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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평화 일직선, 키나 쇼키치를 만나다

by 생각비행 2019. 12. 10.

평화 일직선,

키나 쇼키치를 만나

 

음악으로 평화를 그리는 키나 쇼키치

키나 쇼키치를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본 오키나와 출신의 전설적인 음악인으로, 오키나와 민요 명인이자 산신(일본 전통악기) 속주의 달인 키나 쇼에이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1976년 발매한 앨범 [키나 쇼키치 & 참프루즈]에 수록된 〈하이사이 오지상〉(ハイサイおじさん, 안녕하세요 아저씨)은 공전의 인기를 끌며 오키나와에서만 30만 장이 판매되었죠. 당시 오키나와 인구가 100만 명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인기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앨범은 일본 평론가가 뽑은 100대 명반 중 35위에 랭크됩니다.


키나 쇼키치는 음악으로 평화를 그리는 행동주의자이기도 합니다. 저항이나 투쟁의 방법이 축제일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체감하고, 음악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서 평화 활동을 펼쳤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 모든 무기를 악기로, 모든 기지를 화원으로, 전쟁보다 축제"가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1980년 오키나와 문화, 산업, 정신을 소중히 하자는 취지로 개최한 '우루마 축제', 1986년 기아로 고통받는 주민을 위한 필리핀 마닐라 네그로스섬 지원 콘서트, 1997년 북한 식량 지원을 위해 수차례 진행한 '아리랑에 무지개를' 자선 콘서트, 1998년 3주간에 걸쳐 미국 대륙을 횡단한 백선(White Ship of Peace) 축제, 2003년 이라크 평화 가두행진 등의 활동으로 드러나듯, 그는 평생을 평화 일직선으로 살아왔습니다.


일본에서 남한과 북한 청년단이 주최하는 '도쿄 통일마당' 행사에 해마다 참여해 〈아리랑〉을 부르고 분단된 한민족 현실에 남다른 관심을 두어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다양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1993년 대전 엑스포 공연, 1999년 10월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종교와 문화 포럼' 초청 공연, 2000년 광주 5.18 20주년 기념 공연 등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며, 2002년에는 북한 평양 공연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키나 쇼키치는 김대중 정부의 일본 문화 2차 개방으로 2000석 이하 규모의 내한 공연이 가능해진 후, 1999년 9월 한국에서 최초로 공연한 일본 음악인이기도 합니다.


밥 말리(Bob Marley),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같은 세계적인 가수들이 키나 쇼키치의 음악에서 영감과 감동을 받았다고 표명할 정도로, 그가 동북아를 넘어 세계에 끼친 영향은 상당합니다. 2019년 현재 71세인 그는 DMZ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공연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나비는 국경 없이 그냥 날아다니잖아. 새들도 날아다니고, 바람도 경계 없이 불고, 구름도 흘러가고. 모두 국경이 없어. 그 정점에 서 있다고 잘난 체하는 인간만이 국경을 가지고 있는 거야. 거기서 문제가 발생해."

 


김창규 묻고 키나 쇼키치 답하다

류큐왕국은 1429년부터 1879년까지 450년간 존속했습니다. 일본에 무력으로 병합돼 반강제적으로 '오키나와현'이라는 이름으로 편입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일본 본토를 지키기 위해 버려지는 돌로 취급돼 지상전에 떠밀려 주민의 4분의 1이 죽는 비참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죠. 전쟁이 끝난 후, 미국에 27년간 양도되어 군사기지가 잔뜩 세워졌으며 1972년 반환된 이후 지금까지도 갈등 상황은 여전합니다.


키나 쇼키치는 1948년생으로 미국이 오키나와를 통치하던 시절에 태어났고, 일본을 다른 나라로 생각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음악 활동을 하다가 오키나와 주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회로 갔고(키나 쇼키치는 전직 참의원 의원입니다) 선거에서 무참히 패배하기도 했지만(오키나와현지사 선거), 그가 최종적으로 안착한 곳은 '평화'였습니다. 그것도 무려 '세계 평화'죠.


키나 쇼키치는 인간을 국가나 이념, 종교나 민족에 한정해 보지 않습니다. 오직 개인입니다. '위정자에게 의지하지 않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온 오키나와인의 매력에 더해 제멋대로 살고 제멋대로 말하고 그 말을 온전히 책임지며, 미덕도 악덕도, 자본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모조리 받아낸 이 남자는 유쾌하고 씩씩합니다.


《딴지일보》 김창규 편집장이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평화를 노래하는 키나 쇼키치를 만났습니다. 2017년 한국에서,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2019년 일본에서 이어진 인터뷰에는 키나 쇼키치의 삶, 음악, 평화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2017년 첫 만남 때만 해도 남과 북은 언제 전쟁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긴장 국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키나 쇼키치는 평화가 급진전될 수 있음을 예감했습니다. 그리고 남북한이 분단 상황을 넘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했죠. 불과 2년 만에 그의 생각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키나 쇼키치의 대표곡 중 하나인 〈하나~ 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花〜すべての人の心に花を〜)〉이란 노래는 60여 개국에 리메이크되어 세계적으로 3000만 장 이상이 팔렸습니다. 세계적인 위상에 비하면 한국에선 키나 쇼키치의 존재감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는 남북 관계의 진전을 바라며 매년 아리랑을 부릅니다. 

 

 

지난 11월 6일 대전MBC에서 〈키나 쇼키치의 하이사이 아리랑〉이란 특집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남북한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키나 쇼키치를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판문점을 찾은 키나 쇼키치는 그의 마지막 꿈을 이야기합니다. DMZ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공연하는 것이죠.


우리는 키나 쇼키치를 보고 있지 않았지만, 그는 계속 우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키나 쇼키치를 발견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가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김창규 묻고
필명 죽지않는돌고래. 《딴지일보》 편집장. 대학에서 일본문학사를 전공했고 제9회 국제통역사절단 선발대회 및 외국어경연대회에서 일본대사상을 받았다.
《딴지일보》에 입사해 필리핀에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한국인을 돕거나(김규열 선장 구출작전) 수배 중인 살인범을 추적해 인터폴 적색수배범을 잡는데 기여하거나(필리핀 납치사건-홍석동 납치사건) 영업 중인 불법 인터넷 도박 조직의 내부를 실시간 보도해 국세청의 세금 환수를 거드는 등(인터넷 도박 묵시록) 조금 이상한 일을 많이 했다. 2013년 4월부터 데스크 전담으로 기사 선정, 기획, 출판 등을 맡고 있다. 원고 추심원계의 프로페셔널을 자부하나 밤낮없이 시달린 필자들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말을 듣는다(내게도 다 생각이 있다).
<라이온 킹>의 ‘무파사’ 같은 아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돌고래 같은 자식과 뒹굴거리는 게 삶의 가장 큰 행복이며 할머니가 오래 사는 게 가장 큰 꿈이다. 인터뷰집 《범인은 이 안에 없다》와 《공익제보 하지 마세요》(공저)를 냈다.


키나 쇼키치 답하다
일본 오키나와 출신의 전설적인 음악인. 13살 때 쓴 〈하이사이 오지상〉(ハイサイおじさん, 안녕하세요 아저씨)이 1976년 싱글 레코드로 발매되면서 폭발적으로 팔리기 시작, 당시 인구 100만의 오키나와에서만 30만 장 이상이 판매되어 섬 전체의 재고가 떨어진다. 1977년, [키나 쇼키치 & 참프루즈] 앨범은 일본 평론가가 뽑은 100대 명반 중 35위에 랭크된다. 〈하나~ 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花〜すべての人の心に花を〜〉은 60여 개국에 리메이크되어 세계적으로 3000만 장 이상이 팔린다.
저항이나 투쟁의 방법이 축제일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체감하고, 음악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서 평화 활동을 펼치는 행동주의자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남한과 북한 청년단이 주최하는 ‘도쿄 통일마당’ 행사에 해마다 참여해 아리랑을 부르고 분단된 한민족 현실에 남다른 관심을 두어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다양한 공연을 펼쳤다.
밥 말리(Bob Marley),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같은 세계적인 가수들이 키나 쇼키치의 음악에서 영감과 감동을 받았다고 표명할 정도로 동북아를 넘어 세계에 끼친 영향이 상당하다. 2019년 현재 71세인 그는 DMZ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공연하는 꿈을 꾸고 있다.

 

▌차례


책을 펴내며

1부
한국에서 키나 쇼키치를 만나다
01 지옥을 본 남자의 유일한 친구
02 〈하이사이 오지상〉과 나의 오지이상(할아버지)
03 이쪽은 오키나와, 저쪽은 미국 세계
04 미군이 떠난 날, 유치장에 들어가다
05 그러고 보니 나는 왕따였군
06 ‘그 간격’을 봐버린 인간
07 차별받는 자가 차별을 해결할 수 있다
08 일본인의 유전자에 새겨진 무의식 그리고 아베
09 북한이 적이 아니라 분단된 현실이 적이야
10 평화운동보다는 아이들의 마음을 꺾기 싫을 뿐이야
11 중요한 건, 일단 한다,는 거지
12 그러지 않으면 세상이 바뀌질 않아

2부
일본에서 키나 쇼키치를 만나다
01 ‘평화’라는 원 패턴과 1964년 도쿄 올림픽
02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돈
03 형무소 안에서, 다시 돌아가다
04 내가 잘하는 것과 이라크
05 오키나와, 미군기지 그리고 정치
06 핵, 야스쿠니 신사, 위안부, 독도
07 꿈은 같다
08 인터뷰 후: 천국과 지옥의 재료는 같다

부록
키나 쇼키치 연보
주요 앨범
주요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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