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일 미국과 중국이 대만을 두고 첨예하게 대치하는 상황을 세계가 숨 죽이고 지켜봤습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2일 밤 중국의 극력 반대와 규탄을 무릅쓰고 대만 방문을 강행했기 때문이죠. 조 바이든 행정부는 펠로시의 상징성 탓에 중국과 관계 악화를 우려해 대만행에 신중론을 표했지만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미국 의전 서열 3위인 하원의장 펠로시는 미 역사상 첫 여성 하원의장입니다. 2003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된 후부터 민주당 하원을 이끌었고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최대 원군이지만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바이든의 우려를 물리치고 소신을 관철한 셈입니다. 펠로시는 1997년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 이후 25년 만에 대만을 찾은 최고위급 미국 인사입니다.
출처 - 트위터
펠로시는 젊은 시절부터 수십 년간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정치 초보로 의정 활동을 시작한 지 갓 4년 된 지난 1991년 9월 중국 베이징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추모한 행위로 유명하죠. 1989년 유혈 진압된 톈안먼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간 이들에게'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펼쳐 들고 추모 성명을 낭독했다가 공안에 쫓겨났고 취재기자들이 억류되었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톈안먼 민주화 시위 33주년을 맞은 올해에도 성명을 내고 공산당을 억압 정권이라고 비판하며 톈안먼 시위가 정치적 용기를 발휘한 가장 위대한 행동 중 하나였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밖에도 중국, 티베트 활동가들과 홍콩 민주화 정치범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신을 중국 주석들에게 전달하는 등 중국 인권 상황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해왔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펠로시는 대만에 도착하자마자 미 의회 대표단의 대만 방문은 대만의 힘찬 민주주의를 지원하려는 미국의 확고한 약속에 따른 것이라며 방문의 명분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을 강화하면서 법치에 대한 무시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홍콩 사태로 중국은 일국양제 약속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는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백악관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며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사건을 진화하면서도 미국은 대만관계법에 따라 대만의 자기방어를 지원할 것이라는 점은 강조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2021년 1월 취임 후 대만이 중국의 침공을 받을 경우 군사적으로 돕겠다는 이야기를 세 차례나 발언한 바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중국은 미국의 대응에 대해 무력시위를 예고했습니다. 중국 국방부는 미국이 잘못된 신호를 보내 대만해협의 긴장을 고조시켰다며 일련의 표적성 군사행동으로 반격해 영토의 완전성을 수호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중국은 대만을 포위하는 형태로 설정한 구역에서 인민해방군이 4일부터 7일까지 군사훈련과 실탄사격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기간에 관련 선박과 항공기는 이 해역과 공역에 안전을 위해 진입하지 말라고 통보했죠.
출처 - TV조선
동아시아 정세가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한 가운데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대만 바로 다음 행선지로 한국을 택했습니다. 펠로시 의장을 포함한 미국 하원의원 대표단이 탑승한 C-40C 전용기가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에 착륙했으나 주한미국대사관이 공개한 펠로시 의장 입국 당시 사진을 보면 국내 정부 인사와 정치권 관계자의 환대는 없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TV조선은 주한미국대사관 관계자가 "펠로시 의장은 한국 측 의전 관계자가 아무도 안 나온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언급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외교는 상호주의가 원칙이고 일반적으로 해당 서열에 맞춰 의전을 행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펠로시 의장 의전홀대는 단순히 펠로시 개인이 아닌 미 하원 나아가 미국에 대한 무례로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은 "부끄러운 의전참사"라고 비판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윤석열 행정부는 얼마나 급한 현안이 있길래 의전 서열 3위인 미 하원의장을 홀대한 걸까요? 국회는 "공항에 의전을 나가지 않기로 펠로시 의장 측과 사전 협의를 거쳤다"고 해명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 휴가 일정 때문에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기로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대통령이 여름 휴가 중인데, 박진 외교부 장관은 캄보디아로 출국했습니다. 결국 대통령실도 외교부도 펠로시 방한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일도 안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물론 대통령도 인간이고 쉴 권리가 있습니다. 1~5일 여름 휴가를 냈다면 조용히나 있을 것이지 공식 SNS에 4일 오전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뒤풀이하며 배우들과 술 마시는 사진을 찍어올린 건 대체 무슨 의도였을까요? 휴가를 어디 먼 곳에서 보내기 때문에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나지 못하는 건 줄 알았는데,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있었네요. 심지어 펠로시 하원의장이 머무는 호텔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15분 거리밖에 안 되는데 말이죠. 기민하게 현안을 챙기겠다고 멀쩡한 청와대 두고 용산으로 간 것 아니었나요?
출처 – 오마이뉴스
결국 국민이 분노했습니다. 아마추어 국정 운영도 정도껏이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어이없다는 감정을 표출했습니다. 이 정도면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고 봐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부터, 120시간씩 일할 수 있게 한다며 대선부터 떠들던 사람이 자기 휴가는 소중하다는 거냐라는 비웃음도 날렸고요.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구멍가게 사장도 저러진 않겠다는 게 정확한 민심입니다. 미중 갈등의 현안인 대만 방문 직후라면 휴가고 뭐고 세계 정세와 정보 파악을 위해서라도 달려가 직접 이야기를 들어야 할 판국인데 술이나 마시고 있다니요? 문재인 전 대통을 비롯한 이전 대통령들은 휴가 중이어도 중요한 일이 생기면 근처 공관에 방문하여 현안을 논의하곤 했습니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서까지 비난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펠로시와 전화 통화만 했습니다.
출처 - 교도통신
펠로시 하원의장은 김진태 국회의장과 50여 분 환담 후 JSA로 이동한 후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직접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났습니다. 펠로시는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도 국가 수반을 만났죠. 그만큼 현 시국이 비상하다는 방증일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과 행정부는 의전 예의는 고사하고 국익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외교는 보수고 안보도 보수라고요? 이런 행태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옵니까? 외신 보도처럼 미국 입장에서도 윤석열은 미국의 짐일 뿐이라는 걸 스스로 입증하고 말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대체 어디까지 국격을 추락시켜야 만족할까요? 참으로 한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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