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나지: 비밀의 계단〉이라는 스페인 공포영화를 보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시작 부분에 아이들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아이들이 우리와 똑같은 놀이를 한다는 게 놀랍습니다. 영화에서 술래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말 대신 “Un, dos, tres, Toca la pared(하나, 둘, 셋, 벽을 만져라)"라고 말하는 것만 다를 뿐, 술래가 돌아볼 때 움직이면 안 된다는 놀이 방식은 완전히 똑같습니다. 스페인과 우리나라 사이에 놀이문화가 직접 교류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처럼 똑같은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점이 참 신기합니다.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이라는 영화의 제작자 중 한 명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기예르모 델 토로'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제작자는 '마르 타르가로나'라는 스페인 여성 감독입니다. 이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비극인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 지난 2018년에 넷플릭스에 공개했습니다. 이 영화가 바로 생각비행이 펴낸 책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와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작품,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입니다.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사울의 아들〉 등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과 강제수용소에서 참혹하게 죽어간 피해자들을 다룬 홀로코스트 영화는 꽤 존재합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부터 예술영화까지 다종다양하죠. 홀로코스트를 다룬 그래픽 노블 중에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쥐》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작품 중에서 〈마우터하우센의 사진사〉라는 영화가 독특한 이유는 실화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이 아닌 스페인 사람들의 홀로코스트를 조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
영화 제목에 나오는 '마우트하우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건설한 강제수용소의 이름입니다. 생각비행이 펴낸 책은 '마우트하우젠'으로 번역되어 있죠. 마우트하우젠은 오스트리아에서 화강암을 채석할 수 있는 지역의 지명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나치는 강제수용소를 건설하고 그 이름을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로 명명했습니다. (이후 영화 제목을 제외하고는 '마우트하우젠'으로 통일하여 쓰겠습니다.) 이곳은 이른바 '절멸수용소'였습니다. 1941년 나치 독일은 25곳의 수용소를 세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했습니다. 그중에 '카테고리 III'는 나치의 입장에서 볼 때 '개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수감자'들을 가두는 곳이었습니다. 절멸수용소에 갇힌 수감자들은 살아서 나갈 희망 없이 문자 그대로 노역하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죠. 참고로 다른 카테고리에 속하는 수용소도 알려드리겠습니다. 나치의 입장에서 '부담되지만 재교육 가능성이 있는 수감자'들을 수용했던 카테고리 II 수용소로는 부헨발트 강제수용소가 대표적입니다. 나치의 입장에서 '개선 가능성이 있는 수감자'를 수용한 카테고리 I 수용소로는 그 유명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대표적입니다.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가 얼마나 끔찍한 곳이었을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겠죠.
출처 -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
영화와 책의 주인공인 '프랑시스코 부아'는 1941년 마우트하우젠 수용소로 이송된 후 연합군에 의해 해방될 때까지 신원확인국의 사진사로 일했습니다. 수용소에 수감자가 들어오면 머그샷처럼 수감번호를 들고 신원 확인을 위한 사진을 찍게 되는데, 프랑시스코 부아가 바로 이 일을 담당했습니다. 원만한 사교적 성품의 소유자였던 그는 강제수용소 안에서 나치 장교들의 눈에 들었습니다. 남다른 사진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점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신원확인국에서 일하는 도중 그는 나치의 충격적인 만행을 목격하게 됩니다. 가혹한 노역에 시달리다 죽은 사람이나 카포(수감자를 관리하는 수감자, 나치의 앞잡이)나 나치 친위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마치 수용소를 탈출하다가 죽은 것으로 위장하거나 사고사, 자살 등으로 조작한 사진을 발견한 겁니다. 나치는 수용소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 사진술을 이용하여 교묘히 위장하고 있었습니다.
출처 -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각종 일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에 동원되어야 했던 프랑시스코 부아는 진실을 은폐하는 사진들의 원본 필름을 외부로 반출하겠다고 결심합니다. 나치의 만행을 세계에 폭로하기 위해서였죠. 그를 중심으로 수감자들은 2만 장에 달하는 필름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 나치의 감시를 피해 몰래 수용소 밖으로 내보냅니다. 강제수용소가 해방된 이후 프랑시스코 부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 재판인 뉘른베르크 공판에 증인으로 나서서 빼돌린 필름을 증거로 나치의 만행을 만천하에 고발합니다. 영화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는 이 장면을 담은 기록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끝이 납니다. 손가락을 들어 누군가를 지목하는 사람이 바로 프랑시스코 부아입니다.
출처 -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인 쉰들러가 자신의 공장을 통해 유대인들의 탈출을 도왔다면, 프랑시스코 부아는 사진사로 일하던 보직을 이용해 나치의 만행을 담은 원본 필름들을 빼돌렸습니다. 그의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은 원작인 그래픽 노블과 넷플릭스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출처 -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 생각비행
책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영화 이후의 이야기까지 담고 있어 무척 흥미롭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넷플릭스 영화 속에 나오는 프랑시스코 부아는 영웅적인 주인공처럼 부각됩니다. 용감하고 선한 마음을 품은 주인공으로서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나치의 만행을 폭로함으로써 정의를 이룬다는 클리셰처럼 말이죠. 하지만 책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주인공의 영웅적인 면모를 드러내려 하기보다 더 큰 그림을 보여주려 합니다. 역사적으로 잘 다뤄지지 않았던 스페인 홀로코스트의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위키백과
그 발단은 바로 스페인 내전이었습니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 7월 17일 프랑코의 쿠데타로 시작되어 1939년 4월 1일 공화파 정부가 마드리드에서 항복해 프랑코의 승리로 끝난 전쟁입니다. 반란군인 우파가 이끄는 프랑코 측과 좌파 인민전선 정부 측 사이에 발발한 내전으로, 우파와 프랑코의 독재로 끝이 나죠. 스페인 내전은 시기상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국제적인 대리전 성격을 띠기도 했습니다. 내전 당시 파시스트 진영인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프랑코를 지원했고, 소련과 각국의 의용군은 공화파인 인민전선을 지원했습니다.
Francisco Franco Bahamonde / 출처 - 위키미디어
종군기자의 대부인 로버트 카파, 《어린 왕자》의 작가인 생텍쥐페리, 《노인과 바다》의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1984》의 작가인 조지 오웰 등 수많은 지식인이 인민전선 정부를 위해 참전했습니다. 이들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험을 통해 대표작을 내놓기도 합니다. 그중에 압권은 피카소의 대표작인 〈게르니카〉입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 내전에서 벌어진 학살을 표현하고 있죠. 수많은 의용군의 참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내전의 결과는 나치 독일과 손잡은 프랑코 독재정권의 성립이었습니다. 당시 지식인들이 느꼈던 절망감을 알베르 카뮈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출처 - 위키미디어 공용
"정의도 패배할 수 있고, 무력이 정신을 굴복시킬 수 있으며, 용기를 내도 용기에 대한 급부가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바로 스페인에서." _알베르 카뮈
그 절망의 한가운데에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의 주인공인 프랑시스코 부아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진 일을 도왔고 신문기자로서 사진을 찍었던 그는, 자신의 고향인 카탈루냐를 위해 인민전선 쪽에서 참전했다가 스페인 내전이 프랑코의 승리로 귀결되자 국적을 상실하고 프랑스로 망명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에 제대로 정착할 수 없었던 스페인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나치에 대항하다 붙잡혀 결국에는 마우트하우젠 수용소로 이송되게 됩니다. 프랑시스코 부아가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로 가게 된 이유, 수용소 내 신원확인국에서 일하게 된 경위, 사진사로서 나치의 만행이 담긴 필름을 빼돌린 일 등 이 모든 것을 스페인 내전이라는 배경을 통해 이해하지 않으면 실존 인물인데도 작위적인 설정으로 만들어낸 존재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프랑시스코 부아는 스페인 내전을 촬영한 종군사진기자 로버트 카파처럼 생각하며 수용소에서 사진을 찍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 Magnum Photos / © Robert Capa ©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스페인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기교가 필요 없다. 카메라를 배치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스페인 자체가 사진이고, 당신은 그저 찍기만 하면 된다. 진실이야말로 최선의 사진이며 최대의 프로파간다이다." _로버트 카파
좌파 인민전선에 참여했던 프랑시스코 부아는 공산당원으로서 신념이 매우 투철했습니다. 나치의 필름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그의 신념과 다른 당원 동지들의 협력은 아주 주요하게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영화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영화만 보신 분은 만듦새가 성글다고기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스페인 내전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보면 여러 장면이 뜬금없어 보이고 산만하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 반면 책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그래픽 노블의 특성상 사료와 해설, 풍부한 역주를 통해 스페인 홀로코스트를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러므로 책과 영화를 함께 본다면 스페인 홀로코스트의 실제 역사를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원작 그래픽 노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백미는 수용소 안에서 일어난 영웅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 해방 이후의 내용입니다. 영화는 프랑시스코 부아의 영웅적인 면모를 기록 영화의 한 장면을 써서 부각하며 끝맺고 있지만, 사실 뉘른베르크 재판 과정에 증인으로 참석한 그가 느낀 절망감은 책을 통해서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스페인 내전은 보면 볼수록 한국전쟁을 생각나게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중심으로 놓고 인트로와 아웃트로로 수미쌍관을 이룬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한 국가의 내전이었지만 수많은 국가가 참전하여 국제 대리전 성격이 강했던 상황, 국민의 염원과 달리 외세가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않았거나 국민들의 뜻을 무시한 것도 유사합니다. 스페인을 독재정권에서 해방하기를 거부한 연합군, 통일 정부로서 선거를 치르기를 앙망했던 국민들의 뜻을 무시하고 남한 단독 선거로 정부가 수립되었던 모습도 겹쳐 보입니다. 두 내전의 결과가 결국 독재정권으로 귀결되었다는 점까지 비슷하죠. 스페인에는 프랑코, 북한에는 김일성, 남한에는 이승만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그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무국적자 신분의 프랑시스코 부아의 처지는, 해방이 됐건만 일본은 물론 남북한 어디서도 제대로 된 환영을 받지 못했던 조선적(朝鮮籍) 사람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출처 -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서두에 언급했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처럼 별다른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스페인과 한국의 역사에 이런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영화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를 더욱 뜻깊게 보기 위해서라도 책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를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스페인 내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영화만 보는 것은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15년 동안 갇혀 있었던 부분만 보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대사로 표현되었다시피 〈올드보이〉의 핵심은 15년 동안의 감금이 아니라 '왜 풀어줬느냐'에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시스코 부아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스페인 사람이면서 동시에 무국적자로서 어떤 나라의 환대도 기대할 수 없었던 스페인 수감자들의 절망감을 이해하는 것이 책과 영화의 핵심입니다. 그래픽 노블을 통해 스페인 내전이라는 그 배경에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무엇보다 의미 있는 독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