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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37년 만에 치른 명예복직 및 퇴직식, 노동자 김진숙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by 생각비행 2022. 2. 28.
“수천번을 마음 속으로 외쳤던 말, ‘저 복직해요!’”


지극히 일상적인 일일 수 있는 취직, 복직, 퇴임이 누군가에겐 평생을 건 목표가 되기도 합니다. 지난 2월 23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저 한 문장을 트위터에 올리기 위해 37년을 투쟁해야 했습니다.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출처 - MBC

 

김진숙은 18세부터 공장 시다, 신문배달원, 우유배달원, 시내버스 안내양 등등 안 해본 일이 없다시피 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1981년 10월 1일 대한조선공사(구 한진중공업, 현 에이치제이중공업)에 대한민국 최초 여성 용접사로 입사해 일했습니다. 1986년 노조 대의원에 당선됐고 당선 직후인 2월 20일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유인물을 제작, 배포했다는 이유로 세 차례나 부산 경찰 대공분실에 연행됐습니다. 대공분실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김진숙은 7월 14일부로 징계해고됩니다. 시간이 흘러 2009년 11월 2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당시 김진숙을 필두로 한 한진중공업 내 노조 민주화 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부당해고된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에 따라 복직을 사측에 권고했으나 한진은 이를 거부했죠.

 

출처 - 경향신문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진 측은 2010년 12월 경영 악화를 이유로 들며 생산직 노동자 400명을 희망퇴직시키기로 결정합니다. 30여 년이 지나도 경영 실책의 책임을 노동자가 떠안는 악습은 계속됐습니다. 김진숙은 이에 반발하여 2011년 1월 6일부터 한진중공업 내 85호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노사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무려 309일간 크레인에서 농성했죠. 2020년에는 한진중공업이 회사를 팔려고 내놓으며 인력 감축을 추진하자 김진숙은 노동자와 연대하는 의미로 복직투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2021년 2월 한진중공업을 다시 한번 김진숙의 복직 교섭을 결렬시켜버립니다. 김진숙의 복직이 이루어진 건 한진중공업을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인수해 에이치제이중공업으로 바꾸고 난 뒤의 일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노동자 김진숙을 해고한 국영기업 대한조선공사도, 이를 인수한 사기업 한진중공업도 모두 김진숙으로 대표되는 노동운동을 짓밟기 바빴습니다. 청와대 앞 희망행진을 마무리하는 집회에서 김진숙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의 재권고과 국회 노동위원회, 부산시의회까지 나서서 복직을 촉구했는데도 한진중공업이 끝까지 김진숙의 복직을 거부한 이유는 '배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재벌의 행태는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땅콩 회항부터 온갖 갑질로 유명한 재벌가인 한진이 '배임'이란 단어를 노동자의 복직을 거부하는 데 사용하는 걸 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출처 - 한겨레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 및 퇴직식이 지난 2월 25일 열렸습니다. 김진숙이 복직하자마자 퇴직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의 정년이 사실 2020년 12월 31일로 이미 지났기 때문입니다. 김진숙은 부산 에이치제이중공업 영도조선소 내 단결의 광장에 한진중공업의 푸른색 작업복 차림으로 참석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김진숙에게만 굳게 닫혔던 문이 오늘 열렸다. 정문 앞에서 단식해도 안 되고, 애원해도 안 되고, 피가 나도록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오늘에야 열렸다"는 감회를 얘기하며 복직 인사를 건넸습니다.

 

출처 - 한겨레

 

복직과 퇴직을 앞둔 시점에 김진숙은 독재정권 시절 힘들게 투쟁했던 노동자들을 먼저 걱정했습니다. 자신은 공장이 그대로 있으니 37년 만에라도 복직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됐지만, 1970~1980년대 독재를 뚫고 투쟁했던 청계피복노조, 동일방직, YH 노동자들은 돌아갈 공장이 사라졌기 때문이었죠. 그는 부산에 삼화고무를 비롯한 신발공장 노동자들이 여전히 해고자 딱지가 붙은 채 남아 있는데 최소한 자신처럼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서 복직 권고를 받은 노동자들부터라도 명예복직이나마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 복직 및 퇴임식에서 에이치제이중공업 경영진과 정치권에 당부의 말을 남겼습니다. "단 한 명도 자르지 마십시오. 어느 사람도 울게 하지 마십시오. 하청 노동자들 차별하지 마시고 다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래야 이 복직은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말이죠.

 

출처 - 국제신문

 

발언 말미에 김진숙 지도위원은 "먼 길 포기하지 않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긴 세월 쓰러지지 않게 버텨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정리해고 위기 앞에선 대우버스 동지여러분 힘내십시오."라며 함께 30여 년간 싸운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그러고는 "끝까지 웃으면서 투쟁!"이라는 외침으로 발언을 마무리했습니다.

 

출처 - 민중의소리

 

600일이 넘는 복직 투쟁의 결과 겨우 복직 및 퇴직이라는 권리를 얻은 김진숙 지도위원. 그는 노동자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손에 넣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명예복직 및 퇴직식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막막한 우리나라 노동계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도 듭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인내하며 투쟁하여 결국 한 명의 노동자로 명예롭게 퇴직한 노동자 김진숙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언급하며 정치권에 "하루 6명의 노동자를 죽인 기업의 목소리가 아니라 유족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라고 외친 노동자 김진숙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인권을 생각하는 사회로 한걸음 더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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