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하기비스에 유실된 후쿠시마 방사성 폐기물

일본의 방재 능력과 재해 대처 수준을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범으로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진, 해일 등 자연재해가 빈번한 일본에서 정부의 신속한 대처는 물론 사회 곳곳에 비상 시 따라야 할 매뉴얼이 잘 정비되어 있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대처 과정에서 드러난 일본 정부의 무능력,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정당한 배상 판결을 무시하고 오히려 경제 보복을 시도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이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일본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게 국민 대부분의 심정일 겁니다.


출처 - KBS


일본을 강타한 태풍 하기비스로 인한 피해 상황만 봐도 그렇습니다.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이 80명을 넘고 다친 사람은 200명이 훌쩍 넘었고 주택은 1만 2000채가 넘게 침수됐습니다. 이번 태풍이 최대급 태풍이라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곤 하지만, 하기비스가 오기 전 도쿄 인근을 휩쓸고 간 다른 태풍으로 인해 수도권 지역의 정전이 곳에 따라 한 달을 가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처럼 도쿄전력 같은 시설을 민영화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폐단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민중의소리


이번 하기비스 태풍이 휩쓸고 간 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방사성 폐기물의 유실이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교도통신이 지난 13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후쿠시마현 다무라시(田村市)에 보관돼 있던 2700여 개의 폐기물 자루가 침수됐고 이 중에 일부가 강으로 흘러갔다고 합니다. 다무라시는 강을 따라 내려가 10개의 자루를 회수했지만 실제로 몇 자루가 유실됐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사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방사성 폐기물을 담은 자루의 전체 유실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유실된 자루에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주변 학교나 주택가에서 긁어낸 스트론튬, 세슘 등이 들어 있는 방사성 오염토가 들어 있습니다. 일본 정부에 의하면 자루는 1세제곱미터에 공간방사선량이 시간당 1마이크로시버트 이하라고 합니다만, 일본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외에도 이번 태풍으로 침수된 하천이 중간에 다른 강과 합류해 태평양으로 흘러간다는 겁니다. 방사성 물질인 만큼 엄중한 관리가 요구되지만 이를 방치했다는 지적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2015년 9월 간토, 도호쿠 폭우 당시 이런 방사성 폐기물 자루 439개가 유실된 적이 있는데도 엄청난 규모의 태풍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도 일본 정부는 사실상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출처 - 아사히 신문

 

다무라시는 유실된 자루에서 폐기물이 나오지는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아사히 신문》 기자가 포착한 현장 영상에는 이미 내용물이 빠져나가 홀쭉해진 자루들이 여러 개 포착됐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태풍 경로에 있던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 처리 시설 등에서는 오염수 누수를 알리는 경보가 총 10차례 울렸다고 하죠. 도쿄전력 측은 오염수 누수를 감시하는 기기에 빗물이 유입되거나 기기 고장으로 인한 오작동 경보였다고 하는데 이 말 또한 그대로 믿을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경보 영향으로 건물 지하에서 오염수를 퍼올리는 작업이 17시간 넘게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으니 실로 문제가 하나둘이 아닙니다.


출처 - 세계일보


예전부터 환경 단체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폐기물 관리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우려를 표한 바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관리 방법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었죠. 후쿠시마에 있는 폐기물 임시 보관소는 1300여 개이며 야적장까지 합하면 13만 7000여 곳에 달하는데 현실적으로 이렇게 쌓아놓기만 한 방사성 폐기물들이 제대로 관리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때는 구 소련 정부가 원전 사고 지점을 중심으로 30km 내부로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게 땅을 국유화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사고 후처리를 하고 폐기물을 모은 다음 돔을 씌워 바깥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처리했죠.

출처 - 탈핵신문

 

하지만 석관이 노후되어 방사성 물질 누출이 우려되자 새 덮개를 제작했습니다. 덮개는 설계수명 100년으로 높이 110미터, 폭 260미터, 길이 16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입니다. 덮개 바닥 면적은 축구장 12개 규모이며, 사용된 철근의 양이 에펠탑 3배에 달한다고 하죠. 새 덮개는 방사능 피폭과 안전 문제로 체르노빌 핵발전소 옆에서 조립되었으며, 유압장비를 이용해 체르노빌 발전소 위로 옮겼습니다. 새 덮개 공사가 완료됨에 따라 석관과 구조물 사이 틈새를 메우고, 노후 구조물을 해체하는 과정을 진행해 올해 7월 10일 드디어 가동에 들어갔죠.

 

출처 - 중앙일보

 

그러니 방사성 폐기물을 그저 자루에 담아 쌓아놓기만 했을 뿐인 일본 정부의 대처는 무려 30년 이전에 벌어진 공산국가 소련 정부만도 못한 수준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렇게 무능하게 대처한 것도 모자라 후쿠시마 지역 농산물을 먹어서 응원하자, 후쿠시마 주민을 복귀시키겠다, 2020 올림픽은 안전하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소리만 지껄이는 악행까지 저지르고 있습니다. 폐기물이 담긴 자루가 얼마나 유실됐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주제에 일본 환경상은 "환경에 영향이 없다"는 식의 주장을 하여 전 세계의 지탄 대상이 됐습니다.


출처 - 환경일보


방사성 폐기물 유출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 폐기물은 일본 하천과 태평양을 거쳐 우리나라 해역으로 유입될 수도 있습니다. 짧으면 석달, 길면 여섯 달 후에 부산, 진해, 울산, 진주 이쪽의 어패류, 갑각류, 해조류 등에 방사성 물질이 쌓이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에 우리나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별도 대응팀을 꾸려 후쿠시마 핵발전소 방사성 폐기물과 오염수 여향에 대한 조사에 나섰으며 현재 전국 19개 지역에 설치돼 있는 방사능 감시망도 실시간 점검하고 있습니다.

 

출처 - 미래일보

 

지난 1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우리 정부가 '국외방사능비상사태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할 수 있도록 하는 ‘원자력안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김성수‧김해영‧남인식‧박재호‧우원식 의원과 정의당 이정미‧추혜선 의원,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 무소속 손금주 의원이 공동발의에 참여했습니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가 공개한 제한된 정보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번 하기비스로 인해 폐기물 유출이 현실로 드러났기에 이에 국회가 대응한 겁니다. 한편 세계보건기구 (WHO) 서태평양 지역총회에서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와 관련해 일본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경각심을 갖고 대응해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내년부터 WHO 집행이사국으로 내정된 우리나라는 이런 국제기구들을 통해 일본의 후쿠시마 대책에 관해 국제적인 압력을 더욱 구체화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출처 - 그린피스

출처 - KBS

 

일본의 방사성 폐기물 위협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단순히 태풍만으로도 우리의 삶의 터전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원전의 위협 또한 성큼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나라의 탈원전 논의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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