다고 하죠. 이마저도 문화재위원이 사적 지정을 위해 조사하러 왔다가 문제를 발견해 드러났습니다.

 

출처 - 한겨레

 

지난 2006년 아파트 신축 터에서 처음 발견된 김해 구산동 지석묘는 길이 10m, 높이 3.5m에 달하는 거대한 상석의 고인돌입니다. 그 주변 묘역이 폭넓게 꾸며져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고인돌 유적은 고인돌만 덜렁 있을 뿐 주변 묘역이라고 해서 별도의 시설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김해의 지석묘는 원래 길이가 85m로 더 클 것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폭 19m로 약 500평에 달하는 거대한 묘역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물론 세계 최대급입니다. 게다가 흙이 아닌 얇은 돌을 85m에 달하는 전 범위에 깔아서 조성되었다고 하죠. 삼국시대보다 1000년 전부터 이런 거대한 묘역을 갖춘 지배층 무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굉장히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이었습니다. 이런 가치 때문에 2006년 당시 발굴 장비와 예산으로는 제대로 조사할 수가 없어 미래를 기약하며 덮어서 보존하고 있었는데요. 김해시가 지방문화재였던 이 묘역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제멋대로 정비, 복원하다가 사달이 난 겁니다.

 

출처 - 한겨레

 

지난 5일 고고학계는 김해시가 7월부터 토목업체를 동원해 고인돌 묘역의 정비, 복원 작업을 벌이다 무덤의 대형 덮개돌인 상석 아랫부분의 박석을 비롯한 묘역 대부분을 갈아엎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김해시는 고인돌을 국가문화재로 승격시키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으나 전문가 입회하에 공사를 하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자문을 하지도 않은 채 멋대로 일을 진행했습니다. 김해시는 '가야사복원과'라는 부서까지 따로 뒀다고 항변했지만 학예사에게 업무를 전담시키지도 않았고 학계 쪽에 자문도 하지 않고서 토목 담당 공무원 위주로 일을 벌이다 역대급 참사를 낳았습니다. 시행 업체는 김해시가 정한 공기에 쫓기며 공사를 벌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김해시가 문화재 정비, 복원이 아닌 땅파기 공사 취급을 한 셈입니다.

 

출처 - MBC 

 

어이없는 공사로 고인돌의 핵심인 상석과 상석 아래 묘역층이 원형을 잃고 크게 훼손됐으며 유적 일부 구역은 석재를 걷어낸 기반 흙층 위에 육중한 포클레인 세 대를 배치해 가동하기도 했습니다. 전문가의 현장 검토 없이 배수펌프 설치 공사를 벌인 사실도 드러났죠. 이로 인해 지하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시대 집터나 유물이 부서지거나 뭉개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죠. 가락국의 초대 국왕인 김수로왕은 김해 김씨의 시조입니다. 교과서에 수록된 <구지가>를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가락국이 어떻게 신라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는지 단서가 될 수 있는 유적을 김수로왕의 후손들이 망쳐버린 셈이 됐습니다.

 

출처 - YTN

 

문제가 불거지자 전문가들이 급파되어 살펴본 결과 원형 그대로 복구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하죠. 고고학적 발견은 원형 보존이 중요한데 핵심 묘역이 파헤쳐진 탓에 지역문화재로서의 가치마저 크게 훼손됐습니다. 이 와중에 김해시와 경남 문화재위원회는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습니다. 대체로 김해시의 거짓말로 드러나며 문화재청은 고발이 불가피함을 알리고 법적 조치에 나섰습니다. 결국 지난 8일 김해시는 경남도 문화재 위원들에게 사과하며 국가 사적 지정 신청을 철회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얄팍한 문화재 인식을 드러내는 참화였습니다. 개발에 혈안이 되어 미래 자산이 될 문화재에 대한 가치를 소홀히 한 것이죠.

 

출처 - 뉴시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가치 훼손하는 무허가 아파트 철거해야 : https://ideas0419.com/1223

거듭되는 건설 사고 솜방망이 처분, 어떻게 봐야 할까?
: https://ideas0419.com/1282

 

생각비행이 여러 차례 다룬 '왕릉뷰 아파트'만 해도 그렇습니다. 법원은 지난 7월 문화재청의 공사 중지 명령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는데요, 이는 사실상 건설사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항소를 결정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기도 한 왕릉 근처에 허가받지 않고 지은 건물에 대해 분명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장릉 사태가 발생할 것이므로 항소를 통해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의도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왕릉뷰 아파트 철거는 물 건너갔다는 시각이 일반적입니다. 공사가 대부분 마무리된 상황이고 5월 말부터 몇몇 아파트에 입주가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출처 - 유네스코

 

유네스코는 김포 장릉 왕릉뷰 아파트 사태를 접하고 문화재청에 조선시대 왕릉의 관리, 감독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요구했고 지난 4월 현황 보고서가 전달됐다고 하죠. 유네스코는 보고서를 검토한 뒤 세계유산위원회 전체회의에 이를 의제로 올릴지 결정합니다. 그렇게 되면 유네스코에서 실사단을 파견하게 되는데 이때 판단에 따라 세계문화유산 삭제나 그 전 단계인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출처 - SBS

 

전 세계가 K-컬처에 열광하고 있지만 정작 대한민국은 그 근간이 되는 문화재를 얼마나 홀대하고 있는지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이번 김해 고인돌 참화와 왕릉뷰 아파트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명확한 문화재 관리 기준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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