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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논란이 된 디지털 교도소,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법부의 신뢰 회복이다!

by 생각비행 2020. 9. 10.

지난 9월 5일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에 21살의 한 재학생이 최근 사망했다는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고대 19학번인 A가 일전에 명예훼손으로 디지털 교도소 관계자들을 고소한 적이 있다 보니 아마도 n번방 같은 성착취물 가해자로 추정된 데 따른 극단적 선택이 아닌가 하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출처 - 뉴시스


디지털 교도소에 성범죄자로 신상이 올라온 A씨가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디지털 교도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었습니다. 경찰 등에 따르면 디지털 교도소는 지난 7월 A씨가 '지인능욕'을 요청했다며 그의 얼굴 사진과 학교, 전공, 학번, 전화번호 등의 신상정보를 게시했습니다. 지인능욕이란 지인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하는 성범죄를 의미합니다. A씨는 대학교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서 "디지털 교도소에 올라온 정보는 내 것이 맞다"고 하면서도 "범죄사실 내용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자신이 성착취물을 제작한 적도 공유한 적도 없다고 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한 겁니다. 이에 대해 디지털 교도소 측은 피해자 측이 A씨의 목소리 파일을 가지고 있으며 확인 결과 A씨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A씨가 디지털 교도도 관계자를 고소하자 디지털 교도소 측은 A씨가 진짜 가해자일 경우와 해킹으로 인한 피해자일 경우 모두에 대해 대처를 고민 중이라면서 A씨의 해명글을 함께 올렸으나 최근까지도 지인능욕 가해자가 A씨일 정황이 높다고 주장하며 신상을 계속 공개했습니다. A씨는 지난 9월 3일 집에서 숨진 채 가족에게 발견되었습니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이런 사건을 접하면서도 '디지털 교도소'라는 게 뭔지 여전히 생소한 분도 계실 텐데요, 디지털 교도소란 범죄자들, 특히 살인이나 성범죄를 저지른 자들의 신상정보를 인터넷에 올려 30년 동안 다른 사람들이 조회할 수 있게 공개한 사이트를 말합니다. 손정우의 웰컴투비디오나 n번방 사태처럼 온 국민을 공분케 했던 범죄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것에 분노한 사람들이 적어도 범죄자가 누구인지는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인터넷상에 개설한 교도소가 바로 디지털 교도소인 셈입니다. 이번에 언론, 방송에 이름이 오르내린 디지털 교도소의 운영자는 "대한민국 악성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웹사이트"라며 "저희는 대한민국의 악성 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하여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한다"라고 취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교도소에는 손정우를 비롯해 고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에 대한 가해자, 고 최희석 경비원을 죽음으로 몰고간 심모 씨, 고유정 같은 사람 150여 명의 신상정보가 공개되어 있었습니다.


출처 - 아시아뉴스통신


디지털 교도소를 만든 사람들의 감정적인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디지털 교도소 운영은 명백한 불법입니다. 명예훼손과 아청법 위반이며 나아가 국가의 성립과 함께 금지된 사적제재의 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명예훼손죄가 존재하지 않는 미국이나 일부 동유럽 국가에서는 이런 형태의 디지털 교도소가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나 대한민국 법체계 내에서는 형사처벌 대상이며 외국에 체류하고 있더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출처 - 에펨코리아

 

지난 7월 23일 대구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정보통신망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 등을 수사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 발표가 나자 찬반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애초 사법부가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판결을 내려왔다면 이런 사이트가 생길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손정우만 해도 사법부가 말도 안 되는 솜방망이 형량을 구형하더니 미국 송환마저 불허한 탓에 출소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죠. 경찰이 엄정한 수사를 호언장담했던 n번방 성착취물 구매자들에 대한 신상공개도 결국엔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경찰이 얽혀 있던 버닝썬 사태가 어떻게 유야무야 묻혀버렸는지를 생각한다면 디지털 교도소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납득할 만합니다. 공적인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하기가 요원하다 보니 사적인 방식으로라도 정의를 구현해보겠다는 심산인 겁니다. 그런데 디지털 교도소의 운영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고, 이로 인해 또다른 피해자들이 생겨나면서 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출처 - JTBC


가장 발생하기 쉬운 문제는 애먼 사람을 성범죄자 등으로 낙인 찍는 경우였습니다. 지난 7월 격투기 선수 출신인 김도윤 씨는 디지털 교도소에 의해 자신이 2004년 경남 밀양 집단 성폭행의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신상이 공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로 몰려와 비난과 욕설을 퍼부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성폭행 가해자라는 정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디지털 교도소의 정보 취합 과정에서 연관성이 없는 김도윤 씨를 가해자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김도윤 씨가 이에 대해 디지털 교도소 측에 항의하자 디지털 교도소 측은 뒤늦게 정보를 지우고 사과했습니다만, 성폭행 가해자로 이미 오인받은 사람의 정신적인 충격과 물질적 피해를 과연 어떻게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출처 - JTBC


디지털 교도소 운영진이 공인된 사람들도 아니고 객관적인 자료를 다룰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니 이처럼 사실 관계 오인 이나 정보 오류, 동명이인 등에 의한 잘못된 신상정보 게재 등 부작용의 가능성은 농후했습니다. 제도와 절차에서 벗어나 범죄자를 자기만의 정의감으로 단죄하겠다며 견제받지 않고 휘두르는 힘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어 선의의 피해자를 다치게 하는 칼이 되기 쉽습니다. 실제로 디지털 교도소 운영진들이 자기네와 의견이 다른 댓글을 삭제하고 IP를 차단하는 식으로 독재적인 운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만에 하나 가해자를 색출한다는 취지로 운영진들이 취합한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멋대로 어딘가 제공하거나 까발릴 경우에 대한 대책도 없는 상황이었죠.

 

출처 - 성범죄자 알림e

 

디지털 교도소가 신상 공개한 사람들이 실제 가해자라 할지라도 문제는 남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신상공개제도를 운영 중인데 디지털 교도소는 공개된 기준 없이 운영진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신상을 공개하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교도소는 의혹 단계이거나 유죄 판결이 나오지 않은 사람들의 신상도 무차별적으로 공개했습니다. 이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신상공개명령은 법과 제도에 의한 것이어도 부작용이 존재합니다. 지난 2012년 9월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자 A씨가 용의자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언론사에서 A씨가 아닌 대학생 Q씨 사진을 잘못 게재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2013년에는 신상공개명령을 선고받은 아버지를 둔 자녀가 이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습니다. 

 

출처 - 전북일보

그 자녀에게 대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법과 제도에 따른 정당한 신상공개일지라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디지털 교도소가 자신들만의 정의감으로 신상공개를 마구 행한다면 어떤 불특정 다수 혹은 개인 피해자를 양산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최근 범죄자 신상정보를 공개하던 디지털교도소가 엉뚱한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연이어 공개하는 문제가 발생하며 논란을 빚자 지난 8일 오후부터 이 사이트의 접속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디지털 교도소는 일부 실익이 있다 하더라도 예상되는 부작용이 너무나도 큽니다. 하지만 사법부와 검경은 왜 사람들이 이런 디지털 교도소까지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길 바랍니다. 국민들 사이에 디지털 교도소에 대한 찬반 논란까지 발생한 사태를 되집어보면 그 근원에는 사법부와 검경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디지털 교도소 운영진을 색출하려는 노력 이상으로 실제 범죄 가해자들을 색출해내야 마땅하겠죠.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한 제2, 제3의 디지털 교도소가 계속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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