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어이없는 인재가 터졌습니다. 지난 9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사업 공사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철거 현장과는 반대쪽인 도로 쪽으로 무너졌죠. 도로 쪽 정류장에 멈춰 서 있던 54번 시내버스를 건물이 덮쳐 버스 승객 17명 중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이 참사로 숨진 60대 여성 승객은 맏아들의 생일이라 미역국을 끓여놓고 일터로 향하다 변을 당했습니다. 사망자 중 가장 어린 고등학교 2학년 김모 군은 음악동아리 활동을 끝내고 집에 오는 버스를 타고 부모님께 “집에서 보자.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60대 아빠와 30대 딸은 같은 버스를 탔다가 참변을 당해 딸은 사망하고 아빠는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빠가 버스 앞에 앉고 딸은 뒤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생사가 갈렸습니다. 중환자실에 간 아빠는 딸의 죽음을 모른 채 딸부터 구해달라는 말만 되풀이하여 주위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이번 참사의 원인은 역시나 인재입니다. 붕괴된 건물을 철거한 업체가 해체계획서에 따른 순서를 지키지 않은 게 아니냐는 추정이 있었습니다. 고층부터 차례차례 허물어야 하는데 뒤편 밑 벽부터 뜯어내다 원래 허물어져야 하는 방향과 반대쪽인 도로로 건물이 엎어진 겁니다. 해체계획서를 완전히 무시한 채 작업을 했다는 건데요. 목표보다 무려 20일이나 빠르게 90%를 철거했다고 하죠. 건물 12채를 6월 말까지 철거하는 계획이었는데 지난 10일 시점에 사고가 난 건물 하나를 빼곤 이미 철거를 끝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인근 주민들이 안전 관련 민원을 사고 전에 넣은 적이 있었는데 담당 공무원이 민원을 그냥 흘렸습니다. 한마디로 공사 업체와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와 공기를 줄여 돈을 아끼는 철거 방식이 빚은 참사였습니다.
출처 - MBC
그런데 문제는 이번 사건이 단순히 철거 업체만의 책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공사비를 절감하고 공사 기간도 단축하려고 위험천만한 방식으로 철거를 했다는 건데, 전문가들은 이런 작업 방식을 볼 때 2차, 3차 하도급을 넘어가는 하청의 하청의 하청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죠. 애초 최저입찰제로 철거 업체를 뽑는 것도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지만, 최근 코로나 상황으로 철거 업체들이 출혈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 담당 관청이나 공사 원청은 그런 상황을 이용해 가격만 후려치고 있으니 안전상의 문제가 안 생기면 운이 좋은 것으로 봐야 할 정도입니다. 이번 사고 현장에는 의무적으로 현장을 관리해야 할 현장 감리자도 없었습니다. 결국 총체적인 난국이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군요.
출처 - 로톡뉴스
도심에서 이런 참사가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닙니다. 불과 2년 전인 2019년 서울 잠원동에서 똑같은 사고로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던 예비 신부가 숨진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번 광주 붕괴 사고와 마찬가지로 지상 5층, 지하 1층짜리 건물을 허물다가 차량 3대를 덮쳐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었죠. 광주에서처럼 잠원동 역시 건물 상층부가 남아있는데 무리하게 굴삭기로 파내다가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하루 30만 원인 크레인 대여료를 아끼려다 잔여물이 쌓인 건물이 하중을 못 이겨 넘어간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잠원동 사고로 실형을 받은 이는 달랑 1명이었습니다. 잠원동 사고 관계자인 현장 소장, 감리 관계자 굴삭기 기사 등 5명이 재판에 넘겨졌으나 결과적으로 현장 관리소장 1명에게만 징역 2년이 선고되었습니다. 나머지 관계자들은 벌금과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났습니다. 일부 피해자와 합의했고 범행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지난 10일 광주 붕괴 사고 후 처음으로 희생자 유족과 광주광역시, 동구청, 원청인 현대산업개발, 현장 철거업체 관계자들이 장례 절차와 지원 등을 협의하기 위해 모였다고 하죠. 하지만 큰절을 하며 빌어봤자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는 광주시장과 동구청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등이 찾아왔는데요. 유족들은 물론 시민들도 사람들이 죽고 나니까 우르르 몰려와 이야기를 듣는 척한다며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사고가 나기 전 주변 시민들이 현장 안전에 대해 우려를 표했을 때는 귓등으로 흘려버리더니 말입니다.
출처 - MBN
일부 의원들은 참사 현장에서 사진 한 장 찍겠다고 몰려 내려와 꼴같잖은 추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소방차 등 사고 수습 차량이 서야 할 자리에는 행정안전부 차관을 비롯한 의원들의 고급 차량이 불법 주차되었고, 한 정부 관계자는 사고 현장을 ‘행사’라고 발언해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사고수습대책본부 안에는 지역 국회의원과 시의원들이 앉아 깔깔 거리며 웃더니 기자들 카메라에 안 찍히게 조심하자는 말까지 해댑니다. 한 시민이 이런 보여주기식 방문을 지적하자 시민을 상대로 욕설까지 해댑니다. 이들은 1시간 정도 있다 현장을 떠났습니다. 사고 수습과 관련한 논의 없이 사진만 찍고 의전을 받다가 간 것이죠.
출처 - MBC
지금 이대로라면 2년 전 잠원동 사고처럼 광주 건물 붕괴 사고도 현장 관리소장 1명만 1~2년 징역 살고 잊히고 말겠지요. 그러고는 원청은 또 하청 업체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하청 업체들은 더 싼 가격에 다른 하청으로 떠넘기고, 담당 관공서는 대충대충 면피하면서 또다시 이런 참사를 되풀이하겠죠.
출처 - 경향신문
그러니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이런 인재가 일어날 경우 명확히 원청을 겨냥해 회사가 망할 정도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직접 신경 써서 관리하고 안전에 투자하는 편이 훨씬 이익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할 테니까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부터 25년, 우리나라 건설업계는 언제쯤 제대로 된 공사를 하게 될까요? 암담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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