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만연한 대리수술, 언제까지 자정(自淨)만 기다릴 텐가?

10월 6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깜짝 놀란 분이 많으실 줄 압니다. 부산에서 버스운전을 하던 강 씨는 간단한 어깨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고 뇌사판정을 받아 투병하다 지난 9월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이 수술을 집도한 사람이 의사가 아니라 의료기기 영업사원이었다는 사실을 보고 놀라셨을 겁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런 대리수술이 일회성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아니라 수술실 안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해 사회적 충격을 안겼죠.


출처 - SBS


살면서 크고 작은 수술을 받는 일이 한 번쯤은 생기죠. 그만큼 우리 삶에서 의사와 병원은 중요합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중요한 직업이다 보니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오랜 공부와 수련의 생활을 거치는 것이 기본입니다. 인생의 상당한 시간을 의사가 되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까닭에 의사가 되면 고소득을 보장받는 것이 합당한 측면이 있다고 다들 생각합니다. 환자는 의사를 신뢰하기에 수술대 위에 오릅니다. 자신의 신체를 타인에게 맡기는 것은 상당한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경력이 있는 의사가 수술할 것으로 생각하고 수술대에 올랐는데 의료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 없는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집도했다면, 이해나 납득은 고사하고 크나큰 배신감이 드는 게 인지상정일 겁니다. 그런데 의료계에서 왜 이런 대리수술이 행해지는 것일까요?


출처 - 한국일보


결국 돈 때문입니다. 의사들과 의료기기 업체 모두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런 불법을 자행합니다. 의료기기 업체는 일종의 리베이트 영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고가인 자신들의 의료기기를 구매해주면 그 영업사원들이 수술을 대리해주는 방식입니다.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은 대리수술을 하고 회사로부터 수당을 받습니다. 할 줄 아는 수술이 많아지면 월급 자체가 오르기 때문에 대리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제보자 중 한 명은 하루에 세 건이 넘게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집도하는 경우도 많다고 폭로했습니다. 심지어 영업사원은 의사는 아니지만 이미 수백 차례 수술을 집도했기 때문에 수련의를 막 마치고 부임한 전문의보다 자신이 수술을 훨씬 잘할 거라는 오만한 말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의사들은 의료기기 영업사원에게 수술을 맡기고 그 시간에 환자 진료를 보거나 다른 수술에 들어갈 수 있으니 두 배,  세 배로 돈을 벌 수 있는 셈입니다. 

 

출처 - 한국일보

 

규모가 큰 병원이라면 마땅히 고용해야 할 의사 한 명의 역할을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해주는 셈이 되니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억에 이르는 비용을 이익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돈이라는 공통의 이익 앞에 의료계가 짬짜미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마취되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몸을 의사가 여는지 간호조무사가 여는지 영업사원이 여는지도 모르고 수술이 끝나면 수술비를 내고도 연신 고맙다고 말해왔던 환자들만 바보가 된 꼴입니다.


출처 - SBS

 

의료계에 만연한 대리수술의 가장 큰 문제는 당연하게도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이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의학을 전공한 적이 없으므로 체계적인 지식 없이 영업 신입 시절 수술실에 들어가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거나 유튜브에 올라온 수술 영상을 보고 익힌 뒤 수술실에 들어갑니다. 위험한 수술이 아니라면 수술 기술 자체는 경험을 쌓을수록 실력도 늘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술 과정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하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사례가 발생할 때 의사가 아닌 이들에게 제대로 된 대응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이번에 부산에서 검거된 의료기기 영업사원은 의료계에서 통칭 금손이라 통하며 의사들로부터도 인정받는(?) 수술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지만, 간단한 어깨 수술 중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죠.


출처 – SBS 유튜브


대리수술의 다른 문제는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입니다. 대리수술로 고발이 된다 해도 의사들은 집행유예나 벌금형 수준에 그칠 뿐입니다. 의사면허가 정지된다 해도 2~3년 쉰다 생각하고 다시 면허를 되살리는 신청을 하면 99.99% 정식 면허로 병원에 복직하는 게 통례일 뿐 아니라 문제를 제기한 공익제보자들이 역으로 고소당해 받는 형량이 더 높을 정도라고 하죠.


출처 - 국민일보


문제가 불거지자 의사협회는 대리수술 방지를 위해 내부 고발 활성화와 실태조사 정도를 대안이랍시고 내놓았습니다. 환자들과 정부가 바라는 수술실 CCTV 설치 방안에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된다는 이유랍니다. 과연 일베에서 두 손 들고 환영받던 의협 회장다운 태도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의료계가 자정을 얘기하려면 적어도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른 의사 회원과 병원에 대해 스스로 보건복지부에 면허 취소, 영업 정지, 회원 자격 박탈 등의 강력한 처벌을 한 뒤에나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외부 인사를 포함한 진상조사를 통해 병원 내 무자격자의 불법 의료행위와 이를 교사한 행위가 어느 정도 만연한지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겠죠.

 

출처 - 한의신문

 

미적거리는 의료계의 대응에 결국 의료 소비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소비자-환자 단체(소비자시민모임, 한국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C&I소비자연구소)는 지난 10일 의료 기관 대리수술 관행이 일부 의사들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 정형외과, 성형외과 등지에서 지속된 관행임을 비판하고 검찰의 안일한 대응과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소비자-환자 단체는 "정부와 국회는 더 늦기 전에 유령수술의 근원적 방지책인 수술실 CCTV 설치와 의사면허 제한 관련한 입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검찰은 유령수술에 대해 사기죄와 함께 상해죄로도 반드시 기소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 시사플러스

 

한편 지난 15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불법 PA(Physician assistant) 양성을 묵인한 대한의학회와 대한병원협회는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대리수술이 사회적인 문제로 불거졌는데도 일부 학회에서 PA 양성을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PA는 의사의 지도 및 감독하에 의료 관련 업무를 행하는 진료 보조 인력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가 직접 하는 행위를 PA가 하는 것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있죠.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대리수술은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의사가 아닌 사람에게 맡기고 환자를 기만한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점에서 PA 문제와 다를 바가 없다"며 "결국 PA 문제는 대리수술 문제와 같은 잣대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이러한 의료계의 현실을 보면 의사들이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이 어깨너머로 혹은 유튜브로 익힌 수술 실력만도 못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토록 심각한데 의사의 진료에 대한 권위와 인정을 어떻게 요구할 수 있는 건지 참으로 괘씸합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무색해지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재발 방지 노력도 없이 수술실 CCTV를 거부하고 의사들을 믿어달라고 하는 요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기 치다 들킨 사기꾼들도 이렇게 뻔뻔하진 않을 겁니다.

 

출처 - MBC

 

19대 국회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은 수술이나 환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CCTV 촬영을 의무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의료계의 반대로 폐기되었죠. 20대 국회에서 관련 의료법 개정안 발의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대리수술을 시행한 의사의 면허를 영구적으로 박탈하는 등 처벌 수위 강화, 해당 의사 실명 공개, 소속 의료기관에 대한 관리 책임 추궁, 해당 의료기관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정부와 국회가 더 늦기 전에 근본적인 대안 마련에 나서길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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