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9일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법원행정처장에게 아동 성착취 사이트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에게 1년 6개월의 낮은 형량을 선고한 것이 부적절하지 않느냐는 질의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법원 처벌이 약했다는 지적에 많은 비판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법원은 알고서도 손정우에게 면죄부를 쥐여준 셈입니다.
출처 - 투데이코리아
손정우는 재판에서 4000여 명에게 성착취물을 7293차례나 판매한 혐의가 인정되었으나 이 모든 행위가 단 한 건의 죄로 간주되어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되었죠. 국민의 법감정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판결이어서 국민이 분노했지만 미국 송환조차 법원의 불허 결정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동 성범죄에 엄격한 미국에서라도 처벌받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우리나라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을 이미 내린 상황이라, 미국 송환 결정을 하면 제 얼굴에 침뱉기라고 생각했는지 결국 불허하고 말았습니다. 인도거절사유에 해당하는 바가 없었는데도 판사 재량에 따라 이뤄진 불허 결정이어서 논란이 큽니다.
출처 - 청와대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불허 결정을 내린 강영수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를 격하게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대법관 후보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원이 올라온 뒤 삽시간에 50만 명이 지지를 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대법관 후보라는 사람이 시대에 뒤떨어진 성인지 감수성과 아동 인권에 대한 기본 관념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서 체면치레만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시민들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미국 송환 불허의 여파는 국제적으로도 적지 않았습니다. 국제적인 NGO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7월 15일 "대한민국은 아동에게 정의로운 나라인가? 세계 최대의 아동성착취 범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하고자 미국 법무부는 강제 송환을 요구하였지만 법원은 사법주권행사의 관점에서 이를 불허하였다. 사법부가 공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정의의 가치는 아동인권 수호가 아니라 사법권한의 방어에 무게를 두었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국가는 아동에게 특별한 보호를 제공하여야 하는 책무를 지닌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세계 최대의 아동성착취 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관용적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이러한 결정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엄중히 촉구한다"라는 논평을 내기도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미국 법무부와 연방검찰 또한 미국 송환 불허 결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실망의 뜻을 밝혔습니다. 미국 법무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아동 성 착취 범죄자 중 한 명에 대한 법원의 인도 거부에 실망했다”고 밝혔습니다. 외신들도 일제히 한국 법원의 송환 불허 결정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보였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손정우의 아동 성착취물을 받은 일부 미국인들은 이미 징역 5~15년을 선고받았는데 정작 운영자는 1년 반 만에 풀려났다고 강조했습니다. BBC 한국 특파원은 한국에서 달걀 18개를 훔친 40대 남성이 받은 형인 징역 1년 6개월이 손정우의 형량과 똑같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출처 - Laura Bicker 트위터 / 뉴시스
이 때문에 일정 기준에 부합하면 판사의 재량으로 형량을 감해주게 되어 있는 작량감경권을 없애거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셉니다. 손정우의 경우 반성문과 구속 중 결혼해 부양가족이 있다는 점이 형량을 감해주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작량감경 없이 제대로 된 형량이 내려졌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징역 10년형까지는 받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죠. 이것도 한참 부족합니다만 적어도 지금 손정우가 받은 1년 6개월이라는 어이없는 형량은 아니었을 거라는 얘깁니다.
출처 – 연합뉴스
최근 진행 중인 n번방 성착취 범죄에 대한 재판 과정도 손정우 건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시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0일 아동 성착취물 1300여 개를 제작 판매한 박씨에게 젊고 형사 처벌 전력이 없고 반성하고 있으며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젊으면 젊다고 늙으면 늙었다고 봐주면서 솜방망이 처벌을 하니 "디지털 성착취는 솜방망이 판결을 먹고 자란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요?
출처 - 경향신문
《경향신문》이 성폭력 범죄 재판을 담당해본 현직 판사들과 심층 인터뷰를 한 기사는 판사들이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무지하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요즘 성착취물이 예전처럼 비디오 같은 물리 매체로 퍼지는 것도 아니고 톡 비밀방을 통해 크라우에 올려져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지고 이를 암호화폐로 구매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이 나온다는 겁니다. 여기에 더해 뉴스를 보지 않고 사건 기록만 보다 보니 사회적 기준과 멀어지게 되고 가해자나 피해자를 활자로만 인식하다 보니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피해 심각성 이해가 떨어지는 탓도 큽니다. 가해자가 얼마나 파렴치한지, 피해자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들어볼 기회가 없이 재판이 끝나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판사가 성인지 감수성을 갖추지 않았다면 재판 과정에서 2차 가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출처 - SBS
무엇보다 유사 판례에 대한 집착이 국민적 법감정과 동떨어진 판결을 하게 한다고 합니다. n번방 사태 이후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진행한 판사 대상 설문조사 결과 아동 성착취물 제작 범죄의 기본 영역으로 징역 3년이 적절하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는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판사들은 일반적인 가중요소를 감안하면 징역 5년이 적절하다고 했는데, 원래 이런 범죄는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 솜방망이 처벌을 해오다 보니 갑자기 판례에서 한참 벗어난 중형을 자기 혼자 선고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판사들은 여태 판결하던 대로 한 건데 '국민들이 갑자기 왜 이래' 하고 반문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한다는 겁니다. 이를 보면 솜방망이 처벌이 n번방 사태를 초래했으며 사법부가 공범이라는 시민들의 구호가 허투루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법부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등을 통해 아동 성착취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형량을 더 높이는 등 여러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하는데요, 과연 납득할 만한 결과가 나올지 의심스럽습니다. 지난해 성접대 의혹 영상의 인물임을 확인하고도 무죄를 선고했던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만 떠올려봐도 지금의 사법 체계 안에서는 대안이 없는 일로 보이니까요.
출처 - 한국일보
지난 7월 27일 손정우는 서대문 경찰서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습니다. 미국 송환을 막으려고 아버지가 고소한 혐의인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을 수사하기 위해서였죠. 법무부와 경찰은 우리나라에서도 엄한 처벌을 내릴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손정우는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범죄에 대한 형량은 최대 징역 5년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정도입니다. 그가 미국으로 송환됐다면 20년형 감이었죠. 아동 성착취 혐의까지 미국에서 일찌감치 시작했다면 징역 1000년은 우습게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선 범죄수익 관련 사건으로는 아무리 많아 봐야 3년 이하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자칫 집행유예가 될지도 모릅니다. 성착취물 판매 수익이 수십억 원이 넘는다는 얘기가 있는데 3000만 원도 안 되는 벌금이라면 그야말로 껌값 아닌가요?
출처 - MBC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PD수첩〉은 지난 4일 손정우가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갑작스럽게 의문의 여성과 혼인신고를 했고, 이후 2심에서 1심에 비해 6개월이나 감형된 형량으로 최종 선고받은 점을 취재하여 보도했습니다. 부양가족의 존재가 감형의 요인이 된다는 점을 손정우가 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해 제작진은 손정우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는 여러 명의 지인을 직접 만나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손정우의 한 지인은 "(손씨의) 결혼에 대해 알지 못했다"며 "손씨가 (여자친구에게 범죄사실을) 속이고 만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지인은 "결혼은 혼자 할 수 없지 않냐. 감방 가기 전에 아내가 있고 아기가 있었더라면 과시하는 걸 좋아해서(친구들에게) 한 번은 보여줬을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지인은 "손씨의 아버지가 국제결혼 중개업을 할 줄 아니까 외국인이라고 혼인신고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출처 - MBC
한편 손정우의 아버지는 〈PD수첩〉 취재진이 "해외 여성을 아들인 손씨에게 소개한 거냐"라고 질문하자 "그걸(국제결혼 중개업) 할 때가 몇 년 전인데 옛날이야기를 지금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그쪽 부모님이 반대해서 혼인 무효 소송을 해 (결혼생활이) 끝났다"라고 답했습니다. 손정우의 지인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보자면 제대로 된 결혼 관계도 아니었는데, 법원은 이를 근거로 형량을 감해준 꼴입니다.
출처 - MBC
〈PD수첩〉은 손정우가 어렸을 때 야동 사이트를 만들고는 친구들한테 자기 홈페이지라고 자랑했다는 지인의 말과 중학교 때 자퇴를 한 뒤 연락이 안 되다가 20대 초판에 갑자기 "조만간 아우디 r8끌고 올테니 기다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지인의 말도 소개했습니다. 이를 보면 손정우가 성착취 영상물을 판매하여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건은 예정된 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PD수첩은〉 방송을 끝맺으며 어린이와 청소년은 디지털 성범죄에 치명적일 수 있으며 IT 강국이 성범죄에는 무방비하다는 오명을 벗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손정우 사건이 또 하나의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서는 안 되는데,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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