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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시와 함께 읽는 4.19

by 생각비행 2011. 4. 18.
오늘은 4월 19일. 4.19혁명이 일어난 지 51년이 되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또한 4월 19일은 생각비행이 출판사로서 태어나 활동을 시작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생각비행의 아이디가 괜히 ideas0419가 아닌 셈이죠. ^^a
이렇게 의미가 있는 4월 19일을 그냥 지나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요. 요즘 젊은 학생들은 역사 ― 특히 현대사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역사가 선택과목이 되어 더 그런 실정인데요, 4.19혁명 51주기를 맞아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시민의 이뤄낸 쾌거를 현대 시로 다시금 돌아보고자 합니다.

4.19혁명이 일어난 사회경제적 요인

구직, 사회경제파탄

'구직'이란 푯말을 목에 건 구직자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기간산업 시설이 파괴되어 생활 물자가 부족해졌습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점차 심해졌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권력자와 유착관계를 이뤘고, 이는 부정부패를 가속화했습니다. 깡패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정치인들과 결탁해 갖은 횡포를 일삼았습니다.

먹고살기가 어려워진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에 정든 고향을 떠나는 사람이 나날이 늘었습니다.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었고, 농촌 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전쟁으로 남하한 북한 피난민들은 생활기반이 전무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6.25 이후 상이군경, 전쟁 미망인, 제대한 군인들이 거리로 나서면서 실업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4.19혁명이 일어난 
정치적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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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출처: 위키피디아)

전쟁 이후 어려운 사회경제적 상황 속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각종 부정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했습니다. 1952년 임시수도인 부산에서 정치파동(대통령 직선안을 국회가 부결하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의원 12명을 구속함)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발췌개헌안'을 강제로 통과시켜 독재체제의 기반을 굳혔습니다. 

2년 뒤 1954년에 이승만 정권은 독재를 위한 개헌을 강행합니다. 이른바 '사사오입개헌'이죠. 당시 헌법상 3선 할 수 없다는 대통령 임기제한을 없애고자 당시 집권당이었던 자유당이 사사오입의 논리(재적의원 203명, 참석의원 202명 중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의 결과가 나왔으며, 개헌 가능 의결정족수는 재적의원의 3분의 2 이상이었으므로 개헌안이 가결되기 위한 충분한 선은 136명이어야 했음. 재적의원 2/3는 135.33…명이므로, 자연인은 136명이어야 함, 하지만 자유당은 수학의 4사5입론을 적용하여 0.33이란 반도 안 되는 소수점 이하는 삭제하는 것이 이론상 옳다고 주장함)를 펴자 야당의원이 반발하여 퇴장했고, 이 틈을 타 자유당 의원들이 개헌을 통과시켜버립니다.

헌법개정을 이용한 정권 창출 이외에도 부정적인 방법은 더 있었습니다. 3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진보당의 조봉암 후보의 득표가 30퍼센트에 이르자, 이승만 정권은 조봉암을 간첩죄로 처형했습니다. 이른바 진보당 사건인데요, 정적을 없애기 위해 벌인 말도 안 되는 사건이었습니다(최근 진보당 사건은 무죄로 선고되면서 조봉암과 그 가족이 복권되고 보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국가보안법 제정, 반공체제 강화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집권당인 자유당의 횡포 탓에 국민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그들이 저지른 부정은 점차 부작용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썩은 정치판이 곪아 터진 사건이 바로 3.15부정선거입니다.

3.15부정선거와 김주열의 죽음이 촉발한 혁명

3월 15일, 대한민국 4대 대통령선거를 전국에서 치렀습니다. 집권당인 자유당에선 이승만이 대통령, 이기붕이 부통령 후보로 나왔습니다. 이때 이승만 정권은 초조했습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약진이 돋보였으므로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그동안 구축했던 독재체제에 비상등이 켜질 전망이었으니까요.

이에 자유당은 반드시 집권하겠다는 야욕으로 극심한 부정선거 활동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공무원들로 하여금 불법 선거 운동망을 조직하고, 전국 경찰에게 선거 활동을 감시·감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또한 정치깡패를 동원하여 선거를 어지럽혔습니다. 전라남도 여수와 광산에서는 민주당 간부가 살해되는 사건까지 일어났습니다. 고령인 이승만의 뒤를 이을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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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부정선거를 다룬 기사(출처: 위키피디아)


선거일이 다가오자 부정선거의 모습은 더욱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선거 전날 자유당은 모든 선거함에 이승만과 이기붕을 찍은 위조 투표지를 무더기로 집어넣었고, 선거 당일에는 돈을 주고 한 사람이 투표지를 20장까지 가져가는 등실로 말도 안 되는 선거조작 행위를 벌였습니다. 요즘 세상엔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진 것이죠. 무지막지한 불법행위로 자유당조차 당황하게 된 진풍경을 연출했는데요, 개표과정 중에 이기붕의 표가 100퍼센트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죠. 깜짝 놀란 자유당 지도부는 이승만을 80퍼센트로, 이기붕은 70~75퍼센트로 조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극심한 부정선거가 끝나자 마산을 비롯한 몇몇 도시에서 이에 항거하는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진압에 어려움을 느낀 정부는 계엄령을 내리고 시위자들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곳곳에서 학생들이 죽어나갔습니다. 서울에선 시위하고 귀가하는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정치깡패들에게 린치를 당해 2명이 죽고 수십 명이 부상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시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마산 앞바다에 한 구의 시신이 떠올랐습니다. 실종되었던 김주열 학생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죠. 이 참혹한 사실은 신문을 통해 전국으로 빠르게 전파되었고, 꽃처럼 산화한 김주열 학생의 죽음은 4.19혁명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4.19혁명의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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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출처 : 위키피디아)

김주열 학생의 안타까운 죽음을 다룬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이 일어서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 4월 19일, 앞선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학생들과 이에 자극을 받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경무대와 이기붕의 자택으로 몰려갔습니다. 그들은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였고, 김주열 사건에 관련된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강경진압이었습니다. 경찰들이 곳곳에서 발포하여 수십 명의 학생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했습니다. 이에 시위는 점차 과격해져 시위대는 경찰차에 불을 질렀고, 재선거와 이승만의 하야를 요구했습니다. 당황한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계엄령이 선포되자 시위는 잠시 주춤했습니다. 하지만 군인들이 진압에 나서지 않았기에 큰 충돌은 없었습니다. 4월 23일, 부통령이었던 장면이 사임하고, 4월 25일에 혁명을 묵묵히 지켜보던 대학 교수들이 시위에 참여함으로서 이승만과 정부는 점점 궁지에 몰렸습니다. 정치인과 정부 고위 관료까지도 이승만의 하야를 원하게 되자, 결국 4월 26일 라디오 연설에서 이승만은 대통령직 하야를 발표합니다.

시(詩)로 돌아보는 4.19혁명

역사에서 시민이 이뤄낸 혁명을 처음으로 체험한 시인들은 시로써 화답합니다. 혁명과 민중의 힘을 노래한 시 가운데 신동엽, 김수영의 작품이 특히 유명합니다. 특히 <풀>과 <껍데기는 가라>가 대표적인 시입니다.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 5. 29>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漢拏에서 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52人詩集》(1967년)


<풀>과 <껍데기는 가라> 외에도 4.19혁명을 노래하는 시를 조금 더 소개할까 합니다.

<一九>

 - 김수영

나는 하필이면
왜 이
잠이 와
잠이 와
잠이 와 죽겠는데

지금 쓰려나
罪因들의 말이
배고픈 것보다도
잠 못자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해서
그래 그러나
같은 것
같은 것
안 쓰려고 그러나
더구나
<一九> 같은 것
안 쓰려고 그러나

껌벅껌벅
두 눈을
감아가면서
아주
금방 곯아떨어질 것
같은데
밥보다도
더 소중한
잠이 안 오네
달콤한
달콤한
잠이 안 오네
돌아와 그러나
世界政府理想
따분해 그러나
이 나라
백성들이
너무 지쳐 그러나
별안간
빚 갚을 것
생각나 그러나
여편네가
짜증낼까
무서운 그러나
동생들과
어머니가
걱정이 돼 그러나
참았던 오줌 마려
그래 그러나 

같은 것
같은 것
써보려고 그러나
<一九> 같은 것
써보려고 그러나

<1961. 4. 14>


4은 갈아엎는 달

- 신동엽

내 고향은
강 언덕에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
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풀줄기 우그려넣고 있을
, 죄 없이 눈만 큰 어린것들.

미치고 싶었다.
四月이 오면
山川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四月이 오면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우리네 祖國에도
어느 머언 心底, 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미치고 싶었다.
四月이 오면
곰나무서 피 터진 東學의 함성,
光化門서 목 터진 四月勝利.

江山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亭樂不夜城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漢江沿岸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밥.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일어서는 달.

《조선일보》(19664월)


어떠신가요. 김수영, 신동엽 시인의 시에서 4.19혁명의 순간을 다시금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김수영 시인은 잠보다 소중하고, 밥보다 소중한 4.19 시를 씁니다. 인간에게 원초적인 필요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권리를 찾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라는 표현이겠죠. 신동엽 시인에게 4월은 언제나 일어서서 갈아엎는 달이었습니다. 진달래는 피고, 가슴에도 속잎이 돋아나고 있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변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4월은 그에게 있어서 변해야 하는 달이었습니다. 그만큼 4.19혁명은 시인에게 소중한 경험이었고, 변하는 그날까지 사람들에게 전해야만 하는 귀중한 정신적 자산이 아니었을까요?

짧게나마 4.19혁명이 일어난 배경과 경과를 살펴보고, 그와 관련된 시로 다시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았습니다. 역사가 선택 과목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젊은 학생들에게 올바른 현대사에 대한 안목을 요구하기는 어렵겠지요. 무엇을 소중하게 지켜야 하고, 어떤 정신을 후대에 물려주어야 하는지 4.19혁명 51주기를 맞으며 모두가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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