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4관왕 〈기생충〉이 남긴 진정한 성취는?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며 4관왕을 차지했습니다. 한국 영화 100년의 해인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데 이어 한국 영화의 새로운 100년 역사를 쓰는 첫 해에 이룩한 실로 놀라운 쾌거입니다. 올해부터 '외국어영화상'에서 '국제영화상'으로 이름을 바꾼 상의 수상은 점쳐진 바 있지만, 그 이외의 주요 부문인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휩쓸 줄은 몰랐습니다. 예상 밖의 일이라 기쁨도 더 큽니다.




〈기생충〉이 세계 영화계의 지지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해외 영화, 그것도 영어도 아닌 한국어로 된 영화에 작품상을 줄 것을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작년에 멕시코어로 된 멕시코 영화 〈로마〉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작품성을 지녔음에도 감독상 수상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세계인이 목도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거의 '죽음의 조'라고 할 만큼 훌륭한 작품들과 쟁쟁한 감독들이 후보인 상황이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쿠엔틴 타란티노, 샘 멘데스 같은 거장의 틈바구니에서 〈기생충〉은 전통의 강호를 모조리 꺾고 트로피를 거머쥔 셈입니다.


출처 - 한국일보


그런 의미에서 봉준호 감독의 작품 〈기생충〉은 한국 영화사뿐 아니라 세계 영화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혔습니다. 한국 영화 사상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것도 최초이며 수상한 것도 처음이지요. 또한 영어가 아닌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 역시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 첫 언어가 한국어 영화라니 참으로 뿌듯합니다. 한 영화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은 역대 두 번째이자 64년 만의 일이라고 하죠. 아시아계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것은 대만 출신인 이안 감독에 이어 역대 두 번째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안 감독은 대만계 미국인으로 현재 할리우드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으니 사실상 봉준호 감독이야말로 처음으로 가장 한국적이자 아시아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준 감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출처 - 경향신문

 

그래서인지 산드라 오를 비롯한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을 비롯해, 아시아계 미국 영화인들은 마치 자기 나라의 일인 것처럼 함께 기뻐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시상식장에서 특유의 달변으로 같은 후보에 오른 감독들을 기쁘게 하는 수상 소감을 선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국내는 물론 해외 곳곳에서 상찬을 받았죠. 시상식을 지켜본 모두가 벅찬 감정을 느끼고 기쁨을 만끽한 역사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출처 - JTBC


그 기쁜 순간에 우리에게 또 하나의 역사가 존재했음을 잊지 맙시다. 〈기생충〉이 4관왕이 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우리나라는 아카데미 후보작 하나를 더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른 〈부재의 기억〉입니다.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가 '부재'했던 당시의 기억을 담은 다큐멘터리죠.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에는 〈기생충〉 팀과 또 다른 한 무리의 한국인이 섰습니다. 세월호 유족인 단원고등학교 2학년 8반 장준형 군 어머니 오현주 씨와 2학년 5반 김건우 군의 어머니 김미니 씨였습니다. 검은 자켓에 검은 드레스 차림을 한 이들은 〈부재의 기억〉의 감독 이승준, 프로듀서 감병석과 함께 노란 명찰을 달고 레드카펫에 섰습니다. 이들은 단원고 세월호 희생자 아이들의 얼굴이 새겨진 노란색 천과 함께였습니다. 

 

출처 - 감병석 프로듀서 페이스북

 

수상을 하지는 못했으나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라 한국뿐 아니라 세계인이 세월호 참사와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기릴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역시 수상이 목적이 아니었고, 세월호 참사가 한국의 비극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 어디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희생자 어머니들과 참석했다고 밝힌 바 있죠. 현재 제작진과 배급사의 뜻에 의해 〈부재의 기억〉은 유튜브에 작품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꼭 한번 감상해보시길 권합니다.


출처 – Field of Vision 유튜브


되돌아보면 이번에 4관왕이 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이명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이 들어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고 하죠.

 

출처 -  경향신문

 

그러니 시민들의 힘으로 국정농단을 끝내고 대통령을 탄핵했기에 오늘 이 같은 영광이 있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출처 - BBC


한국인으로서 뿌듯함과 기쁨을 만끽한 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되돌아봅시다. 〈부재의 기억〉에 얽힌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 처벌은 현재 진행형인 과제입니다. 또한 영화 〈기생충〉이 세계 영화계를 제패했다는 영광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그 영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양극화와 불평등, 연대 없는 각자도생이 우리 사회를 지옥으로 만들었다는 주제의식을 곱씹어봐야 합니다. 사람을 갈아넣지 않아도, 표준계약서를 쓰고 정당한 노동 환경 조건에서 영화를 찍어도 이런 엄청난 결과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통해 건진 진정한 성취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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