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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친일부역자를 현충원에 그대로 둬도 괜찮은가?

by 생각비행 2020. 6. 9.

지난 6일 현충일을 앞두고 국립현충원에 있는 친일행위자의 묘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주목받았습니다. 군인권센터는 현충원에 현재 친일 군인 56명이 묻혀 있다면서 지난 4일 파묘와 이장을 요구했습니다. 일본제국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부역한 군인들이 현충원에 묻혀 있는 건 국가적 모욕이라는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친일인명사전》에 따라 지난 4일 발표된 친일 군인은 박정희를 비롯해 국무총리였던 김정렬, 정일권, 국방부장관이었던 신태영, 유재흥, 이종찬, 임충식 등 56명에 달합니다. 이 중 32명은 국립서울현충원에, 24명은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혀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박정희가 일본 육사 출신으로 만주군 소속 중위로 부역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죠. 국무총리였던 김정렬, 정일권 역시 일본군 대위, 만주군 대위였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방부장관이었던 이들도 마찬가집니다. 모두 일본 육사 출신에 계급도 높아 중령, 소령, 대위였습니다. 특히 임충식은 독립군을 토벌하고 다닌 만주군 간도특설대 준위였습니다. 이들의 계급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친일 부역 군인들은 일본에 끌려가 어쩔 수 없이 총알받이 군인이 된 게 아닙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본제국의 침략전쟁에 충실히 복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는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 논란에서 중심에 있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백선엽'입니다. 올해 100세가 되는 백선엽 예비역 대장은 사망할 경우 대전현충원 안장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훈처는 그가 현충원 안장 대상이고 다른 방안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백선엽은 한국전쟁 초기 전세 역전의 계기가 된 낙동간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전쟁 영웅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후 평양전투와 중공군 춘계공세 저지 등 한국전쟁 와중에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에 혁혁한 전공으로 희망을 보여준 사람임은 분명합니다. 최고 훈장인 대극무공훈장을 두 차례나 받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죠. 이렇게만 보면 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이 차고도 넘쳐 보입니다.


출처 - YTN


문제는 그에게 과오가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인 독립군 토벌로 악명 높은 만주군 육군 휘하 간도특설대에서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장교로 복무한 전력이 있습니다. 간도특설대의 일원으로 압록강, 두만강, 상류 일대에서 주로 중국 항일 게릴라 토벌에 종사했다고 하죠. 이때 중국 주도의 항일 게릴라에는 중국인, 만주인과 함께 조선인이 다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1944년 백선엽은 일본에 맞선 중국공산당의 주력부대인 팔로군 토벌에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일본제국으로부터 여단장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백선엽은 자서전에서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조선 독립군을 토벌한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만주군 간도특설대로서 복무했으며 일제 패망 당시 만주군 중위였다는 사실은 시인합니다. 그리고 독립군과 직접 싸운 적이 없다고 변명하지만, 간도특설대 자체가 조선인 독립군은 조선인으로 잡아야 한다는 일제의 방침에 따라 만들어진 특수부대였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백선엽의 진술은 신빙성이 아주 떨어집니다.

 

출처 - 경향신문

 

백선엽이 몸담기 전이긴 하지만 간도특설대는 1939년 천보산 전투에서 포로로 잡은 조선인 독립군들을 고문 살해한 전적도 있습니다. 또한 중국 기록을 보면 백선엽이 복무하던 1944년 7월과 9월, 11월에 간도특설대가 무고한 조선인 등을 살해하고 식량을 강탈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백선엽이 일제의 군인, 그것도 간도특설대였다는 사실 자체도 큰 문제지만, 그는 지금까지 복무 사실만 인정했을 뿐 일제에 부역한 과오에 대해 사죄하거나 반성한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사학 비리의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인 선인학원 문제 등으로 수천억 원대의 치부를 한 사람이기도 하죠. 이렇게 과오가 분명한 사람이 과연 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이 있을까요?


출처 - 연합뉴스


지난 3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친일행위자에 대한 현충원 파묘 및 이장에 대해 응답자의 54%가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전쟁 등 다른 공이 있더라도 친일부역자라면 현충원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입니다. 이장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32.3%였습니다.

 

출처 - Korea TV

 

지난 3월 1일은 101주년 삼일절이었습니다.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이끈 평민 출신 위대한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드디어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계봉우·황운정 지사 내외분의 유해를 모신 데 이어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기념하며,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방한과 함께 조국으로 봉환하여 안장할 것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문재인 SNS / 매일노동뉴스

 

그리고 지난 7일 봉오동 전투 승리 100주년을 맞이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SNS를 통해 승리와 희망의 역사를 만든 평범한 국민의 위대한 힘을 가슴에 새긴다고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봉오동 전투는 임시정부가 '독립전쟁의 해'를 선포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일궈 낸, 무장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승리였다"면서 "이로 인해 독립운동가들은 ‘자신감’을 얻었고, 고통받던 우리 민족은 자주독립의 ‘희망’을 갖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아울러 "독립군 한 분 한 분을 기억하고 기리는 일은 국가의 책무임과 동시에 후손들에게 미래를 열어 갈 힘을 주는 일"이라며 "코로나 때문에 늦어졌지만 정부는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계신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

청산리 전투 승리 기념 사진  |  출처 - 독립기념관  / 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대한국민이 일제에 저항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일부 보수 세력의 말처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 이전의 과보다는 그 이후의 공을 고려해서 안장을 결정해야 한다는 건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주장입니다. 이런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에 보수가 그리도 '건국절 타령'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군요. 보신과 치부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제에 부역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사람들이 현충원에 그대로 남아 있어도 괜찮은 걸까요? 과반수의 국민과 헌법정신이 답을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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