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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일본 경제보복 시국에 생각하는 약산 김원봉

by 생각비행 2019. 7. 11.

호국보훈의 달이었던 지난 6월 뜬금없이 약산 김원봉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추념사 원고가 제공되자 언론은 일제히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는 부분에 주목했습니다. 김원봉을 언급한 내용은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이 집결한 광복군이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고, 광복 전 미국 전략정보국과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던 것이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는 것일 뿐 김원봉에 대한 재평가나 서훈에 대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오히려 보수에 가까운 추념사 내용이었죠.


출처 - 청와대


정상적으로 글을 읽고 의사소통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의 추념사는 현충일을 맞이하여 우리 군의 모체여야 할 광복군의 한 사례로 김원봉의 조선의용대를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추념사에 언급된 이름도 김원봉뿐 아니라 채명신, 이상룡, 이회영, 김구 그리고 얼마 전 유해를 모셔온 독립지사들의 이름이 호명되는 와중에 나왔을 뿐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애국 앞에 좌우가 따로 없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적어도 추념사 직후까지는 언론들도 그렇게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현충일 오후부터 갑자기 김원봉 논란으로 각종 기사가 뒤덮이기 시작했습니다. 기레기의 선봉장은 역시 《조선일보》였습니다.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김원봉을 공식 평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호들갑과 더불어 또 색깔론을 들먹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자유한국당에서 호국영령 앞에서 김원봉 헌사를 하다니 귀를 의심했다는 논평이 나왔습니다. 이때부터 대부분의 언론사가 현충일을 김원봉 논란과 색깔론으로 도배하다시피 했습니다.


출처 - JTBC


그런데 이상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다가 폐기한 국정 역사교과서는 김원봉을 무려 12차례나 언급하면서 공적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으니까요. 자유한국당 소속 시장이 선출된 경남 밀양시는 김원봉 생가터를 사들여 의열기념관도 만들었죠. 심지어 지난 2015년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암살〉의 국회 상영회 때 만세 삼창을 한 건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었습니다. 영화 〈암살〉에는 배우 조승우가 약산 김원봉 역할로 나와 활약했죠. 이런 정황을 미루어서 본다면, 한마디로 자유한국당은 보수는커녕 기회주의자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짜 보수이기라도 하다면 몇 년 전에 자신들이 높게 평가했던 김원봉에 대한 평가를 손바닥 뒤집듯 이렇게 폄훼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김원봉 비판에 열을 올리는 와중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대한민국 국군의 진정한 뿌리라며 백선엽을 면담하기까지 했습니다. 백선엽의 뿌리는 일본 제국주의 장교입니다. 박정희처럼 만주국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장교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사람이었죠. 자유한국당은 대한민국 국군의 진정한 뿌리가 일본 제국군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나 봅니다. 뼛속까지 친일파들이요, 일본 입장에서 볼 때 견마지로의 귀감이라 할 만합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약산 김원봉에 대한 평가가 이토록 극과 극으로 대립하는 와중에 청와대는 졸지에 김원봉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이 현재 법적으로 불가능함을 얘기해줘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현재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조항상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 및 적극 동조한 것으로 판단되거나 정부 수립 이후 반국가활동을 한 경우 포상에서 제외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죠.


출처 - 경향신문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광복회 회장은 인터뷰를 통해 대한민국은 약산에게 훈장을 줄 자격이 없다고 일갈하고 나섰습니다. 국가보훈처의 저 규정 역시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친일 기회주의자들이 군사독재 시절에 만든 것이기 때문이죠. 광복회 회장은 약산 김원봉을 붙잡고 늘어지며 모욕하는 자유한국당 같은 친일 세력이 아직도 살아 있는 상황에서 감히 대한민국 국군의 모체가 광복군이라고 할 수 있겠냐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광복회 회장은 독립유공자 서훈을 1945년 8월 15일 이전 행위만으로 평가하도록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후에 어느 정부 수립에 기여했느냐로 서훈 자격이 갈린다면 정부 수립 공로 훈장이 되어야지 독립유공자 서훈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였습니다.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에 대한 찬성 입장은 42.6%, 반대 입장은 39.9%로, 이념에 상관없이 독립유공자를 평가해야 한다는 쪽이 좀 더 많았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약산 김원봉은 해방 후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1947년 청계천 화장실에서 체포됩니다. 불세출의 독립군 지도자가 화장실에서, 그것도 고문 기술자이자 악질 친일 경찰이었던 노덕술에게 붙잡힌 겁니다. 친일의 최전선에 섰던 노덕술은 미군정 밑에서 좌익분자를 색출하는 애국경찰로 이미지를 쇄신하고 배를 갈아탄 것입니다. 그런 노덕술에게 뺨을 맞고 갖은 수모를 당한 김원봉은 사흘 밤낮을 통곡했다고 하죠.


“조국해방을 위해 중국에서 일본놈들과 싸울 때도 한 번도 이런 수모를 당한 일이 없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이런 악질 친일파 경찰 손에 의해 수갑을 차다니… 이럴 수 있소. 내가 여기서는 왜놈 등쌀에 언제 죽을지 몰라.”


출처 - EBS

 

항일독립투쟁단체였던 조선의열단의 창단 100주년을 맞아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이 본격적인 기념사업 추진에 나섰습니다. 지난 9일 항단연과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등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추진위) 발족식을 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송기인 신부(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를 비롯해 명진 스님(평화의길 이사장), 영담 스님(전 조계종 총무원 부원장), 지선 스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상근 목사(KBS 이사장), 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등이 추진위원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이희훈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함세웅 신부는 "100년 전 의열단 선조들은 조선독립을 위해, 만민의 평등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나섰다"며 "과연 지금의 우리는 이 땅의 정의와 평화를 지향하면서 정말로 목숨을 바칠 수 있는가"를 질문했습니다. 평화의길 이사장 명진 스님은 "오늘 행사 자리는 조선의열단 2기 출범식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일제 36년 동안 일장기를 흔들면서 천왕폐하 만세를 부르던 사람들이 미군정이 실시되니 '성조기는 영원하라'며 일신의 양명을 추구했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시작됐다"고 일갈했습니다. 아울러 "도덕이 무너진 나라에서 나침반도 없이 지금까지 왔지만 일본의 경제적 침략이 노골화되는 이즈음에 의열단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게 된 것을 다시 한번 뜻깊게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한일 간 외교 문제가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이어지며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시국에 언제까지 색깔론과 북한 타령을 되풀이해야 할까요? 친일파들의 후손 대신 독립유공자들이 온전히 평가되는 날은 언제쯤 올까요? 약산 김원봉 선생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 부끄러운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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