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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성 소수자 차별을 넘어 더 넓은 논의로 나아가야

by 생각비행 2020. 2. 19.

최근 우리 사회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인권 의식이 어느 수준인지 명확히 드러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강제 전역 조치를 당한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 입학을 스스로 포기한 한 트렌스젠더가 그 사례였죠.


출처 - 뉴시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군에서 강제 전역을 당한 변희수 하사가 지난 10일 법원에서 정식으로 여성임을 인정받았습니다. 청주지방법원에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을 정정하는 법적 허가를 받은 겁니다. 법원 결정문 내용을 보면 변 하사의 성장 과정, 호르몬 치료와 수술을 받게 된 과정, 수술 결과의 비가역성, 어린 시절부터 군인이 되고 싶어 했던 점, 앞으로도 복무를 희망하는 점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인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뉴스1


문제는 국방부가 고환 및 음경 결손 등을 이유로 변희수 하사를 강제 전역시켜버렸다는 점입니다. 변 하사는 이에 불복하여 현재 행정소송 중이죠. 남성, 여성이라는 구분을 떠나 같이 군 복무했던 전우들의 신망이 두텁고, 앞으로 함께 복무하게 될 여군 역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는데도, 국방부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은 육군 참모총장에게 성별 정정 신청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나오지 않은 시점에 변희수 하사를 남성으로 규정하고 장제 전역시키는 건 부당하다며 전역심사위원회를 연기하고 적어도 성별 정정에 대한 법적 판단이 나올 때까지는 기다리는 게 바르다고 권고했지만, 국방부는 다른 국가 기관의 권고를 모두 무시하고 강제 전역 결정을 내렸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TV

 

병력 자원이 줄어가는 마당에 군 복무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고, 능력이 출중한 사람을 단지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쫓아내려고 혈안이 된 국방부는 이런 자기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고환 및 음경 결손 등이 강제 전역의 이유가 된다면, 체력이 떨어지고 늙어서 성 기능에 문제가 온 늙은 장성들부터 강제 전역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시대에 뒤떨어져도 너무 뒤떨어진 군의 남근숭배와 성차별 그리고 여성혐오는 이 시대에 꼭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현재 변희수 하사는 성별 정정이 끝난 후 여군 재입대를 추진 중이라고 하죠. 국방부는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는데 관련 규정을 검토하겠다는 말로 시간을 끌고 있는 상황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우리 사회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인권 의식이 어느 수준인지 명확히 드러난 다른 사건은 숙명여대에 입학하기를 원했던 한 트랜스젠더에 학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법적으로 여성으로 성별 정정이 끝난 상태에서 숙명여대 입학을 지원했으나 이번에는 숙명여대 재학 중인 일부 재학생들의 여론에 떠밀려 스스로 입학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대개 법이 가장 나중에 바뀌어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일부 대학생들의 트랜스젠더 입학 지원자에 대한 사고는 법원보다도 훨씬 뒤처져 있을 정도로 보수적이었습니다. 2006년 대법원판결 이후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에 의한 법적 성별 정정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는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성전환자에 대해서도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결정이 7차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단순히 성기 유무 등 신체 조건을 떠나 개인의 인식이 성 정체성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출처 - 프레시안(조성은)

 

그런데 우리나라 여대의 입학 정책은 법적인 여성만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번 숙명여대 사건은 법 위에 여론이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여대가 생겨난 이유가 차별받는 여성의 교육을 위한 장을 마련하려 했던 것이며 여전히 성차별적인 우리 사회에서 여성 교육의 큰 보루로 작용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한편 이번 사건이 언론의 책동으로 트랜스젠더와 여성주의라는 을과 을의 전쟁으로 비화한 측면도 있습니다. 소수의 의견이 언론에 의해 과다 대표되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적어도 '성 소수자를 차별하는 여성주의' 입장에 관해서는 판단이 엇갈렸습니다. 

 

출처 - 프레시안(조성은)

 

여성주의 입장이라면 '스스로 여성이 되기로 한 사람들'에 대해 연대의 뜻을 표명하는 게 맞지 않나 싶죠. 찬반 의견이 나뉜 숙명여대에서 <당신은 존재 자체로 가치있다>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대자보를 통해 트랜스젠더 A 씨의 입학을 환영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서두에 제시하며 A 씨 입학을 지지한 것이죠. 미국, 일본 등 여대가 남아 있는 국가에서 트랜스젠더 입학 정책은 세부 사항이 다를지 몰라도 입학 자체를 막지는 않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여성뿐 아니라 자신을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논바이너리'의 입학도 허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생물학적 여성이지만 자신을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정체화한 사람의 입학을 허용합니다. 우리보다 여성에 대한 억압이 심하다고 알려진 일본에서조차 여대 입학은 법적 성별이 아닌 개인의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하여 허용하고 있죠.


출처 - 뉴시스


법적으로 여성이 된 사람을 차별했다는 점에서 국방부도, 숙명여대도 시대에 맞지 않는 잘못된 판단을 했습니다. 이번 두 사건을 계기로 트랜스젠더뿐 아니라 논바이너리 등 더욱 폭넓은 성 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 앞으로 이런 문제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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