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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물/도서비행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 스페인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다

by 생각비행 2020. 7. 17.

오늘은 제72주년 제헌절입니다. 1948년 7월 12일, 대한민국 헌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5일 뒤인 7월 17일, 조선왕조 건국일에 맞춰 헌법이 공포되었고 이날을 우리는 제헌절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제헌절은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과 더불어 5대 국경일에 속합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제헌절 경축사를 통해 "시대변화에 발맞춰 헌법을 개정할 때가 되었"다면서 "코로나 위기를 한고비 넘기는 대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자고 했습니다. 아울러 "정치권의 이해가 아닌 오로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시대 정신을 반영한 새 국가 규범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헌법은 항구불변의 가치를 담은 약속이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국민의 요구에 부합해야 하며, 더 많은 권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출처 - 뉴시스

 

7월 17일 과거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84년 전인 오늘, 스페인 내전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정권을 잡은 공화진영에 맞서 국민진영은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소련이 공화진영을 지원한 반면 파시즘 국가였던 독일과 이탈리아는 국민진영을 지원했습니다. 이 때문에 스페인 내전은 국제전 양상으로 비화했고, 1939년 4월 1일 국민진영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내전으로 약 50만 명이 숨지고 스페인의 국토가 황폐해졌죠.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 장군은 총통의 지위를 꿰차고 공화파를 학살했습니다. 그러고는 1975년 사망할 때까지 파시즘 독재정치를 이어갔습니다.

 

출처 - Magnum Photos / © Robert Capa ©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종군사진기자 로버트 카파는 스페인 내전 당시 〈어느 인민전선(공화군) 병사의 죽음〉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프랑코의 파시스트 세력에 대항해 싸우다 머리에 총을 맞은 채 쓰러지는 공화파 병사의 모습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포착한 덕분에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 사진으로 로버트 카파는 세계적인 유명세를 누렸지만 한편으로 사진을 조작했다는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출처 -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 © Amical de Mauthausen

출처 -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 © Benito Bermejo

 

이와 달리 자신이 찍지 않은 사진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이 있습니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의 주인공 '프랑시스코 부아'입니다. 오스트리아에 있던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친위대나 카포(수감자를 관리하는 수감자, 나치의 앞잡이)에 의해 자행된 '비자연사 죽음'을 속이기 위해 나치는 사진을 조작했습니다. 이런 사진의 존재를 알게 된 프랑시스코 부아는 조작된 일련의 사진 원본 필름을 빼돌렸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하여 나치 지도자들이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을 온전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아울러 그의 노력을 통해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스페인 홀로코스트가 부각되었죠.

 

 

오늘은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를 번역하신 문박엘리 님과 인터뷰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시스코 부아'와 '스페인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Q 안녕하세요? 생각비행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들께 간략히 소개 부탁합니다.

A 안녕하세요.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를 번역한 문박엘리입니다. 서울에서 대학교 졸업 후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했습니다. 귀국 후 일반회사와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했고요, 지구와 인간과 우주 만물의 연계, 그리고 역사 등 다방면에 관심이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 제3공화국의 역사와 그 유산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스페인 홀로코스트를 다룬 책으로 프랑스 제3공화국 말기의 유럽 정세와 오늘날에 이르는 영향까지 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Q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그래픽 노블'입니다. 장르의 특성과 함께 출판계에서 그래픽 노블이 차지하는 위상을 소개해주시죠.

A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은 대개 문학적 구성과 특성을 지닌 작가주의 만화를 가리킵니다. 영어의 '코믹스'와 일본의 '망가'와 한국의 '만화'보다 무게감과 진지함이 부여된 듯한 이 용어는 1960년대 이후 널리 쓰이게 됩니다.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탄탄한 스토리와 구성으로 전개되는 만화 부분과 그 만화의 근거가 되는 역사적 인물과 사실을 설명하는 사료 부분으로 이루어져 전형적인 그래픽 노블에 속합니다. 


프랑스와 벨기에를 중심으로 프랑스어권 만화는 오랫동안 유럽 만화 시장을 지배해왔는데요, 특히 그래픽 노블 영역은 1960년대 이후 크게 번창했습니다. 2017년 통계에 따르면 그래픽 노블을 포함한 프랑스 만화 업계는 최근 10년 동안 매출이 20% 증가했으며 프랑스 출판 시장에서 일반 문학과 청소년물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만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로 인정받았고 만화 전시회가 점차 대중적인 인기와 전문가의 호평을 받으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빠트릴 수 없는 축제가 1974년 이래 매년 프랑스 앙굴렘에서 개최되는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Festival international de la bande dessinée d'Angoulême)'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만화 페스티벌 중 하나로 매년 1월 말에 열리는데요, 이 축제에서는 프랑스는 물론 세계 각국의 만화와 관련 영상물이 전시되고, 다양한 강연회와 상영회, 시상식 등이 열립니다. 이 축제를 찾아오는 전 세계 만화 애호인들과 관련 종사자들과 기자들의 수가 수십만 명이 넘습니다.

 


 

Q 넷플릭스에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책과 영화는 어떻게 다른지요?

A 영화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는 스페인 여성 영화감독 마르 타르가로나(Mar Targarona)가 연출한 작품으로, 2018년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되었습니다. 프랑시스코 부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의 참상과 나치의 만행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특히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의 프란츠 치라이스 소장이 아들의 생일 파티에서 시중을 들던 포로들을 죽이는 장면은 보는 이를 경악하게 합니다. 실제로 치라이스는 아들 생일 파티에서 40여 명의 포로를 살해합니다. 프랑시스코가 빼돌린 실제 사진들이 마지막에 나오면서 끝나는 영화는 여러 사건을 두서없이 나열한 듯해 전체적으로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스페인 시나리오 작가인 살바 루비오와 스페인 만화가 페드로 콜롬보가 합작하여 완성한 작품입니다. 책이 영화보다 한 해 앞서 2017년에 출간되었죠.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발매된 이 책은 만화계 인사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만화의 경우, 실존 인물인 프랑시스코 부아를 중심으로 수용소 사진 빼돌리기와 전쟁 후 그 사진의 용도를 드러내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영화보다 한층 탄탄한 플롯으로 전개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주인공의 내레이션은 독자가 주인공의 심리에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한편 스토리를 따라가기에 적절한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영화보다는 책이 재미와 감동을 준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Q 유대인 홀로코스트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스페인 홀로코스트를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먼저 이 부분을 말씀해주시고, 이후에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스페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려주시죠.

A 스페인 홀로코스트는 종전 후 일반 대중에게 대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전후 사학자들의 우선 관심사도 되지 못했습니다. 스페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직접 참전국이 아니었기에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수많은 스페인 포로가 희생되었으리라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죠.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인 내전 후 강력한 독재체재를 구축하고 1975년 종신 때까지 스페인의 총통을 지낸 프랑코 장군은 나치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스페인 포로들을 자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페인 홀로코스트는 사실상 프랑코 정권과 나치의 합작물이고 또 그런 의미에서 스페인 홀로코스트의 기원은 1936년 7월 17일(84년 전 오늘이군요!) 프랑코 장군의 쿠데타로 발발한 스페인 내전이라고 봅니다.

왕당파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지원뿐만 아니라 히틀러와 무솔리니 등 파시스트 세력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파에 맞서 싸운 이들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 등을 비롯한 공화파 사람들이었습니다. 1939년 4월 스페인 내전에서 패한 공화파의 상당수가 망명길에 오르는데, 당시 프랑스로 망명한 이들만 50만 명에 달합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프랑스 군대에 입대하거나 레지스탕스와 연대하는 방식으로 나치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때 독일군의 포로가 된 스페인 사람들은 대부분 오스트리아의 마우트하우젠 나치수용소로 이송되었습니다.

 

출처 -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 © Amical de Mauthausen

 

이 수용소는 책에 나오듯 노역으로 인한 절멸수용소로 분류된 지옥이었습니다. 서류상 입증된 수만 거론하자면 4816명의 스페인 포로가 이곳에서 살해되었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스페인 공화파 포로들은 1945년 해방 이후 대부분 프랑스를 비롯하여 제3국으로 제2의 망명을 해야만 했고, 그들 중 대부분이 끝내 스페인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생을 마쳤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내용처럼 두 번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족을 만나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 프랑시스코 부아의 경우는 스페인 포로 대다수의 여생을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주인공인 '프랑시스코 부아'는 어떤 사람인가요?

A 1920년생인 프랑스시코 부아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열렬한 공화파 가족의 일원으로 자랐습니다. 청소년기에 스페인 사회주의청년연합당(JSU)의 일원이었던 그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공화파 군대에 입대하여 싸웠습니다. 패전 후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 억류되기까지 부아의 운명은 앞서 말씀드린 스페인 공화파 참전 포로들과 비슷합니다. 그는 1941년 1월 마우트하우젠 수용소로 이송된 이래 해방 때까지 신원확인국에서 사진사로 일했습니다. 

 

© Amical de Mauthausen

 

특이한 점은 부아가 수용소 내 나치의 만행을 담은 사진을 빼돌리는 데 주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용소 나치 상관들과 관계가 원만했다는 사실입니다. 나치가 사진사로서 부아의 실력을 인정했음은 기록에도 있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밝고 사교적이었던 그의 성품이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종전 후 프랑스 공산당 기관지 등에서 사진기자로 활약했던 그는 1951년 7월 파리에서 31년이 채 안 되는 생애를 마칩니다. 그의 사후 현실화된 스페인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스페인 홀로코스트 관련 참고자료들이 잇달아 발표되고 관련국(프랑스, 독일 등)에서 생존자와 유가족 대우에 관한 후속 조치들이 시행되었습니다. 2017년 프랑스 정부는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 시장이 주재하는 안장식 행사와 함께 프랑스시코 부아의 유해를 파리 시내의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안치했습니다. 올해는 프랑시스코 부아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강제수용소에서 얻은 질병으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넋을 기리고 생전에 파시즘에 맞서 맹활약한 젊은 영혼을 기억하는 행사가 스페인과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해봅니다. 

 

Q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 다양한 인물이 있었지만, 신원확인국 책임자인 ‘파울 릭켄’이라는 인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 실존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는데요, 그는 어떤 일을 했고 프랑시스코 부아와 어떤 관계였나요? 

 

© Amical de Mauthausen

 

A 파울 릭켄은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의 신원확인국 책임자였습니다. 신원확인국에서 사진 현상을 담당했던 프랑시스코 부아의 직속 상관인 나치였죠. 릭켄은 부아의 업무능력을 높이 샀습니다. 그가 자신의 '죽음의 미학'을 부아에게 강변하는 것은 끔찍하긴 하지만 릭켄의 정신세계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릭켄이 촬영했던 수용소 생활과 포로들의 사진들은 훗날 부아가 수용소 밖으로 빼돌려 뉘른베르크 공판에서 나치 전범들의 행적을 증언하는 증거자료로 제출됩니다. 그 사진들과 부아의 증언을 통해 수용소 내 만행이 드러났고 관련 나치 전범들의 죄가 입증되었습니다.

 

 

Q 책을 번역하면서 특히 눈에 들어온 인물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지요.

 A 만화에는 등장하지 않고 책의 사료 부분에 사진 한 장으로 소개된 인물인 카를로스 그레이키(Carlos Greykey)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피부색과 복장이 일반적인 수용소 포로들과 달라 의아하게 생각하다 곧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카를로스는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의 유일한 흑인 포로였습니다. 수용소 나치 친위대원들은 그에게 호텔 웨이터 복장을 입히고 식사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수용소에 힘러와 같은 나치 고관이 방문하면 카를로스는 '식인종 아비의 자식이지만 스페인에 살던 흑인'으로 소개되기도 했어요. 굴욕적이었겠지만 견뎌내야 했습니다. 살인적인 채석장 노역으로 마우트하우젠 수용소 포로들의 평균 생존 기간이 6개월에서 1년을 넘지 못했는데, 카를로스는 식사 시중을 하면서 수년을 버틴 끝에 살아서 해방을 맞이했거든요.

 

1941년 수용소 입소 당시 나치 친위대원은 수건으로 그의 피부를 문질러댔다고 합니다. 흑인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던 그들은 카를로스가 검댕이를 덮어썼다고 생각한 거죠. 그가 흑인임을 확인한 나치는 카를로스를 처형하려고 했습니다. 1925년 출간된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에 의하면 유대인만이 아니라 흑인도 열등한 존재로서 아리아인 혈통을 오염시키는 위험한 인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카를로스가 나치 장교의 질문에 독일어로 대답했고, 아마도 그런 이유로 즉각 처형을 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카를로스는 스페인어와 독일어 외에도 카탈루냐어, 영어, 프랑스어를 구사했습니다. 191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그는 의대생으로 재학 중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공화파로 참전했고 패전 후 프랑스로 망명했습니다. 대부분의 스페인 공화파 참전용사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망명 후에도 반파시스트 전쟁을 프랑스 편에서 이어가다가 결국 독일 나치에게 체포되어 마우트하우젠 수용소로 이송되어 사진 속의 모습으로 나치 친위대원들의 식사 시중을 들게 된 것이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프랑코 총통 치하인 스페인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는 프랑스에 두 번째 망명을 했고 몇 년 후 프랑스에 귀화해 결혼을 하고 자녀도 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방 후 초기 카를로스는 수용소 생존자들의 정기 회합에 참석했으나 이후 발길을 끊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 그의 자취는 상세하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딸에 의하면 카를로스는 카바레에서 댄서로 일하다가 나중에는 전기공으로 생계를 꾸렸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1977년부터 1982년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적도기니공화국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카를로스가 만년에 스페인 민주화가 아니라 적도기니공화국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했다는 기록은 그의 부모님이 스페인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페르난도 포(Fernando Pó)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페르난도 포는 196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적도기니공화국에 속한 지역입니다. 1968년부터 1979년까지 대통령직을 역임한 초대 대통령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Francisco Macías Nguema)의 독재정치는 조카인 테오도로 오비앙(Teodoro Obiang)의 쿠데타로 막을 내리고, 2대 대통령이 된 테오도로 오비앙은 1979년 이래 현재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즉 적도기니공화국은 독립 이래 현재까지 독재정권 치하에서 민주주의가 파괴된 채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책의 주인공도 아니고 심지어 만화에 등장하지도 않는 인물인 카를로스 그레이키에 대한 소개를 길게 한 까닭은, 엄청난 영광도 명예도 동반하지 않은 삶의 여정을 처음에는 연민의 감정으로 띄엄띄엄 추적하는 와중에 깊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피부색과 출신의 불리함과 아마도 풍족하지 못했을 생계 방편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회피하지 않았고, 잔혹한 차별의 세상과 투쟁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가치에 따른 투신을 죽을 때까지 거듭했습니다. 그는 험난하게 굴곡진 세월을 선의로 뚜벅뚜벅 살아낸 영웅이었습니다.     

 

 

Q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3분의 2가 그래픽 노블의 형식으로 된 만화이고, 3분의 1은 사료와 해설로 되어 있습니다.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역사적 상황과 실재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데요, 유심히 보신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Amical de Mauthausen


A 개인적으로 마리-클로드 바이앙-쿠튀리에(Marie-Claude Vaillant-Couturier)가 나오는 부분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역사적으로는 1946년 1월 28일 뉘른베르크 공판에서 그녀가 증언을 마친 뒤 프랑시스코 부아가 증언을 했는데요, 이 책에서 그 상황을 어떻게 그려냈는지를 보고 그 세밀함에 감탄했습니다. 또한 뉘른베르크 공판에서 증언을 마치고 난 그녀가 부아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작가에 의한 상상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공산당을 넘어 초당적인 명성과 존경을 받은 여성 정치인의 인품과 매력이 잘 드러난 부분이라 자꾸 보게 됩니다.

 

 

Q 짧은 인터뷰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를 꼭 읽어야 하는 이유를 독자들께 간략히 말씀해주시죠.   


 A 7월 17일 오늘은 한국의 제헌절이자 스페인 내전 발발일입니다. 스페인 내전 때 파시즘에 맞서 싸운 이들은 패전 후 스페인 밖에서도 파시즘과의 전쟁을 이어갔고, 그 와중에 수많은 이들이 스페인 홀로코스트로 희생되었습니다. 비단 스페인과 유럽 역사에서만이 아니라 파시즘의 위협은 오늘날에도 지구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무지가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게 만듭니다.

 

 

스페인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이 지구상에서 재발하지 않으려면 먼저 그것이 어떤 사건이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한국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스페인 홀로코스트의 배경과 진행에 대해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식과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식민지 통치와 동족상잔의 비극, 그리고 군부독재와 민주화 투쟁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 한국의 20세기 역사와 닮은 점이 많은 스페인 역사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무척 흥미로운 형식의 입문서가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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