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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의정부고 졸업사진 논란,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by 생각비행 2020. 8. 21.

경기도 의정부고의 독특한 졸업사진은 유머와 풍자로 매년 화제가 됩니다. 졸업사진을 찍는 시기가 되면 의정부고와 별 연관이 없더라도 그들의 졸업사진을 기다리곤 합니다. 생각비행도 몇 년 전 그들의 소소하지만 센스 있는 졸업사진에 감탄하며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거창한 것만이 문화인가? : https://ideas0419.com/488

 

출처 - 디스패치


그런데 올해는 의정부고의 졸업사진이 안 좋은 쪽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올해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했던 밈 중 하나인 가나의 상조회사 직원들, 이른바 '관짝소년단'을 모방한 졸업사진 때문입니다. (얼마 뒤엔 충청남도 공주시 소재 공주고등학교 학생들도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한 것으로 알려졌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패러디가 나온 관짝소년단 사진이 왜 문제일까 싶으시겠지만, 논란의 핵심은 학생 5명이 흑인을 표현하기 위해 얼굴을 검게 칠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명백한 인종차별이다'라는 의견과 흑인을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으니 '단순한 패러디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며 큰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관짝소년단과 같은 나라 사람인 방송인 샘 오취리가 자신의 SNS에 의정부고 학생들의 흑인 분장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자 이 졸업사진은 더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출처 - 인스타그램


관짝소년단 흑인 분장을 한 의정부고 졸업사진에 대해 샘 오취리는 흑인들 입장에선 매우 불쾌한 행동이라고 썼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의 SNS에 "흑인 피부색이 검어서 검게 칠한 것뿐인데 별 게 다 불편하다", "다른 나라 갔으면 공장에서 돈이나 벌었을 놈이 한국 와서 좀 뜨더니 훈계질이다" 등등 확연히 인종차별적인 언어로 댓글을 달며 비난했습니다. 거기에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올리며 학생들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게 한 점, 과거 방송에서 맥락은 좀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동양인 비하 행위를 연상케 하는 눈찢기를 했다는 사실도 언급됐습니다. 결국 샘 오취리는 하루 만에 "학생들을 비하하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 제 의견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선을 넘었고 학생들의 허락 없이 사진을 올려서 죄송하다. 학생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 그 부분에서 잘못했다"라고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다른 인종이 흑인 분장을 하는 '블랙페이스'는 역사적 맥락이 있는 분명한 인종차별 행위입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역시 어렸을 적 한 행사에서 흑인 분장을 한 사실이 밝혀져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기도 했죠. 여러 인종이 얽혀 사는 다민족 국가에서 다른 인종을 흉내 내는 행위는 무례하거나 인종차별적인 행위입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문제는 인종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는 우리나라입니다. 40~50대 정도 되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1980년대에 '시커먼스'라는 코미디 코너가 있었습니다. 코미디언 박미선의 남편으로 유명한 이봉원과 부채도사로 유명한 장두석 두 코미디언이 진행하는 코너였는데요, 힙합 같은 최신 음악을 소개하며 웃음을 주었습니다. 당시 이 코너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큰 문제가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시커먼스'라는 이름처럼 흑인 분장을 하고 흑인 흉내를 우스꽝스럽게 내는 것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코너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와서 보면 변명할 여지가 없는 또 다른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였던 겁니다. 한창 인기를 끌던 시커먼스가 갑자기 폐지된 까닭은 88 서울올림픽 때문이었습니다. 외국인 손님이 많이 오는데 인종차별적 코미디가 방송을 타선 곤란하다는 의식이 그때도 분명히 있었다는 얘깁니다.

 

출처 - SBNNEWS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컸으나 인종 다양성에 대한 인권 의식이 부족했습니다. 문제의식이 있는 이가 있었다곤 해도 소수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커먼스 코너를 그저 재밌는 코미디로 받아들였죠. 국민 대부분이 해외여행조차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외국인을 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핑계라도 댈 수 있는 과거의 일입니다. 최근 일어난 의정부고 졸업사진 논란처럼 인종차별적인 일에 대해 모른 척 넘어가는 건 문제가 있겠지요.


출처 - 일간스포츠


샘 오취리가 동양인을 비하하는 눈찢기를 했던 행동은 분명 잘못입니다. 하지만 그 문제는 그 문제대로 비판할 일이지 그랬기 때문에 너도 인종차별을 당해 마땅하다는 식의 대응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뿐입니다. 의정부고 졸업사진에 드러난 인종차별에 문제를 제기한 이에게 더욱 선명한 인종차별의 언어로 상처를 주고 결국 사과까지 하게 만드는 걸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K팝, K드라마, K푸드에 감탄하고 탄복할 때는 한국인인 것처럼 좋아하다가 한국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비판하면 한국에서 나가라, 니네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한 주제에, 왜 한국을 혐오하느냐는 식으로 앙갚음하는 선별적 시선은 우리의 부족한 모습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완벽한 문화도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비판을 받더라도 나머지 훌륭한 문화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죠.


출처 - SBS


이제 막 인종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선생이든, 학생이든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확대 과정에서 성장의 진통을 겪게 마련이라고 봅니다. 이번 관짝소년단 논란처럼 인종차별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시행착오가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비단 인종차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2020년 초 국회에서 '절름발이 총리'라는 표현이 논란이 된 것처럼 정치인의 장애인 비하 발언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죠. '절름발이'를 비롯해 온라인상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흑형' 같은 표현들이 국가인권위원회가 규정한 혐오 표현임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출처 - SBS


우리는 특히 '어디서 감히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비판을 한단 말이냐',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냐'라는 식으로 마치 한국에 인종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기는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고 봅니다. '의도가 없었다, 농담일 뿐이다'라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약한 집단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태도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도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상사나 선배 등 윗사람이 하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에 불쾌한 마음을 삭여야 했던 경험은 누구든 한 번쯤 있을 테니까요. 의정부고 졸업사진 논란을 보면서 6년 전 생각비행 블로그에 썼던 〈거창한 것만이 문화인가?〉라는 글을 들여다보니 삽입한 졸업사진 가운데 흑인 분장을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블랙페이스'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고등학생들의 귀여운 일탈과 재미라는 측면만 부각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출처 - 세계일보

 

2019년 5월 2일 여성가족부가 '2018년 다문화가족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다문화가족 자녀(만 9∼24세) 가운데 지난 1년간 학교폭력을 경험한 비율이 8.2%로 2015년(5.0%)에 비해 3.2%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만 12∼17세의 경우 학교폭력 경험률이 2015년 5.9%에서 2018년 12.7%로 증가세가 더 두드러졌습니다.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점차 나아지는 와중에도 우리 안에 존재하는 편견을 고쳐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문화 감수성과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일은 우리 앞에 주어진 사회의 당면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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