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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스타벅스의 '그린워싱' vs 직원들의 '트럭 시위'

by 생각비행 2021. 10. 13.

지난 9월 28일 출근길과 점심시간 스타벅스 매장 앞에 늘어선 긴 줄을 보신 분이 많을 겁니다. 원인은 스타벅스가 진행한 '리유저블컵 이벤트'였습니다.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재사용이 가능한 다회용 컵을 무료로 주는 행사였는데요, 반응이 그야말로 폭발적이었습니다.

 

출처 - 뉴스1

 

스타벅스 비대면 주문 방식인 사이렌오더 앱에 8000여 명의 동시 접속자가 몰려 시스템이 마비되었고 일부 지점은 1~2시간이 넘는 대기 줄이 늘어서기도 했습니다. 스타벅스 한정판 굿즈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꽤 비싼 가격에 팔리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소장할 목적이 아니라 되팔 목적으로 스타벅스 이벤트 상품을 받으려고 매장에 줄을 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런 욕구 때문에 이벤트의 취지인 리유저블, 즉 재사용이 가능한 컵으로 커피를 마시며 환경에 보탬이 되자는 뜻과 완전히 동떨어진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스타벅스 매장의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점심시간에 커피를 주문한 직장인들은 음료를 기다리다 결국 가져가지 못하는 상황마저 생겼습니다. 사이렌오더는 앱으로는 취소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시간에 쫓기다 매장을 떠난 직장인들이 주문한 음료와 리유저블컵은 마시지도 써보지도 못하고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출처 - MBC

 

스타벅스나 여타 기업의 친환경 취지의 행사나 물품이 오히려 환경을 망가뜨리는 아이러니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지적이 많았죠. 스타벅스는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친환경으로 과장하거나 속이는 기업 마케팅을 의미하는 '그린워싱'의 대표 기업으로 지적되곤 했습니다. 텀블러, 에코백, 리유저블 컵 등등 그간 스타벅스가 한정판이라며 뿌린 굿즈 이베트지만, 정작 지구환경에 도움이 되었을지 의문이 듭니다.

 

출처 - 스냅타임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 리유저블컵과 뚜껑, 빨대를 합한 무게는 약 49g이었습니다. 평소 스타벅스에서 쓰이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약 14g이어서 리유저블컵이 3.5배 더 무겁습니다. 그러니까 리유저블컵 하나에 네 배 가까운 플라스틱이 들어갔으니 인스타그램에 인증 사진 올리기만 하고 버린다면 기존 일회용 컵을 쓰는 것보다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죠.

 

출처 - 인스타그램

 

지난 2019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의 실험 결과로 보더라도 330ml 용량의 텀블러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카페에서 주로 쓰는 종이컵보다 24배, 일회용 플라스틱 컵보다 13배 높았습니다. 다회용 컵이 진짜 친환경 목적을 달성하려면 리유저블 등 플라스틱 텀블러는 최소 50회 이상, 스테인리스 텀블러는 최소 220회 이상 사용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출처 - KBS

 

한편 이번 스타벅스 이벤트같이 수집욕을 자극하는 친환경 굿즈들은 쓰레기를 양산하는 돈벌이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 여론도 거셉니다. 한편 스타벅스의 리유저블컵 이벤트는 노동자의 업무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칩니다. 리유저블컵 이벤트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만큼 스타벅스 직원들은 엄청난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출처 - MBC

 

직장 블라인드 앱에 익명으로 올라온 스타벅스 매장 직원들의 원성을 보면 이런 상황을 잘 알 수 있죠. 지난 9월 28일 당시 대기 음료가 100잔이 넘고 대기 시간은 기본 1시간 이상이었는데, 이 음료를 누가 대신 만들어주는 게 아닙니다. 평소 매장 직원의 노동으로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스타벅스는 회사 방침상 진동벨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 음료가 나올 때마다 직원이 목청 높여 손님을 일일이 불러야 하죠. 이번 이벤트 때 상황이 정말 나빴던 매장은 대기 음료만 650잔이었다고 합니다. 직원들은 역대 최대 주문량에 울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지만 책임감 하나로 이 악물고 버텼습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이벤트를 기대하는 고객이 몰릴 것이 너무나 뻔한 상황인데도 아무런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스타벅스는 매장 규모와 매출에 따라 적정 직원 수가 정해져 있어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으니까요.

 

출처 - 시사저널

출처 - 머니그라운드

 

'글로벌 대기업'이라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스타벅스의 커피 맛을 좌우하는 정규직 바리스타의 월급은 세후 200만 원이 안 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구나 10년 차와 1개월 차 노동자가 똑같은 시급을 받습니다. 업무 능력에 비해 경력 직원의 급여가 지나치게 낮게 설정되어 있는 겁니다.

 

출처 - MBC

 

결국 참고 참았던 스타벅스코리아 직원들이 이번 이벤트를 계기로 차량 시위를 계획했습니다. 1999년 스타벅스가 들어온 이후 22년간 스타벅스에는 노조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이 시위를 계획했다는 것만 봐도 직원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죠.

 

출처 - 아시아경제

 

직장 블라인드 앱을 통해 익명으로 모인 이들은 전례 없는 무노조 트럭 시위를 기획했습니다. 트럭 시위는 게임회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권리 찾기 시위로 많이 쓰인 바 있죠. 스타벅스코리아 직원들은 트럭 대여비와 현수막 비용 등을 위해 간편송금앱으로 트럭 계약금과 법적 자문 비용 등 330만 원을 모금했다고 합니다. 이 트럭시위에 쓰일 현수막에는 '스타벅스코리아는 창립 22년 만에 처음으로 목소리 내는 파트너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마십시오', '#스타벅스파트너는 일회용소모품이 아닙니다'와 함께 이를 영어로 표기한 ‘#NoMoreTreatPartnersAsExpend’ 등의 문구를 노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뉴시스

 

스타벅스 직원들은 안 그래도 적은 매장의 인원 감축을 규탄하는 한편 업무 환경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송호섭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는 지난 10월 6일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공식 사과했습니다. 이번 스타벅스 이벤트와 트럭 시위는 친환경 이벤트의 아이러니와 극악한 노동 환경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노조 없는 직장의 직원들이 익명 앱에서 모여 트럭을 대여해 간접 시위를 하는 형태는 요즘 젊은 세대의 노동 운동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이 같은 형태의 노동 운동이 향후 직장 환경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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