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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헌정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 발의 - 응답하라, 국회!

by 생각비행 2018. 11. 22.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요 며칠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전국 법관 대표들은 경기도 고양에 있는 사법 연수원에서 정기회의를 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에 관해 법관 탄핵을 검토해야 한다는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법관 대표들은 의견서를 통해 이 사법 농단이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법관들이 스스로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들을 탄핵해야 한다고 요구한 겁니다.


출처 - 뉴시스


이 발의가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자 회의장에서는 1시간이 넘도록 찬반 공방이 오갔습니다. 반대 의견도 만만찮았지만 1회 수정을 거친 이후 참석 법관 대표 과반의 찬성으로 최종 가결되었습니다. 법관들 스스로 반헌법적인 요인들을 탄핵해 국민을 설득하려는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대체 누가 앞으로 법원의 판결에 권위를 부여하겠느냐고 판단한 겁니다. 의혹에 연루된 법관이 누군지까진 삼권분립 위배를 우려해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았지만 사법농단이 명백히 반헌법적 행위라는 점을 법을 다루는 법관들이 인정했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이와 연관된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설치 등에 대한 법학자 등 전문가들의 의견은 일단 긍정적입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1일부터 16일까지 대학전임교수인 법학자 70명을 대상으로 사법농단 특별재판부의 위헌 여부와 그 건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구성이 위헌이 아니라는 응답이 71.4%로 나왔습니다. 특별재판부도 현직 법관으로 구성된 재판부이기에 문제가 없고, 사법농단에 얽히지 않은 객관적인 판사들이 재판을 진행해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근거가 제일 많았습니다. 현재 대법원은 사법농단의 핵심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을 신설 형사합의부에 배당하는 등 나름의 자구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국민의 불신이 큰 상황입니다. 사법부가 사법농단을 명명백백히 진상규명하기 위해서는 특별재판부 도입이 합리적이고 불가피한 대안으로 보입니다.


출처 – SBS 유튜브


문제는 다시 국회입니다. 공이 입법부인 국회로 넘어왔기 때문입니다.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인 법관을 탄핵하려면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과반이 찬성해야 의결됩니다. 재적의원 과반수 발의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한 대통령 탄핵에 비하면 요건이 낮은 편이죠. 박근혜 탄핵 때와 마찬가지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이후 헌법재판소 심판을 통해 탄핵 여부가 결정됩니다.


출처 - SBS


문제는 국회가 이 탄핵을 진행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국회가 예산안 심사 정국에 돌입하고 있어 여야 간에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국회 보이콧에 나섰다가 가까스로 정상화에 합의한 상태죠. 국회가 어지러운 상황인데 과연 법관 탄핵 절차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특히 사법농단의 원흉인 박근혜 정권의 근원인 자유한국당은 이번에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끝나자 사법농단을 바로잡기 위해 법관 탄핵소추안 의결을 촉구하기로 의견을 모았죠.


출처 – SBS 유튜브


같은 날 검찰과 법원 등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당시 사법 행정에 비판 목소리를 낸 법관에 대해 보복성 좌천 인사를 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특정 성향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가하기 위해 작성됐다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구체적인 내용이 처음으로 확인된 겁니다. 양승태는 퇴임 당시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공언한 바 있죠. 하지만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라는 문건에 의하면 양승태 사법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법관의 인사 평정 순위를 낮춰 지방법원으로 전보하는 계획 등이 담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해당 문건에 양승태가 손으로 직접 결재한 사실까지 확인됐습니다. 한 입으로 두말을 했으니,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리던 법조인으로서 부끄러워 해야 할 뿐 아니라 처벌받아 마땅합니다.


출처 – SBS


굴곡이 많은 우리 역사에서 인혁당 사건과 같이 법원의 치부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법부는 우리 사회에서 최루의 보루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사법부는 스스로 자신의 목을 치는 진정성을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사법농단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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