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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만 5세 취학 학제 개편 논란, 몸통 윤석열의 꼬리 자르기

by 생각비행 2022. 8. 10.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현행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안은 결국 폐지됐습니다.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이 힘을 얻을 수는 없으니까요. 지난 7월 29일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폭탄 발언을 하듯 만 5세 취학안을 꺼내자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교육부 발표는 내부 논의가 상당히 진행되었기 때문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2025년부터 4년간 25%씩 앞당긴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런 깜짝쇼에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 대부분이 분기탱천했습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출처 - 연합뉴스

 

부모들의 걱정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우선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은  유아 발달 단계에 맞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 한 살 많은 언니나 형과 경쟁해야 할 수도 있죠. 또한 동급생이 많아져 대입과 취업 경쟁이 심해지고 과밀 학급이 늘어난다는 문제점도 발생합니다. 이 나이대 아이들은 1년이 아니라 하루하루 성장 속도에 차이가 크게 난다는 점을 고려해도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이 과연 적절한 정책인지 의구심이 들죠.

 

출처 - 동아일보

 

무엇보다 이 정책은 예전에 여러 정부에서 연구되었으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폐기된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연구가 이뤄지거나 뚜렷한 환경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과거의 정책을 다시 꺼냈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분노를 금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진보와 보수 정부를 가리지 않고 연구가 추진되었으나 결과적으로 만 5세 초등학교 취학제는 보류해야 할 정책으로 결론이 났으니까요.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일찍 보내기보다 만 5세에 필요한 것은 유치원 교육의 확대이지 초등학교 조기입학이 아닙니다. 유아 시기 교육을 공교육화하는 방안이 중요합니다. 세계적으로 봐도 5세 취학이 OECD 38개국 중 4개국, G10 11개국 중 1개국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봐도 상식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런데도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기존 연구를 뒤집을 만한 근거도 없이, 충분한 소통도 없이 느닷없이 졸속으로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이런 행보에는 교육을 백년대계로 보기보다는 취학 연령 하향으로 사교육 시장을 넓히려고 하는 쪽의 로비를 받은 것이 아닐지 의심되는 구석이 있습니다.

 

출처 - 이데일리

 

사실 초등학교 조기입학은 지금도 그냥 가능합니다. 법에 따라 현재는 학부모와 학생의 자율입니다. 다만 지난 20년간의 추이를 보면 조기입학의 장점보다 단점이 커서 꾸준히 감소해 작년에는 전체 초등학교 입학 인원의 0.1%에도 미칠까 말까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걸 강제하겠다는 거였죠. 이로 인해 피해를 볼 학부모와 학생들에 대한 대비와 보완책은 무엇 하나 세워놓은 것 없이 말입니다. 자녀 교육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섣불리 이걸 건드렸으니 국민이 분노할 만도 합니다.

 

출처 - JTBC

 

지난 8월 3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에 따르면 전국 교직원, 학생, 학부모 등 13만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7.9%가 초등학교 조기입학 정책에 반대한다고 밝혔다고 하죠. 이 가운데 매우 반대한다는 비율이 95.2%였습니다. 그러니까 윤석열 정부의 교육정책은 오차범위까지 포함하면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100% 반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치였습니다. 이렇게 결렬한 반대 여론에 부딪히자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꼬리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국민이 아니라고 한다면 정책을 폐기할 수 있다는 거였죠. 이렇게 쉽게 폐기할 수도 있는 정책이라면 장관이 가볍게 발표해서는 안 될 문제였죠.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도 조기입학 정책을 철회하고 원점부터 재검토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애초 이번 학제 개편안은 교육청이나 교육 전문가들과 논의한 적 없는 졸속 정책이었습니다. 학제 개편안은 대선 공약이나 인수위 과정에서 일언반구도 없었는데 80일 만에 느닷없이 내놓았으니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학부모, 시민, 교원단체, 유아교육 종사자, 초등학교 교원까지 숱한 교육 주체가 이렇게 한마음으로 반대한 교육 정책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출처 - YTN

 

무리한 정책을 펼치다보니 어떻게든 좋은 그림 좀 연출해보겠다고 마련한 학부모단체와의 간담회에서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간담회 막바지에 "제가 업무보고에서 이런 화두를 던지지 않았더라면 언제 이렇게 학부모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을 수 있겠느냐"는 어이없는 소리를 해 매를 벌었죠. 간담회에 참석한 한 단체 대표는 "지금 병 주고 약 주는 소리냐. 이미 팩트 체크도 없이 정책들만 던져놓고 이제 와서 간담회에서 할 소리냐"라고 반발했습니다. 이에 대해 인터넷상에서는 "이완용 : 내가 매국이라는 이런 화두를 던지지 않았더라면 언제 이렇게 민초들의 가슴 아픈 독립 만세를 들을 수 있겠느냐"라며 비웃는 패러디가 넘쳤습니다.

 

출처 - KBS

 

이번 사태의 핵심에는 윤석열과 대통령실이 있습니다. 지난 2일 대통령실에서 취학연령 하향과 관련해 윤석열의 지시가 있었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공론화와 숙의 과정이 필요하니 교육부가 신속하게 이에 관한 공론화를 추진하고 종국적으론 국회에서 초당적 논의가 가능하도록 촉진자 역할을 해달라는 지시였다고 합니다. 

 

출처 - 아이엠피터

출처 - 계대욱 / 오마이뉴스

 

그런데 국민 여론이 좋지 않으니 바로 말이 바뀝니다. 취학연령 하향과 관련해 교육부 발표가 성급한 게 아니었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대해 교육부는 취학연령 하향을 공식화한 것은 아니라며 하나의 예로 그런게 있을 수 있다고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며 브리핑에서 꼬리를 잘랐습니다. 대통령이 지시하고는 여론이 안 좋으니 교육부 장관을 잘라 무마하는 것밖에 안 되는 꼴이죠.

 

출처 - MBC

 

허구한 날 술판을 벌이는 윤석열 대통령, 그가 임명을 강행한 교육부 장관 박순애는 만취 음주운전, 논문 표절, 조교 갑질 의혹 등 경력이 참으로 화려했습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참 잘 어울리는' 인사였는데, 윤석열 정부는 출범 100일도 안 돼 세 번째 교육부 수장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무엇을 하든 기대 이하여서 큰 관심은 없지만, 지난날의 과오는 반복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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