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죽음, 무엇을 남겼나?

얼마 전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고 최희석 씨를 추모하기 위해 경비원들이 지난 20일 ‘전태일 50주기 2차 캠페인’에 참석했습니다.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전태일 다리 위에는 최희석 경비원을 위한 작은 분향소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날 캠페인 참석자들은 "경비노동자도 사람입니다"라고 쓰여 있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출처 - 이데일리

 

안타깝게 사망한 고 최희석 경비원. 그는 입주민의 폭행, 폭언에 시달리다가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고 최희석 경비원 사건을 되돌아보겠습니다.


출처 - SBS


사건의 발단은 주차 문제였습니다. 지난 4월 21일 경비 업무 중이던 최희석 씨는 이중주차된 차량을 밀어 주차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이때 나타난 아파트 입주민인 차 주인은 자기 차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최희석 씨를 밀치며 시비가 붙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차 주인은 최희석 씨를 폭행하며 "돈도 쥐꼬리만큼 받는 머슴 주제에 건방지다"는 등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4월 27일에는 경비실 안에 있던 최희석 씨를 화장실로 끌고 가 수차례 폭행하여 코뼈가 부서질 정도의 상해를 입혔습니다.


출처 - SBS


이번 사건이 우리를 안타깝게 했던 것은 다른 입주민들이 경비노동자인 최희석 씨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인은 평소 입주민들과 가족처럼 가까이 지냈다고 하는데요, 5월 5일 입주민들은 폭행 사건에 대해 긴급회의를 열고는 "도저히 억울해서 못 살겠다"고 하소연하는 최희석 씨를 위해 입원을 시켜주고, 폭행 사건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법률 지원과 관련해서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입주민인 문제의 차주는 다른 입주민들과 달리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며 최희석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면서 적반하장으로 나섰습니다. 마음이 상하고 억울함과 압박감에 시달린 최희석 씨는 결국 세상을 등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유서에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던 입주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문구를 남겼습니다.


출처 - 뉴스1


아파트 입주민들은 최희석 씨의 산재 처리와 장례 절차를 알아봐 주는 한편 유족들과 함께 고인을 추모하는 촛불시위도 진행했습니다. 아파트 입주민 중 한 명은 경비노동자 최희석 씨의 사망 직후 청와대 게시판에 '저희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청원을 올렸습니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이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죠. 일이 이렇게 커졌는데도 가해자는 유족인 형에게 전화해 어찌 됐든 미안하다고 한마디했을 뿐 빈소를 찾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사죄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이번 사건이 쌍방폭행이었다며 버티는 중입니다.


출처 - 뉴스1


우리 사회에 고 최희석 경비원처럼 갑질의 피해자는 부지기수입니다. 아파트 미화원인 어머니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뿌리며 당장 그만두라고 소리를 지르는 입주민, 내가 왕이니 나가라고 하면 언제든 내쫓을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는 입주자 대표회장, 어디 노예가 내 앞에서 고개를 드냐면서 손을 올리는 부자 아파트 입주민 등 아파트 노동자들에게 온갖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끝이 없습니다. 아파트 경비노동자 최희석 씨의 사건을 단순히 인면수심의 입주민 한 명의 잘못으로 보고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시민의식은 물론 갑-을 관계로 짜인 노동의 현실을 구조적으로 들여다봐야 합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최희석 씨가 두 딸과 먹고살기 위해 아파트에서 잘릴 수 없다고 절규했던 것처럼, 아파트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들 대부분은 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나 노동자로서 누릴 권리마저 포기한 채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사회적 약자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에 대해 상식 있는 입주민들뿐 아니라 전 국민이 공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아파트 노동자들이 더는 '사회적 타살'을 당하지 않도록 구조와 제도를 촘촘히 다져야 합니다. 

 

출처 - 서울신문

 

지난 5월 12일 《서울신문》은 경비원이 경험하는 주민 갑질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에서 최근 2년간의 갑질 관련 사건 판결문 13건을 분석하여 기사화했습니다. 그 결과 폭행·상해·모욕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해 주민 중 실형이 선고된 건 3명뿐이었습니다. 나머지 10명은 집행유예와 벌금형에 그쳤습니다. 용기를 내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현실 속에서 대부분의 경비원들은 억울함을 느껴도 해고가 두려워 말하지 못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번 사건에서 아쉬운 점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경비원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공동주택관리법과 근로기준법의 미비함도 문제입니다. 2017년 시행된 개정안은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 주체는 경비원 등 아파트 노동자에게 적정 보수를 지급하고 처우개선과 인권존중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나 명령을 내리면 안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를 어겼을 때 이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법을 재개정해서 실질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도록 명시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오는 6월부터 아파트 경비원에게 청소, 주차단속 같은 일을 시킬 수 없습니다. 법원 판례가 나와 경찰청이 아파트 경비업법 준수에 대한 계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비업법상 아파트 경비는 경비 업무만을 해야 합니다. 진즉 이랬어야 할 당연한 얘기지만, 현실은 이와 달리 복잡합니다. 앞으로 노령층이 경비업에 남아 있기가 어려워지는 것이죠. 규모 있는 아파트들은 경비원 대신 분리수거나 택배 등까지 전담할 관리원을 고용하려 들 테고, 전자경비로 대신하거나 젊은 경비원을 들이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관리비 상승은 피할 수 없는 수순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일 착한 입주민들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출처 - 서울경제


노동절이 있는 5월에 우리 사회의 최약자에 속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이 터져 나오는 참사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어 가슴이 아픕니다. 법과 제도적 개선도 중요하지만, 우선 적어도 우리 스스로 좋은 입주민이 되는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경비노동자에게 도움을 주는 선한 입주민이 되는 것이 그 시작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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