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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김박사넷을 아십니까?

by 생각비행 2019. 11. 26.

'김박사넷'을 아십니까? 한때 상아탑으로 불리던 대학의 교수들을 평가하는 사이트입니다. 입시 경쟁을 치르고 입학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교수만큼 학생들의 진로와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도 정작 학문에 뜻을 둔 학생들은 별다른 정보 없이 대학원으로 진학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깨닫게 됩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말입니다. 지도교수 밑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개인적인 심부름까지 해주면서 갑질이나 당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인 현실이니까요. '김박사넷'은 학생들에게 최소한 이런 연구실은 가면 안 된다는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라고 합니다.


출처 - 김박사넷



김박사넷 – 대학원의 모든 것 : https://phdkim.net/

 

작년 1월 김박사넷은 오픈하자마자 대학원생들에게는 대나무숲이, 교수들에게는 악몽이 되었습니다. 김박사넷은 학과에 대한 정보 제공부터 각종 서베이 자료 등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뜨거운 감자는 이른바 '한줄평'이라 불리는 교수에 대한 품평입니다. 교수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대학원생들의 평가에 따라 "최악, 교수 능력이 의심될 정도로 논문에 관심 없음. 그렇다고 교수한테 배울 수 있는 것도 없음" "인건비 안 주기로 유명, 더 충격적인 건 학생이 잘되길 바라지 않음"처럼 가차 없는 평가가 즐비하기 때문입니다. 재학생과 졸업생의 교수에 대한 평가가 일정 수치를 넘어서면 오각형 평가 플랫폼으로 교수 평가가 공개됩니다.


출처 - 김박사넷


연구실 분위기, 인품, 강의 전달력, 논문 지도력, 실질 인건비의 5가지 항목으로 드러나는 정보는 예전엔 감히 물을 수 없는 것으로 알음알음 전해 들어야 하는 것들이었죠. 하지만 김박사넷은 박사 졸업까지 걸리는 시간,. 연도별 석·박사 졸업생 수, 교신 SCI 논문 수, 교신 SCI 논문 톱 5, 피인용 횟수, 동일 계열 연구실과 비교 같은 객관적인 자료도 제공합니다. 명불허전인 교수가 있는가 하면 스타 교수지만 갑질을 일삼는다는 사실이 폭로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김박사넷에서 혹독한 평가를 받은 교수가 명예 훼손을 운운하며 글을 내릴 것을 요구하는데, 이때 김박사넷 측에선 해당 교수의 요청으로 글을 내렸다는 사실을 적시한다고 합니다. 정보가 사라지더라도 대학원생이나 지망생들이 '오죽하면 그 교수가 글을 지워달라고 했을까'라는 감이라도 잡을 수 있게 말입니다.


출처 - 법률신문


실제로 정보가 공개된 교수가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소송을 건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9월 온라인을 통해 대학교수에 대한 평가 등을 제공하더라도 명예훼손이나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래프 등 학생들이 직접 입력한 평가를 수치화한 것은 연구비 부정 사용이나 대학원생에 대한 권한 사적 남용 등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대학원 연구 환경에 관한 정보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또한 교수의 요청에 의해 한줄평을 삭제했다는 문구를 게시하는 것은 오히려 정보통신망법의 권리침해자의 요청에 따라 정보를 삭제할 경우 이를 공시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법상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죠.


출처 - 한국일보


우리 사회에 김박사넷 같은 교수 평가 사이트가 생긴 까닭은 뭘까요? 대학원생이나 시간 강사가 대학 사회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 노동자이기 때문입니다. 수도권 대학원에서 서른이 넘은 나이에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 학기당 450만 원씩 등록금을 갖다 바쳤고 여기에 생활비까지 벌기 위해 조교나 알바를 뛰다 보면 공부할 시간이 없어 3시간 이상 편히 잠을 잘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습니다. 대학원생들은 이렇게 큰 희생을 치르며 석·박사의 꿈을 안고 대학원에 들어가는데 정작 대학원이란 곳은 전근대적인 사회입니다. 20년 전 교재를 가져와 20년 전 예를 들며 강의를 하는 교수도 많습니다. 실력이 부족하거나 무능력하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성폭력이나 성희롱 등 갑질이 동반되는 권력형 범죄가 발생하는 연구실도 적지 않습니다. 피해 대학원생은 학교를 떠나야 했는데 가해자인 교수는 성폭력 관련 교육을 이수하는 정도로 끝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대학원생은 일을 시킬 땐 노동자지만 돈을 나눌 땐 학생 취급을 받습니다. 교수가 연구 용역으로 일이란 일은 다 시키면서 인건비가 들어오면 자진 반납의 형식으로 대학원생들의 인건비를 연구실 행정비로 반납하게 하는 겁니다. 이런 수난을 겪으면서 그나마 학위라도 제때 따면 다행입니다. 80% 이상 연구 보고서를 써도 이름이 안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교수 아들이나 딸이 저자로 끼어들지나 않으면 양심적이라는 소릴 듣는다고 하죠. 상황이 이러다 보니 해외 대학원으로 가려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젊은 인재들의 해외 유출은 상아탑 내 갑질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출처 - JTBC


대학원생이 졸업하고 교수가 되기 위해 시간 강사를 뛰려 해도 현실은 여전히 갑질의 연속입니다. 대학 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강사법이지만, 현실에서는 대학의 편의에 의해 실제 강의는 줄고 수업 쪼개기 같은 편법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강사법에는 최소 1년, 길게는 3년간 강사의 임용을 보장하고 방학 때 임금을 줘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대학들은 재정 부담을 호소하며 강사 수를 오히려 줄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학기 강의가 7000개 넘게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강사들은 강사법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합니다. 생각해보면 비정규직법도 2년이 되면 정규직으로 의무 전환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지만 현실에서는 2년 되기 전에 자르는 법이 되어버렸죠.


출처 - 중앙일보


진리를 탐구하고 첨단 연구의 장이어야 할 대학이 권력과 갑질에 절어 돈만 바라는 곳으로 변해버렸다는 점에서 사회와 하나 다를 바가 없는 형국입니다. 비정규직을 찍어 눌러 양극화를 심화하고 불평등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 기관에서조차 이런 일이 횡행한다는 건 우리 사회의 미래가 참 암울하다는 경고로 인식해야 합니다. 교육부는 단순히 강사법 시행을 위한 예산 지원을 하겠다고 미적지근한 대응만 하지 말고 고용노동부와 협력해 실태 조사와 대학 사회의 갑질을 적발하여 시정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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