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청계천-을지로 재개발인가, 전면 재검토 방향은?

추운 날씨지만 먹는 즐거움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이야말로 냉면의 계절이라고 말합니다. 3일은 춥고 4일은 미세먼지가 가득한 요즘 같은 때에는 맑고 심심한 평양냉면이 생각난다는 사람들의 얘기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즐거움을 계속 누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5대 평양냉면집으로 꼽히는 을지로의 을지면옥이 청계천-을지로 일대 재개발로 인해 철거 위기에 처했다가 시민들의 반발이 일자 박원순 시장이 전면 재검토를 약속하면서 상황이 오락가락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이 문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을지면옥은 종로구 장사동, 중구 을지로동, 광희동 일대 세운재정비 촉진지구 3-2구역에 속해 있습니다. 이 구역은 2017년 사업시행인가를 받았으며 관리처분계획을 통과하면 바로 철거에 돌입하여 인근 공구상 거리처럼 사라지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미사일,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던 관록 있는 기술자들이 즐비했던 청계천도 재정비 사업으로 사라졌고, 서울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맛집이 그득했던 피맛골도 사라졌죠. 

 

그런데 서울 중구 세운 3구역 재개발 계획에 의해 사라지게 될 노포의 철거 논란이 비화하자 시민들의 반발이 생겼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입장을 바꿔 서울시가 사업을 재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이때부터 을지면옥과 재개발 시행사 사이에 진실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신종전 한호건설 회장은 지난 19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 통화에서 "을지면옥 땅 소유주와 5000만 원 중후반대에서 보상가를 협의했는데 3-2구역 사업시행인가가 결정된 2017년 4월 이후 을지면옥 측이 입장을 바꿔 평당 2억 원을 요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신 회장의 얘기에 따르면 3-2구역 토지 소유주는 60여 명이며 을지면옥 주인이 소유한 지분이 약 11퍼센트로 가장 넓다고 합니다. 이 주장이 맞는다면 을지면옥 땅 주인은 300억 원이 넘는 토지보상금을 요구한 셈이 됩니다.


출처 - 중앙일보


신 회장은 재개발 지연 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사업구역 내 10평 미만의 작은 땅을 가진 영세 토지주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재개발 지연으로 은행융자 부담이 커진 영세 지주들이 토지경매를 당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살한 사건도 있다"며 "이런 사람들의 어려움도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편 이병철 을지면옥 대표는 "한호건설과 접촉한 사실이 없다"면서 "한호건설 측 주장은 95% 이상 거짓"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 대표의 부인 홍정숙 씨(을지면옥 공동운영)는 "(우리가 평당 2억 원을 요구했다는) 기사가 나온 뒤 인터넷에서 댓글로 불매운동 얘기도 나오고 있다"며 "을지면옥이 영업 피해를 보면 책임질 것인가"라고 얘기했습니다. 을지면옥은 철거 전까지 현 위치에서 영업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세운 3-2구역은 토지 소유주의 75% 이상이 재개발에 동의해 합법적 철거가 가능하지만 노포 철거에 대한 반대 여론과 이에 따른 박원순 서울시장의 재검토 발언으로 제동이 걸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개발에 찬성한 3-2구역 중소 토지 지주들은 을지면옥 부지의 공동 소유주인 이병철 대표와 부친 이윤상 선대 회장이 과거 재개발에 찬성했다면서 《머니투데이》에 정비사업계획 서면동의서를 보내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이 맞물려 있다 보니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누구의 말이 맞고 누구의 말이 그른지 판단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을지면옥, 을지다방, 통일집, 양미옥, 안성집 등 을지로를 대표하는 노포에 대한 향수가 있는 사람들은 재정비 사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합니다. 애초 의견 수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업이 혼란을 일으키고 있고 이는 대표적인 보여주기식 행정의 결과임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반면 수년간 서울시가 진행해온 사업을 이제 와서 뒤집을 수 있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복잡한 사회에서는 모두가 만족하는 사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전문가들은 대선 행보를 의식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성급하게 정책을 추진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서울시장을 세 번 하다 보니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조급함 때문에 반복해서 나오는 문제가 많다는 얘깁니다. 박원순 시장 입장에서는 뭘 해도 비판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력한 대선 주자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세 번을 연임하면서 서울시장으로서 시민에게 각인될 만한 상징적인 정책이나 성과가 없다는 점이 박 시장으로 하여금 강박에 빠지게 하는 측면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출처 - 한겨레

 

하지만 분란이 일어나는 사업을 마냥 추진하기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공론화하여 최선의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편이 좋다고 봅니다. 박원순 시장이 지난 21일 발표한 새 광화문광장 국제설계공모전 당선작에 대한 논란도 이를 방증하는 사례라고 봅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반발에서 잘 드러났듯 관계 부처와 합의되지 않은 주요 정책을 너무 성급하게 발표한 측면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7월에는 박원순 시장이 싱가포르에서 "여의도를 통으로 재개발하겠다"고 발언하여 진의와 관계없이 서울 집값 폭등의 빌미가 된 일도 있었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박 시장은 보류, 중단, 시민 의견 수렴 등을 약속하곤 했습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이번에 논란이 된 세운재정비촉진지구의 경우 이 지역 고유의 산업생태계 보존이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봅니다. 세운상가 골목은 한국전쟁 이후 공구상들이 모여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전초기지였습니다. 이제는 미디어 아트를 포함한 현대 예술을 하는 젊은이들의 착상을 구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노련한 기술자들이 포진한 곳입니다. 젊은 아티스트들이 당혹감을 감출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을지로 일대를 헐어버리고 초고층 주상 복합을 세우겠다는 의도는 단순히 맛집, 노포, 공구상을 쫓아내는 게 아니라,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무수하게 뻗어 있는 과거와 미래의 문화유산을 송두리째 박살 내버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지요.

 

출처 - Visit Seoul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작가의 작품들을 구현해낸 엔지니어인 이정성 장인도 세운상가에 입주해 있는데, 서울시가 지난해 세운상가를 발전시키고 재생하는 데 힘써 달라며 16명의 장인까지 뽑아놓고는 뒤에서 헐고 들어오고 있다며 비판의 날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는 지금 서울시가 하는 건 재생이 아니라 재개발이며, 박원순 시장이 시민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앞으로는 도시재생을 외치며 뒤로는 불도저를 보낸 셈이었기 때문이지요.


출처 - 중앙일보


피맛골의 전철을 보면 을지로 재개발이 진행될 경우 그 말로는 명확합니다. 임대료를 비싸게 받는 고층 빌딩이 줄줄이 생기고 각종 프랜차이즈가 꽉꽉 들어차겠죠. 그런 곳 어디에도 전통과 문화가 깃들 수는 없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전통과 문화를 일부러 뭉개면서 왜 우리에게 외국의 OO 같은 문화 산업, 문화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건지 당최 모르겠습니다. 전문가들은 도심 재개발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재개발을 전제로 재개발 구역 지정을 해놓은 상태에서는 똑같은 문제가 매번 반복된다는 겁니다. 전면 재개발 방식으로 진행할 일이 아니라 개별 건물을 고쳐 쓰거나 재생을 원하면 그렇게 해주고 개발을 원하는 경우 기존 재개발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의 폭을 열어놔야 한다는 얘깁니다. 기존 도시가 가지고 있던 골목길, 조그만 필지, 노포들을 밀어버리고 기존에 형성돼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망치는 재개발은 최적의 방식이 아닙니다. 재개발 방식도 재생 시대에 걸맞게 바뀌어야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6일 서울 청계천, 을지로 일대 재개발을 전면 재검토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개발로 노포들이 사라질 우려가 있으니 보존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를 하도록 요청할 것이라고요. 공구상가 상인들의 주장도 충분히 일리가 있으니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새로운 대안을 발표하겠다고요. 서울시가 정말로 전면 재검토 하고 노포와 문화를 살려 나가는 도시 재생이 가능한 방향으로 진행하는지는 앞으로 지켜봐야겠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최대 업적으로 포장된 청계천 사업을 기억하실 겁니다. 2007년 대선 당선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던 사업이었죠. 하지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사업은 복원이 아닌 복개 위주의 토건, 개발 사업이었습니다. 생태 복원이나 역사 복원과는 거리가 멀었죠. 이 때문에 청계천을 거대한 콘크리트 어항이라거나 시민의 혈세가 흐르는 강이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어쩌면 청계천 공사를 2년 남짓에 끝낸 경험을 바탕으로 말도 안 되는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인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800억 원 가까운 예산을 쏟아부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한강르네상스 사업 역시 기억하실 겁니다. 여의도 특구 둔치를 온통 콘크리트로 도배했죠. 한강의 자연성을 회복한다던 목적과 달리 시민들은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사실상 개발 사업으로 인식했습니다. 실제로 사업비의 90% 이상이 토목공사 비용으로 사용됐죠. 서울 시민은 이명박, 오세훈 전 시장과 같은 개발 위주의 사업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게 밀어버리고 건물을 올려봐야 돈은 있는 자들만 벌고 우리가 향유하던 옛 정취와 문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러므로 박원순 서울시장은 널뛰기식 행정을 멈추고 도시재생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관점을 제시해야 합니다. 아울러 주민과 더 폭넓게 소통해야 합니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없다면 부정 여론이 일어날 때마다 정책이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도시재생 관련 사업은 초기 단계에서 주민들과 소통하며 여론을 수렴하지 않으면 아무리 방향과 원칙이 올바르다 해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막대한 자금을 들여 세운상가를 리모델링하고서는 양옆에서 날개처럼 받쳐주던 업체들을 다 철거해버리는 것이 어떻게 도시재생일 수 있겠습니까? 개발이 진행되고 논란이 일 때마다 담당 구청 직원이 바뀌어버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부디 이제라도 서울시는 이해관계자들의 이견을 조율하여 정비할 곳과 보존할 곳을 잘 구분함으로써 산업생태계가 고사하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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