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 새로운 예술인가, 투기의 대상인가?

인간이 인공지능(AI) 알파고에게 유일하게 승리한 세기의 바둑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바둑사와 인류사에 길이 남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네 번째 대국이 지난 5월 18일 2억 5000만 원에 낙찰됐습니다. 이런 보도를 보고 의구심을 품은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바둑 기보를 샀다고 한들 특허처럼 자기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대체 대국 한 판을 어떻게, 무슨 수로 경매에 부칠 수 있는가 하고 말이죠. 

 

출처 - MBC

 

이번에 경매에서 낙찰된 상품은 알파고를 이긴 이세돌 9단이 바둑 기보를 디지털 파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경매 낙찰가는 60이더리움, 18일 시세로 2억 5000만 원이었습니다. 이 기보를 담은 디지털 파일을 만들 때 쓰인 것이 NFT라는 기술인데요. '대체 불가능한 토큰(Non Fungible Token)'의 줄임말입니다.

 

출처 - 오픈씨 홈페이지 / 연합뉴스

 

사실 아날로그 작품과 달리 디지털 파일은 원본과 복제본 사이에 질적, 양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디지털의 특성상 원본과 똑같은 파일을 복제하면 사실상 원본을 무한하게 만들 수 있죠. 이 때문에 오직 하나 혹은 극히 소수만 소유할 수 있는 아날로그 작품과 같은 아우라가 존재하리라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2억 5000만 원이나 주고 현실에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디지털 파일을 사람들이 사기 시작한 걸까요?

 

출처 - IT동아

 

이는 NFT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쓰이는 기술로 알려진 블록체인을 이용해 특정 디지털 파일의 위변조와 복제가 불가능한 꼬리표를 붙이는 겁니다. 일종의 디지털 인증서 역할을 한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NFT도 암호화폐처럼 일종의 자산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현재 유통되는 NFT는 대부분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발행되고 있다고 하죠. 현재로서는 NFT와 암호화폐의 차이점은 대체 가능성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암호화폐도 화폐이기 때문에 1이더리움은 다른 1이더리움과 맞바꾸는 게 가능합니다. 하지만 한 번 부여된 주민등록번호는 다른 주민등록번호와 맞바꾸거나 할 수 없죠. 이번 경매 건의 경우 한마디로 디지털 파일에 불과하지만 이세돌 9단이 공식적으로 직접 인정한 유일한 기보인 셈입니다. 아날로그로 따지자면 거장이 본인의 작품임을 인정하고 낙관을 찍거나 사인을 한 것과 똑같습니다.

 

 

예술계의 상식을 뒤집는 NFT는 해외에서 먼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술 자산이라는 것을 인간이 의미를 부여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한다면, NFT는 현실의 예술 자산의 영역을 넘어 디지털 영역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을 자산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출처 - BBC

 

트위터 CEO이자 창립자인 잭 도시가 2006년 처음으로 올린 트윗은 약 30억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됐습니다. 한 SNS의 효시라는 의미가 담겼기 때문이겠죠. 올해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미국의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이 이미지 파일 하나를 경매에 부쳐 무려 780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미국 스포츠 수집광들이 천착하는 것 중 하나인 NBA 선수 카드도 이제 종이 카드가 아닌 동영상 파일로 NFT를 달고 나오고 있습니다. 한 장에 최고 2억 3000만 원에 팔린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상품성이 인정되면서 가상의 예술품뿐 아니라 실제 미술품에도 NFT가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한 미술품의 소유권을 여러 명이 나눠 가질 수 있게 해 투자 장벽을 낮추고, 분할 소유권을 NFT로 관리한다고 합니다.

 

출처 – BBC

 

이제는 역사적 사건이나 창조성이 바탕이 된 예술품만이 아니라 흔히 짤 또는 움짤이라고 불리는 이미지나 동영상들도 경매를 통해 높은 가격에 팔리기도 합니다. 움짤로 유명했던 Nyan Cat은 6억 원 상당의 이더리움으로 거래됐으며, 재앙의 소녀 밈으로 인터넷에서 자주 쓰였던 사진은 최근 NFT로 47만 3000달러, 그러니까 약 5억 3500만 원에 팔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연히 찍혔거나 장난일 뿐인 영상조차 수억씩 나가다 보니 갖다붙이기 나름이라고 볼 수도 있어서 NFT에 대한 시선은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출처 - Pexels

 

기대하는 쪽은 새로운 예술품 시장이 열렸다며 반깁니다. 복제나 왜곡이 너무나도 쉬워진 현시대에 예술가들의 권리 보호와 판로 개척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입니다. 재판매가 이뤄지더라도 블록체인으로 소유주의 흐름이 명확히 특정되기 때문에 전통적인 예술품이 소유자의 히스토리를 토대로 진품과 가품을 구분하고 가치를 책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는 겁니다. 반면 우려하는 쪽은 암호화폐와 마찬가지로 NFT 역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투기의 수단일 뿐이라는 입장입니다. 아무리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고 해도 원본과 복제물의 질적 차이가 없는 디지털 파일이라 희소성이 극히 떨어지는데, 시작부터 고가의 시장이 형성되는 건 거품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NFT는 현실적으로 전자 등기권리증에 불과한데 암호화폐 열풍을 타고 나온 또 다른 투기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죠.

 

출처 - 매일경제

 

암호화폐의 난맥상도 현재 진행형인데 NFT라는 것까지 나와 골치가 아픕니다. 과연 NFT는 블록체인의 새로운 시도가 될수 있을까요? 아니면 비트코인과 같이 제2의 투기 광풍으로 치달을까요? 예단하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다만 새로운 기술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구분하지 않고 허상만을 좇다가 피해를 보는 분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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