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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역대 최장기 장마가 남긴 수해, 이제 기상재앙에 대비할 때

by 생각비행 2020. 8. 20.

최근 몇 년간 마른장마가 계속되었는데 올해는 50일 가까이 이어진 최장기 장마로 각종 피해 소식이 잇따랐습니다. 전체적인 비의 양도 엄청났지만 지역별로 단시간에 물폭탄이 터지듯 쏟아진 집중호우로 피해가 한층 컸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 8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은 장마로 큰 피해를 본 철원, 제천 등 중부 지방을 1차 특별재난지역으로, 이어서 13일 합천, 곡성 등 남부 지방을 2차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습니다. 곡성 지역의 경우 8월 7~8일 이틀간 555mm라는 기록적인 폭우를 기록했는데요, 이로 인해 6명이 사망했고 이재민만 1230명, 재산피해액은 1114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출처 - 뉴시스


처음 기습 호우의 피해를 본 부산은 7월 강수량이 796.8mm로 평년의 2.6배에 달했고, 1년 총강수량의 절반 이상이 7월 말에 쏟아졌다고 하죠. 대전 역시 7월 29일부터 이틀 동안 내린 집중호우로 2명이 숨지고 평년 강수량의 1.6배인 544.9mm가 쏟아졌습니다. 8월 들어 중부지방에 자리 잡은 장마전선은 8월 중순까지 남부지방을 오가며 엄청난 물폭탄을 퍼부었습니다. 이로 인해 8월 12일 기준으로 역대 최장 장마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31명의 사망자(실종 11명)가 발생했던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 당시의 기록을 넘어선 겁니다. 장마가 길어지다 보니 지반이 약해져 8월 들어서만 600건이 넘는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이렇게 피해가 막중한 와중에 미래통합당의 친이계 의원들은 이명박 정권 때 만든 4대강 덕분에 그나마 폭우 피해가 이 정도에 그친 것이라는 어이없는 소릴 꺼냈습니다. 섬진강의 제방이 무너지고 피해가 확산하자 섬진강까지 4대강 사업을 했으면 홍수 조절이 잘됐을 거라는 논리입니다. 이재오, 홍준표, 정진석 등 친이계 의원들은 4대강 사업을 이어받아 지류와 지천으로 확대했다면 지금보다 물난리를 더 잘 막았을 것이라는 소릴 꺼내어 여야와 여론의 비웃음을 샀죠.

 

출처 - JTBC

 

이미 상식으로 자리 잡은 얘기지만 4대강은 홍수 예방 효과가 없습니다. 이번에 낙동강과 섬진강의 제방이 붕괴한 사례를 보면 집중호우로 강물이 많이 불어난 것은 맞지만 호우 피해의 직접적인 원인은 모래로 만들어진 제방, 제방보다 낮은 다리, 높이가 일정치 않고 갑자기 낮아지는 지형 등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홍수 대비 시설들 때문입니다. 특히 4대강 사업의 마스터 플랜에는 낙동강 335km의 노후제방 보강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번 사태가 벌어진 곳들을 보면 4대강은 홍수 방지가 목적이 아니라 운하를 만드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환경운동연합

 

4대강 사업은 4대강 본류에 사업이 집중되었습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을 하기 이전에 본류는 97.3% 정비가 이뤄진 상황이었습니다. 홍수 피해, 가뭄 피해는 모두 대부분 4대강 본류가 아닌 지천에서 발생했고, 이 때문에 환경 단체와 전문가는 모두 본류가 아닌 지천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올해 홍수도 4대강 본류에서 발생한 피해는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에 열을 올렸을까요? 홍수와 가뭄, 둘 다 해결할 수 없는데도 보를 만든 이유는 결국 '배를 띄우기 위한 구조'를 만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에 퍼부은 예산을 전국 곳곳의 홍수 취약지점 개선사업에 투입했더라면 지금보다 홍수로 인한 피해가 적었을 겁니다. 사실 2017년 감사원의 4대강 사업 감사에서 홍수 예방 효과가 없다는 것은 결론 난 바 있습니다. 결국 4대강 사업은 예산뿐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 생태계를 파괴하고 홍수/가뭄 피해에 도움이 되지 않은 몹쓸 사업이었을 뿐입니다.


출처 - JTBC / 서울환경연합


최근의 물난리는 장마 때문이 아니라 기후위기가 원인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립니다. 올해 물난리는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죠. 중국과 일본의 물난리가 뉴스에 심심치 않게 나곤 했습니다. 중국에서 두 달 동안 폭우가 이어져 우리나라 전체 인구만큼의 수재민이 발생하는 국가적인 재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올해 한중일을 휩쓴 폭우의 주범은 북극과 시베리아의 이상고온 현상입니다. 극지방에 따뜻한 공기가 쌓여 제트기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동아시아 상공에 머물렀는데, 이 찬 공기가 북태평양 고기압의 북상을 막은 겁니다. 

 

출처 - JTBC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역임한 조천호 박사는 JTBC 〈차이나는 클라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기후위기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에 지구 곳곳에 이상기후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작년에 미국 북부에서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이 발생해 미국 5대 호의 반이 얼고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상기후는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이상고온 현상과 관련이 깊다고 합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 기온이 오르면 반사경 역할을 하던 빙하와 눈이 녹아 햇빛을 흡수하는 흡수판이 되고 맙니다.

 

출처 - AP연합뉴스

 

북쪽의 찬 공기와 북태평양고기압의 따뜻한 공기의 온도 차가 클수록 장마전선이 강하게 발달하는데요, 올해 우리는 그 절정을 본 셈입니다. 만년설로 뒤덮여 있어야 할 북쪽이 불타고 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중위도인 한중일 삼국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이현수 기상청 기후예측과 과장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북극의 해빙이 녹으며 북극에 있어야 할 찬 공기가 중위도 쪽으로 많이 내려온 상태"이고 "찬 공기가 중위도 쪽에 장기간 정체하고 있다"며 긴 장마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우리가 물폭탄에 시달리고 있을 때 호주, 프랑스는 열폭탄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프랑스는 40도까지 오른 기온 때문에 도시 3분의 1에 폭염경보가 발령됐고, 호주는 폭염, 산불, 메뚜기 떼에 의한 재난이 덮쳤습니다. 해가 갈수록 전 세계에서 폭염, 폭우, 폭설 등 지역별 간극이 더 커지고 있는 것도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재앙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는 한 해가 갈수록 기상재앙이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

 

출처 - 기상청

 

미국의 국가기후평가보고서는 21세기 말 미국은 매년 자연재해로 600조 원 이상의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세계은행은 2060년이면 기후 문제로 인한 난민이 1억4천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기상 재앙으로 물 부족, 흉작, 해수면 상승, 해일 등 재해가 심해지면서 고향을 버리고 떠도는 사람들이 1억 명이 넘게 생긴다는 소립니다.

 

출처 - 기상청

 

환경부와 기상청은 지난 7월 28일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을 발간했습니다. 2014년 이후 6년 만에 발간된 이번 보고서는 연구진 120명이 최근 6년간 발표한 1900여 편의 국내외 논문과 보고서를 분석해 한국의 기후변화 상황과 전망을 정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온실가스 배출이 지금처럼 지속될 경우, 21세기 중반 이후 한국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요? 우선 연간 10.1일인 폭염일수가 35.5일로 3배 이상 늘어납니다. 이에 따라 온열질환으로 인한 노인과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의 사망이 증가합니다. 다음으로 기온 상승으로 인한 동물 매개 감염병이 더 자주 발생하게 됩니다. 해수온도와 해수면도 지속해서 높아집니다. 이와 더불어 집중 호우로 인한 홍수 위험이 늘어남과 동시에 가뭄 피해도 심해집니다. 벼의 생산성이 25% 줄어들고 사과를 재배하기 적합한 조건의 땅은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기상이변은 전 지구적 현상입니다. 우리나라만 치수를 잘한다고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구의 환경과 생태계의 변화가 우리의 일상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지구온난화, 기후위기, 기상재앙에 대비해야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더 강력하고 더 광범위한, 세계가 참여하는 '그린 뉴딜'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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