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로부터 50년, 노동 현장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5월은 가정의 달이지만, 그 시작은 노동절입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사회 실현이 이 정부의 목표 중 하나라는 것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근로자의 날인 5월 1일을 정식으로 '노동절'로 바꾸고 법정공휴일로 정하자며 5월 임시국회 처리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그간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이 비준되고 지난해 노동자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는 등 변화의 흐름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노동 현장에서 일상으로 벌어지는 안타까운 청년들의 죽음을 마주하노라면, 그 노동 환경과 관련된 변화의 흐름이 너무나도 더디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 KBS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300kg이 넘는 철판에 깔려 숨진 대학생 이선호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다들 아실 겁니다. 선호 씨는 그날도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내용물 검수를 포함해 다양한 작업을 했습니다. 선호 씨는 코로나로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곧잘 아버지를 따라나섰다고 하죠. 하루 9시간을 일하고 손에 쥐는 일당은 9만 8000원이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선호 씨가 일하던 노동 현장에는 문제점이 많았습니다. 원청인 동방은 현행법을 어기고 불법 파견 행위를 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개방형 컨테이너를 다루는 일은 평소 선호 씨가 하던 업무가 아니었다고 하죠. 처음 투입되는 현장에서는 안전 교육을 통해 작업의 위험성이나 주의 사항 등을 숙지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런 교육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지게차 같은 중장비를 사용하는 현장은 작업 지휘자나 유도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것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선호 씨 사고는 장비 노후화가 원인이었습니다. 개방형 컨테이너의 날개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진동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참사가 일어난 겁니다. 숱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현장에서 선호 씨는 안전모도 없이 안전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으로 투입되었습니다.

 

출처 - JTBC

 

그러므로 선호 씨의 죽음에는 국가의 책임도 있습니다. 평택항이 국가의 기간시설인 만큼 정부가 안전 관리 감독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평택항은 노동자의 신원 확인 같은 기초적인 절차도 밟지 않았습니다. 보안 교육이나 안전 교육은 물론 근로계약서를 쓴 적도 없죠. 그런데 정말로 끔찍한 일은 사고가 발생한 직후 현장의 대응이었습니다. 300kg이 넘는 컨테이너 날개에 깔린 선호 씨를 구하러 간 사람은 같이 있던 외국인 노동자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는 당장 119에 신고하라며 무거운 컨테이너 날개를 들어 올리려다 허리를 다쳤습니다. 그런데 정작 주변에 있던 한국인 현장 인원들은 119 신고보다 윗선에 보고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사고를 당해 생명의 빛이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컨테이너 날개에 깔린 선호 씨를 30여 분이나 방치한 겁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사고 현장을 마치 중계라도 하듯 원청에 보고부터 한 행태를 뒤늦게 알게 된 선호 씨 아버지는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았겠지요. 아버지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아들 선호 씨의 이름은 '삶의 희망'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의 허망한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고 자식을 둔 대한민국의 부모가 이 일을 다 알아야 한다며, 선호 씨 아버지는 기자들에게 얼굴도 이름도 가리지 말라고 호소했습니다.

 

출처 - MBC

 

원청인 동방은 선호 씨가 사망한 지 무려 20일이 지난 지난 12일에야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언론 앞에서 보이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 정작 유가족에게는 기자회견을 알라지도 않았습니다. 피해자와 유족에게 직접 하지 않는 사과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출처 - 미디어스

 

선호 씨 같은 청년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도 문제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한 청년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뒤흔든 한강 의대생 실종 및 사망 사건입니다. 똑같은 청년의 죽음이지만 언론의 접근과 보도 방식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한강 의대생 사건은 사건 초기에 미스터리물을 다루듯 선정적 기사를 양산하더니 급기야 장례식장의 추모사까지 생중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숱한 기자들의 선정적인 추리 극장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에 반해 평택항 선호 씨의 사망 사건은 거의 묻히다시피 했다가 SNS와 커뮤니티 등에서 문제를 제기한 끝에 뒤늦게 언론 보도를 타기 시작했죠. 하지만 두 사건의 기사량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두 사건 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가 안타깝게 사망한 사건이고, 자식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애끊는 마음이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왜 이렇게 언론의 보도 시점과 보도 방식이 다른 건지, 그 이면에 어떤 이유가 작동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부모와 사고 당사자의 사회적 지위가 이런 이상한 보도 양상의 원인이라면, 참으로 치가 떨리는 일 아닐까요? 극단적으로 다른 언론의 대응 양상이 누군가의 죽음을 모욕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 JTBC

 

올해 노동절을 맞아 전태일 열사의 일기장 원본이 50년 만에 처음 공개되었죠. 스물두살 청년 전태일의 일기장 맨 앞장에는 단 두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일을 위해 산다. 절망은 없다.’

 

전태일 열사가 1970년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스스로 몸에 불을 질러 숨진 지 50년이 흘렀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그토록 바란 내일일 텐데 지금 노동자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 주변에는 노동기본권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이 60%에 달합니다. 전태일 열사의 꿈이 이뤄지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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