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아파트 문제로 소란스럽습니다. 그런데 김포 장릉 옆 아파트도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죠. 인천 검단 신도시에 있는 일군의 아파트가 조선 왕릉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릉은 유네스코(UNESCO,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주 소중한 곳이죠. 문화재청은 이들 건설사를 인천 서부경찰서에 고발하면서 지난 9월 30일부터 아파트 공사를 중지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문화재청에 고발된 시공사 세 곳이 짓고 있던 아파트 대상지는 경기도 김포시 장릉 인근입니다. 장릉은 조선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자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1580~1619)과 부인 인헌왕후(1578~1626)의 무덤으로 사적 202호입니다. 문제는 이 시공사 중 어느 한 곳도 문화재청에 사전 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겁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건설사들은 문화재 반경 500m 안에 포함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아파트를 지으려면 문화재청의 사전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이번에 문화재청이 공사 중지 명령 대상으로 삼은 건 3400여 세대 규모 아파트 44개 동 가운데 문화재 보존 지역에 포함되는 19개 동입니다.
출처 - SBS
문화재청장은 지난 2017년 1월 김포 장릉 반경 500m 안에 짓는 높이 20m 이상 건축물은 개별 심의한다고 고시했습니다. 그런데도 건설사들은 훨씬 높은 아파트를 지으면서 심의를 받지 않았습니다. 문화재 현상변경허가 없이 왕릉 근처에 아파트를 지은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건설사들은 2014년 인천도시공사가 땅을 매각할 당시 현상변경허가를 신청해 저촉사항이 없다는 회신을 받았고, 인천 서구청도 건축심의 과정에서 추가적인 현상변경허가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건설사들에게 주택사업계획 승인을 내준 인천 서구청 공무원을 감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출처 - SBS
결과적으로 건설사들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인 문화재의 가치를 훼손했고 관련법을 어기며 위법하게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문화재청은 법에 의해 보완은 물론 원상복구, 즉 아파트 철거 명령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내년 입주 예정자들로서는 날벼락 같은 일이 되겠죠. 건설사들은 이런 입주자를 볼모로 공사를 계속하려고 시도했습니다. 9월 30일부터 공사를 중지하라는 문화재청의 명령에 대해 건설사들이 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기각되어 현재 2개 단지(1900세대) 23개 동 중 12개 동의 공사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문화재청은 오는 10월 11일까지 각 건설사에게 '역사문화환경 개선 대책'을 제출하게 했습니다. 추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들 아파트와 관련한 후속 조치 사항을 결정한다는 방침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 김포 장릉 아파트 사태는 여기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조선왕릉은 남한에 있는 40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여러 지역에 산재한 한 왕조의 사후 공간 전체가 한날한시에 등재된 것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죠. 서울과 경기 18개 지역에 걸쳐 총 40기에 달하는 왕릉이 자연경관과 함께 잘 보존됐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겁니다. 그런데 이번 아파트 건설로 왕릉 주변의 경관이 훼손될 경우 장릉 1기가 아니라 조선왕릉 40기 전체의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조선왕릉 등재가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호시탐탐 문화유산 등재를 노리는 중국과 일본에 좋은 일이 되겠죠.
출처 - YTN
'에이, 설마 그러겠어?'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실제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가 취소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문화 강국이라는 독일의 경우 2004년 엘베 계곡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지만 드레스덴 주정부가 그곳에 현대적 다리를 놓는 바람에 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5년 만에 등재 취소됐습니다. 영국의 경우 비틀스의 도시 리버풀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으나 지정 지역 안팎에서 이뤄진 난개발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목록에서 삭제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김포 장릉 옆 아파트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을 유지하느냐보다도 훨씬 중요한 '원칙'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번에 다 지어가는 건물이라고 문화재청이 타협을 하게 되면 이후부터는 건설사들이 너도 나도 일단 짓고 보자는 심보로 공사에 달려들 겁니다. 세입자를 볼모로 내세우면서 한편으로는 세계문화유산이 인근에 있다는 프리미엄을 붙여 아파트를 훨씬 비싸게 팔아먹겠죠.
출처 - MBN
이번 '화천대유'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해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퇴직금을 50억이나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이유로 내세우는 것이 문화재와 멸종위기종을 몰아내고 공사를 진행시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철저한 규제가 없으면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건설사들은 일단 밀어버리고도 남을 겁니다.
출처 – 청와대 청원 게시판
원칙을 지키지 않는 건설사들에 대해 분노한 국민들은 '김포장릉 인근에 문화재청 허가없이 올라간 아파트의 철거를 촉구합니다'라는 청와대 청원에 참여했습니다. 청원 마감일이 한참 남았지만 10월 7일 현재 20만 3701명이 무허가 아파트 철거에 동의했습니다. 건설사들의 위법 행위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로 남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건설사의 주먹구구식 개발에 제동을 걸고 명확한 기준을 확립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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