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딥페이크 포르노, 일명 '텔레그램 n번방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국회 재석 193명 중 찬성 190명, 기권 3명으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안을 가결한 겁니다. 이 개정안은 특정 인물의 얼굴, 신체를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합성한 편집물인 딥페이크의 제작, 유통을 처벌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텔레그램 n번방에서 주로 행해지던 포르노에 지인이나 유명인 등 다른 여성의 얼굴이나 신체를 합성한 불법 영상을 대상으로 합니다.


출처 - 뉴시스


텔레그램 n번방에서 벌어지던 성 착취 범죄는 국회 입법청원 1호이기도 합니다. 청와대 청원에 이어 국회가 따로 마련한 국민동의청원으로 국민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국회 입법을 약속한 법안이죠. 그 이전에도 입법에 대한 국민 청원 제도는 있었지만, 20년간 2825건의 국민 청원이 있었으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고작 1%인 27건에 불과합니다. 거의 유명무실한 제도였죠.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국회법을 개정해 시행한 것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벤치마킹한 지금의 국민 입법청원입니다.


출처 - 국민일보


국회 입법청원 제1호인 만큼 26일 만에 10만 명이 동의해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2월 국회에서 논의해 20대 국회가 결실을 봐야 한다고 강조한 입법이기도 합니다. 당시 민주당을 비롯해 각 당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희대의 성 착취 사건이자 인권유린 사건이라며 이 같은 디지털 성범죄자 처벌 강화 방안과 관련된 입법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앞다퉈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런 관심 속에서 지난 3월 5일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었죠.

 

출처 - 미디어오늘

 

개정안은 딥페이크를 제작하거나 반포, 판매, 임대 등의 행위를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리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유포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으로 가중처벌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 입법을 청원한 주체들은 국회의 보여주기식 처리로 졸속 처리된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국회 청원 1호로 올라온 내용이 개정안에는 모두 빠진 채 통과됐다는 겁니다. 당시 국회 청원자는 텔레그램 n번방에 대한 청원에서 경찰의 국제공조수사, 디지털 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수사기관의 2차 가해 방지를 포함한 대응 매뉴얼 제작,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강화를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이 중에 이번 개정안에 포함된 건 사실상 일부 양형 기준 강화 정도밖에는 없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언론은 n번방 청원이 통과됐다는 받아쓰기 기사만 쏟아낼 뿐이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청원자들은 개정안에 포함된 사례 역시 이른바 지인 능욕이라 불리는 딥페이크 영상물에 국한되는 것도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서 지인 능욕은 디지털 성범죄 중 빙산의 일각이라는 겁니다. 법안이 통과된 게 무의미한 것은 아닐 테지만 이번 개정안조차 디지털 성범죄를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게 문제 제기의 요지입니다. 이른바 '일탈계'를 운영하는 여성 청소년을 협박해 가학적이거나 변태적인 성 착취 영상을 찍게끔 하는 범죄는 같은 텔레그램 안의 디지털 성범죄인데도 말이죠.

 

출처 - 법률사무소 위드


국회가 국회 입법청원 제1호 청원이라며 제대로 다룰 것을 약속했다면 더 적극성을 가지고 청원의 내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야 합니다. 국민 10만 명의 청원을 우습게 보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디지털 성 착취 범죄에 대한 폭넓은 수사와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입법 보완이 조속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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