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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외면받는 남양유업, 사회적 책임이 대안이다

by 생각비행 2021. 5. 11.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이 지난 4일 불가리스의 코로나19 억제 효과 발표 등의 무리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면서 남양유업이 그동안 저지른 다른 논란들에 대해서도 사죄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출처 - MBC

 

모두가 알다시피 남양유업은 지난 2013년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 등으로 이른바 대기업의 '갑질' 사건의 서막을 연 회사였습니다. 성차별 고용 관행도 심각했습니다. 여직원이 결혼하면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임신하면 그만두도록 압박해 비난을 받았죠. 최근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세종시로부터 생산의 40%가량을 담당하는 세종공장의 2개월 영업정지를 사전 통보받았을 정도로, 남양유업은 사내 문화, 홍보, 제품 생산, 판매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심각한 기업입니다. 게다가 오너가의 외조카인 황하나가 마약 투여 및 밀수를 여러 차례 저질러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고, 홍원식 회장의 장남인 홍진석 상무는 회삿돈을 유용해 지난달 보직 해임됐습니다. 이처럼 오너 가족 또한 총체적 문제 상황입니다.

 

출처 - 남양유업

 

남양유업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 결정적 사건은 지난달 13일 자신들이 후원하는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19를 77.8% 줄이는 효과를 확인했다는 말도 안 되는 발표를 했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실험 방법이 잘못되었고 이를 연구 발표한 사람 또한 남양유업 관계자였습니다.

 

출처 - 뉴스포인트

 

결국 주가조작으로 한탕 하려는 수작에 가까운 사건이라 금융당국에서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국민을 우롱한 것에 분노한 시민들은 남양유업 불매운동을 한층 더 가열하게 펼쳤습니다. 경찰도 압수수색을 하는 등 진상 조사에 들어갔죠.

 

출처 - KBS

 

홍원식 회장의 사과와 사의 표명에도 소비자의 마음이 이반한 것은 그동안 숱한 대기업 오너들의 거짓 사과에 지친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남양유업이라는 기업 자체에 대한 불신이 한몫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홍원식 회장이 2013년 밀어내기 갑질 사태에 대해 직접 나서서 공식으로 사과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동안 남양유업이 하도 문제를 많이 일으켜서 사과했다고 착각하셨을 수 있는데요, 기업의 최종 책임권자라 할 수 있는 홍원식 회장이 직접 나서서 대국민 사과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소비자들을 우습게 봐왔음을 방증합니다.

 

출처 - 아주경제

 

무엇보다 지난 4일 홍 회장의 대국민 사과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었던 결정적 요인은 그가 회장직을 사퇴해도 남양유업을 지배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남양유업 사내이사 4명 중 3명이 홍 회장 가족이며 홍 회장 개인 지분만 해도 51.68%에 달합니다. 가족 전체를 다 합하면 53.08%에 해당하고요. 오너 일가가 과반 대주주이기 때문에 2선으로 물러나더라도 회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고, 언제든 입장을 번복하고 이사회를 통해 다시 회장으로 복귀할 수도 있으며, 자신의 뜻을 회사의 공식 의견으로 만들 힘이 있는 겁니다. 결국 소비자들은 홍 회장이 자녀들한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더라도 지분은 물려줄 것 아니냐면서 지분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경영 정상화를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는 사죄 퍼포먼스였을 뿐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홍 회장의 사퇴 소식이 나오자마자 남양유업 주식은 20~30% 급등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대기업의 경쟁력을 깎아 먹는 건 오너 일가라는 오너 리스크를 재확인한 셈입니다. 하지만 홍 회장이 사퇴의 뜻을 밝힌 뒤 주식이 급등하여 홍씨 일가의 재산이 결과적으로 늘어난 셈이라 입맛이 씁니다.

 

출처 - 연합뉴스

 

남양유업은 지난 7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비대위를 구성해 경영 쇄신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지난 10일 밝혔습니다. 비대위원장은 정재연 남양유업 세종공장장(부장)이 맡기로 했다고 하죠. 속도감 있는 혁신을 위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를 선임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과연 오너 일가의 소유와 경영 분리, 지배구조 개선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출처 - 뉴스1

 

벌써 세종시 농업축산과에는 남양유업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가 접수되고 있다고 하죠. 탄원서를 낸 단체나 기관은 한국낙농육우협회, 충북도 축산과, 충남·북 지역 낙농가, 남양유업 노조 등입니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남양유업 세종공장 가동이 중단되면 낙농업계가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세종공장이 남양유업 제품의 약 40%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종공장 종업원이 470여 명, 납품하는 축산농가만 해도 200여 곳이나 되어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이 확정되면 낙농가 피해 규모가 수백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하죠. 이처럼 대기업에 물린 목숨이 많다 보니 문제가 터져도 정작 해당 기업은 제대로 처벌받지도, 기업 구조가 개선되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비교를 위해 매일유업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 이투데이

 

지난해 코로나19로 등교 수업 대신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일상이 되는 풍경이 연출되었고, 이로 인해 학교 우유급식이 중단되면서 우유업계에 큰 타격이 발생했습니다. 통상 우유급식 시장 성수기가 3월인데 지난해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터라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죠. 2020년 상반기 유업계의 성적표를 보면 서울우유가 매출은 1위를 유지했지만, 상대적으로 매일유업의 선방이 눈에 띕니다. 서울우유와 달리 급식사업 비중이 덜한 편이어서 하반기 경쟁력이 더 커질 것이란 분석도 있었죠.

출처 - 뉴스핌

 

실제로 코로나19 상황에서 급식우유 시장 내 낮은 점유율이 매일유업으로서는 득이 됐습니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2020년 상반기 매출 8599억 원, 영업이익 309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4.3% 감소했습니다. 매일유업은 같은 기간 매출 7135억 원, 영업이익 407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영업이익은 서울우유를 앞질렀으며 매출액 기준 성장률도 전년 동기 대비 3.8%로 서울우유 성장 폭보다 컸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등교 제한으로 매일유업 역시 급식 관련 매출이 줄어들었으나 2018년부터 성인영양식을 론칭하고 제품과 사업 다각화를 시도한 전략이 유효했습니다. 

 

출처 - 한국경제

출처 - 매일경제

 

매일유업은 남양유업과는 지난 50년간 우유업계의 라이벌이었죠. 분유와 우유 시장에서 격돌했으나 수십 년간 남양유업이 우위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2013년 남양유업이 지역 대리점에 우유 물량을 밀어내는 갑질 사건을 일으켜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성장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반면 매일유업은 사업을 다각화하며 성장의 발판을 다졌습니다. 지난 2017년 매일유업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것도 다양한 자회사 설립을 통해 종합식품회사로 성장하기 위한 정지작업이었습니다. 저출생 문제로 우유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인식으로 사업을 다각화한 결과 코로나 상황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기업이 된 것이죠. 

 

출처 - 뉴스웨이

 

남양유업은 소비자의 불신을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인 이미지 쇄신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이 필수적입니다. 회사 경영의 본질을 생각할 때입니다. 《사장을 위한 실전 경영 28》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업의 경영은 스프린트의 주법이 아니라 마라톤의 주법입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돌을 날라 산을 옮긴 우공의 신념이 어쩌면 사장님들이 견지해야 할 자세일 것입니다. 이는 적어도 수십 년간 기업을 이끈 경영인들을 통해 이미 검증되었습니다. 대단한 학벌과 스펙이 없어도, 엄청난 천재가 아니더라도 많은 경영인들이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성공적으로 기업을 이끌었습니다. 

사회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정치인만의 일이 아닙니다. 기업을 이끄는 사장들이 노사관계를 변화시키고, 산업 전반의 상생을 이끌고, 기업이 소재한 지역의 문화마저도 바꿉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막중한 책임만 생각하지 마시고, 사장으로 산다는 것이 떳떳하고 보람찬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내가 만들어낸 고용이 노동자와 그 가정을 먹여 살리고, 협력 기업들은 우리 회사로 인해 기술이 개발되고 고용이 유지됩니다. 이렇게 따지면 기업가 한 사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는지 모릅니다. 그뿐인가요? 기업이 소재한 지역의 상권은 기업과 기업 노동자들의 소비로 돌아갑니다. 지자체와 국가는 기업의 활동 덕분에 세금이 걷힙니다. 제대로 된 기업가 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 이 사회와 시민들이 얻는 혜택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한편 《지역과 상생하는 기업 핵심전략》의 저자는 기업을 사회 바깥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권리가 있고 의무를 가진 완벽한 사회의 구성원, 즉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기업은 상업적 활동으로 이윤만 챙기는 존재가 아니라, 보유한 핵심 역량을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의미 있게 기여함으로써 지역사회와 상생을 추구해야 하는 동반자적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과거와 달리 기업이 돈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사회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봉사함으로써 지역과 상생하는 기업만이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사회혁신 비즈니스》

 

기업기부, 전략적 자선, 사회적 후원은 과거에 많은 기업이 주로 하던 활동이었으나 앞으로 기업이 정말 인정받으려면 이전의 활동을 포함하면서도 기업이 보유한 핵심역량을 활용하여 지역과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기업사회참여'는 돈이 있는 큰 기업이라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작은 기업이라고 해서 하지 못할 일도 아닙니다. 기업의 핵심역량을 사회를 위해 사용할 의지가 있는 기업이라면 규모와 상관없이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남양유업이 계속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환골탈태하는 실천으로 남양유업은 기업의 존재 의미를 소비자에게 재인식시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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