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잘 보내셨습니까? 휴식을 취하며 자식된 도리 그리고 부모된 도리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 분도 계실 겁니다.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아낌없이 도움을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겠지만, 그러다 보면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뭔가를 강요하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되지는 않는지요? 예전에 자신이 입시지옥의 피해자였으면서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 하는 격으로 자식을 생지옥으로 밀어넣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드라마 〈SKY 캐슬〉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건 부모로서 가진 그런 양가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선 〈SKY 캐슬〉조차 뛰어넘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자식으로서도, 부모로서도 갑갑한 마음뿐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혼란스럽습니다.
출처 - JTBC
“쓰앵님, 우리 예서 서울의대 보내야 돼요.”는 〈SKY 캐슬〉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일 겁니다. 이 드라마로 입시 코디를 찾는 학부모들이 늘어났다고 하죠. 공식 명칭은 '진학지도'라고 하는데 학원법에 있는 엄연한 정식 학원입니다. 물론 그 수는 아주 적습니다. 하지만 70%에 해당하는 학원이 강남, 서초구에 몰려 있습니다. 이런 곳의 진학지도 비용은 1시간은 30만 원에 달한다고 하니 어지간한 변호사 사무실의 상담료보다도 비싼 수준입니다. 이 때문인지 잘 버는 대치동 컨설팅 학원은 한 달에 합법적으로 50억 원을 벌 수 있다는 얘기가 풍문으로 떠돕니다. 그나마 이것도 합법적인 테두리 안의 이야기일 뿐 대부분의 컨설팅 학원은 훨씬 비싼 비용을 받고 암암리에 특별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고 하죠. 이렇게까지 부모가 교육에 목을 매는 이유는 학벌에 바탕을 둔 전문직을 부를 대물림하는 수단으로 교육을 왜곡해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런 현상은 불법의 영역을 넘나들기도 합니다. 〈SKY 캐슬〉의 예서처럼 의대를 보내려고 성균관대 의과대학 학장 출신 교수가 문과인 자신의 딸을 의대에 편입시키기 위해 자신이 가르치는 대학원생들을 동원한 사실이 교육부 조사에서 드러나기도 했죠. 또한 부산의 의대 교수가 의대 편입시험 면접 문제와 답안을 빼돌렸다가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의대 편입시험을 응시한 자기 아들에게 대를 이어 의사를 시키기 위해서였답니다. 심지어 이 교수는 대학 직원과 짜고 일을 벌였습니다. 사건은 법원의 정식 재판으로 넘어갔고 아버지인 의대 교수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해임됐죠. 아들을 의사로 만들겠다고 불법을 저지르다 자신의 교수직마저 잃은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부모의 강요에 휩쓸려 하라는 대로만 하며 자란 아이들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한 설문에 의하면 취업할 때는 취업 코디가 필요하다고 답해 혼자서는 취업도 힘들고 심지어 취업을 할 수 있다면 편법 또는 불법 활동도 상관없다는 인식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얼어붙은 고용 시장의 어려움이라는 상황도 일부 작용했겠지만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 과잉 사랑의 결과 자식이 부모와 연을 끊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의대 인턴까지 끝낸 아들이 엄마한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당신 아들로 산 세월은 지옥이었다. 이제 당신과 인연을 더 이상 이어나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나를 찾지 말아달라"며 그 길로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하죠. 아들이 사라지자 부모가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아들과 아들의 주변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는 아이들의 스트레스의 근본적인 원인이 학업이 아니라 부모라는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게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얘기"라고는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 자식을 위한 얘긴지,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모 입장에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출처 - JTBC
부모의 어긋난 사랑은 비단 대한민국의 상황만은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비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죠. 미국판 〈SKY 캐슬〉로 불리는 미국 명문대 입시부정 사건을 아시는지요? 유명 TV스타와 할리우드 배우, 기업 CEO 등이 연루돼 조지타운, 스탠퍼드, 예일, UCLA 등 미국 명문대에 자식들을 체육특기생으로 부정 입학시킨 게 들통난 사건입니다. FBI의 조사를 받은 입시 브로커는 무려 761 가족의 입시 부정을 도왔다고 말해 공분을 샀습니다. 이 입시부정 사건에서 회당 1만 달러씩 받고 수십 차례 대리시험을 치른 하버드 출신 입시 컨설턴트는 징역 20년형을 받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우리나라만큼이나 학벌에 목을 매는 중국 부호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직접 뇌물을 써서 스탠퍼드 등 명문대에 자기 자식들을 불법 입학시켰습니다. 한 사람이 쓴 최고 뇌물 액수는 76억 원에 이르며, 현재 밝혀진 전체 뇌물 액수만 283억 원에 이르고 점점 더 불어나고 있다고 하죠. 뇌물로 딸을 스탠퍼드 대학교에 입학시킨 중국 부호는 틈만 나면 "자신의 능력으로 해내지 않는 아이들을 정말 싫어한다. 그런 아이들을 만나면 따끔하게 혼내준다."고 말해온 터라 주변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그 딸은 스탠퍼드에서 퇴학당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대 입시 부정 사건이 드러났을 때 당사자인 정유라가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부모를 원망해"라는 망언을 페이스북에 올려 국정농단이 국민들 사이에 각인됐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백년지대계인 교육, 과연 부모는 아이를 위해,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비행이 출간한 책 《이제는 대학이 아니라 직업이다》의 저자 손영배 선생님은 '명문대 → 대기업 → 중산층 코스'가 몰락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1347년부터 1351년 사이 유럽에 흑사병이 돌았다. 흑사병 증상을 표현한 노래 〈Ring Around the Rosie〉가 아이들 사이에 돌았다.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0만 명을 집어삼켰다. 무시무시한 흑사병이란 단어를 보면 생각나는 독일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동화다.
하멜른이라는 마을에 들끓는 쥐 떼를 피리 부는 사나이가 큰돈을 받기로 하고 오로지 피리소리 하나로 몽땅 유혹해서 호수에 빠뜨려 없애주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마을의 아이들을 피리소리로 유혹해 언덕 너머로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나라 중산층의 몰락이 떠오른다. 냉철하게 미래를 계획해야 할 시기에 자식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살게 하겠다는 마음 때문에 마치 ‘교육에 몰빵해~’라는 피리소리를 들은 것처럼, 그 길 끝에 일어날 결과를 생각하지 않은 채 무조건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중산층이라 불렀던 사람들의 몰락 이야기는 늘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명문대를 포함한 대학을 나와 남들이 알아주는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 들어가 열심히 일하면서 대출받아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낳고, 대출금과 아이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기러기 아빠·엄마 생활도 감수한다. 그러다 나이 50을 전후해서 회사에서 갑작스레 밀려나면 예전엔 자신을 가치 있게 해주었던 스펙이 오히려 장애가 되어 재취직도 하기 어렵다. 그러다 결국은 자영업에 돈을 대 실패하거나 택시운전을 한다. 아니면 아이들 결혼을 위해 하나 있던 집을 싼값에 내놓고 부모는 전세나 월세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악순환을 낳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자녀에게 드는 사교육비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자녀의 결혼비용이다. 거기에 더하여 자신이나 배우자가 암 등의 질환으로 투병생활이라도 하게 되면 노년기에는 절대 빈곤층으로 떨어져 ‘실버 파산’을 맞기도 한다. 이 단계까지 온 사람들의 삶이 흑사병으로 인해 붕괴된 유럽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과연 여러분한테는 부모의 저런 희생이 멋지게 보이는가?
_《이제는 대학이 아니라 직업이다》 194~196쪽에서
1990년대 초까지 대학생들에 대한 인식과 지금 대학생들에 대한 인식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학부모가 인정해야 합니다. 학벌과 신분으로 대접받던 세상에서 직업으로 평가받는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요즘 청년 취업률이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대학졸업자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모두 포함해도 취업률 60% 달성이 어려운 현실입니다. 대학을 고집하는 선택이 오히려 자식에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부모가 큰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적절히 해주어야 합니다. 대학은 꼭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교육열이 아이들을 창의성도 없고, 협력도 모르고, 스스로 인생도 결정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야 할 시기입니다. 온당하지 않은 시스템과 부모의 의식, 그리고 학생 자신이 바뀌지 않는 한, 무능한 명문대생은 계속 수를 늘려갈 것입니다. 주변에서 아이들을 남 보기에도 버젓하게 잘 키운 집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기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게 두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슬슬 독립시킬 준비를 한다는 것이죠. 집에서 내보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고등학교 선택부터 아이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진지하게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부모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연구 조사에 의하면, 학생들의 진로 결정에 영향력을 끼치는 1순위는 단연 부모입니다. 다음이 인터넷, 언론 순입니다.
인생의 롤모델로서 부모의 역할이 아이의 인생에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러니 먼저 학부모가 달라져야 합니다. 대학을 꼭 나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진학이 아니라 아이들의 진로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대학이 아니라 직업이 중요한 시대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중퇴하고도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친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가 이미 성공적인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취업이나 창업 그리고 창직 등 다양한 진로의 출구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필요를 느낄 때 대학에 진학해 학습을 이어나가는 길도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어야 합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스펙과 고학력으로 취업하던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능력이 우선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그러므로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추어 직업을 찾고, 그 직업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진짜 공부를 시작할 때입니다. 다가오는 미래의 직업 세계에 대한 준비는 '진학'이 아니라 '진로'라는 사실, 가정의 달에 학부모와 학생들이 함께 생각해봄직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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